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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쿠나 Jan 29. 2021

코비에게

청춘을 함께 해준 농구인에 대한 헌사


설 연휴의 마지막 날을 여는 아침.
비록 겨울이라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온순한 날씨이지만, 햇살이 내리쬐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 문까지 닫아 놓은 덕에 방안 만개하지 못한 어스름한 빛으로 채워져 있었다.
어렴풋한 어둑 거림은 이불이 몸을 감싸고 있어서 더더욱 몽롱한 빛깔로 감각의 기관을 흐릿하게 자극했다. 


비록 눈은 떴지만 정신은 혼미했던 그날 아침.
평소라면 출근 준비로 분주했을 월요일 아침이지만, 아직 연휴인지 출근 압박이 없다는 안도감에 위로받으며 여느 때보다 여유롭게 핸드폰 화면 속  기사 스크롤을 내린다.


그 와중에 무심코 나를 부여잡는 기사 타이틀,

'코비 브라이언트 사망'


또 다른 동명의 선수가 있었나 싶은 건조한 호기심으로 클릭한 기사는, 결국 두 번을 재차 읽고 나서야, 얼얼했던 잠결의 나를 깨웠다. 그러나 정신의 혼함은 오히려 더 깊어지고 말았던 기이한 경험.
그날의 아침을 나는 이렇게 기억한다.

연이어 환기되는 몇 해전의 기억.
코비가 은퇴한다며 각 구단 별로 세리머니를 하던 그즈음. 내 보기에 너무나도 글을 잘 쓰는 한 NBA 애호가에게, '너의 소회를 듣고 싶다'며 코비의 이야기를 남겨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평소에는 곧 잘 써 내려가던 글을 그는 남기지 않았다. 화려함으로 상징되는 코비에 대한 애정의 부재일까, 혹은 같은 시기에 은퇴했던 던컨에 대한 예우였던 것일까. 갸웃거림과 머쓱함으로 지나쳤던 그 일이 머릿속에 불현듯 스쳐간다.

코비 브라이언트. 

고등학생,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아직 많이 남았던 그 시절 처음 들은 그 이름은 어느덧 삼십 대 후반 회사원이 되어서도 줄곧 겨울이면 들려왔었다. 성실하게.

그래서였을까. 미성년으로 규정되던 시기에서 청춘의 한 세월을 지나, 사회인이 된 약 20여 년의 시간 동안 변화한 나와 달리 그는 그대로였다. 그래서 그토록 성실한 존재의 부고는 전혀, 그리고 차마 상상할 수 없던 일이라서 더욱 짙은 공허함으로 내게 다가온다.

그는 늘 거기 그대로 있을 것만 같았다

자꾸만 그의 기사와 플레잉 영상을 찾고, 또 선수들의 추모 내용에 대한 이야기들을 검색하는 내 모습을 보며, ‘한 사람의 죽음을 이리 소비하는 게 맞는 것인가’ 하는 윤리적 잣대로 짐짓 반성하다가도 어느새 본능적으로 다시 같은 행동의 반복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당연히 내 삶에 직접적으로 개입한 적이 없던 인물.
어느덧 나이로는 어른이 되었지만, 더 더 어른들은 어쩌면 한 소리하시며 철없는 감정이라고 했을지도 모를   비감 실체는 무엇인가.

비대  일방의 무조건적 노출이 익숙한 미디어 세상이 만드는 새로운 관계가 당연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그의 죽음은 지난 며칠간 고요했던 내 삶에 계속해서 파동을 일으켰다.
 

스스로도 그 이유를 잘 알 수 없는 비감이지만, 역설적으로 삶에서 경험했던 것 같아 흔적을 거슬러 올라보니, 몇 해 전, 신해철의 죽음에서 느껴졌던 감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신해철과 코비. 그들은 내게 어쩌면 같은 인상을 주었는지 모른다.


그의 노래를 듣고, 그의 방송을 들으며 자랐던 시간. 소년에서 성인이 되었던 내게 신해철의 죽음을 받아들였을 때의 느낌은 지금 코비의 소식과 과히 다르지 않은 결이었다.
선배 세대가 존 레넌을 잃었을 때. 그리고 커트 코베인을 잃었을 때. 이런 감정이었을까.
깊게 들여다보면 마음 깊은 곳에는 코비 브라이언트라는 한 농구인의 물리적 생의 마감을 넘어, 나의 청춘을 상징하는 한 시대의 종언으로 느끼는데서 오는 상실감과 불안감이 자리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갑작스러운 그의 생의 마침표는, 아직 보낼 준비가 되지 못한 내 오롯한 청춘의 챕터마저 이제 마감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져 당황스럽고 더 서글프다랄까.
"아직 코비는 더 할 일이 있어요. 제 청춘은 더 기록할 이야기가 남았다고요. "
이렇게 외치고 싶은 아쉬움과 상실감.

어쩌면 그 친구는 코비의 은퇴를 바라보며, 이 비감에 차마 글을 쓰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수많은 매니아에 비하면, 기실 나는 빅팬이 아니었음에도 느껴지는 아쉬움과 공허함. 그리고 상실의 감정이 곧 코비 브라이언트의 그림자의 크기를 반증하는 것 같다.


상실감을 참을 수 없어 단문의 글을 게시했다.

직접 작성한 글 보다 글에 달린 댓글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너무 치열했던 삶이었어요. 누군가에겐 그저 공놀이였을 뿐인데, 코비는 농구에 완전 연소했거든요. 팬이든, 안티든, 모두가 조그만 불씨가 거대한 용암이 되고, 사라지는 것을 다 지켜봤네요..’

비록 많이 부족했지만 이제 커튼을 닫아버릴 때가 되어버린 내 청춘, 그리고 나의 이 시절을 함께 한 코비에게 남기는 작별인사.

Goodbye. 수고했어요.




딱 이 맘 때였습니다. 벌써 1년 전이네요.

코비가 생각나는 때입니다.

작년 이맘때 공허한 마음 지울 수 없어 끄적이던 글.

첫 번째 포스팅으로 남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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