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시작의 원년이었던 2001년은 지금으로부터 20년도 더 된 꽤 오래 전의 과거임에도 1900년대의 끝자락에 태어난 필자에게는 여전히 낯선 생경함으로 다가온다. 스물 하고도 무려 세 번이나 숫자 2가 연도의 맨 앞에 위치한 시간을 살고 있음에도 어색함은 쉬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요즘도 이따금 2022라는 올해를 가리키는 숫자를 마주할 때면 현재가 아닌 미래의 언젠가를 말하는 것만 같아 흘려 넘기다가 흠칫 놀라고 만다.
그래서였을까? 2001년 개봉작, 『번지점프를 하다』를 20여년만에 다시 보며 느낀 첫 번째 인상은 ‘익숙한 설렘’이었다. 작품 속 서사는 물론이요, 그 세월 속 현실의 변화도 직접 경험했기에 한 없이 익숙했지만 영화와 현실의 세월의 틈 안에 박혀 있는 몽글거리는 감정은 보는 사람에게다시금 설렘을 느끼게 한다. 이 기묘한 감정의 근원은 아마도 2001년 당시에도 영화가 조명하고 있는 시간이 80년대와 2000년대의 20년이라는 시간을 아우르는 복합적 구성 때문일 것이다. 영화 내에서 시간 여행을 하는 특이한 구성과 배치는 다시금 20년이 흘러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시간의 진폭과 감정의 깊이를 더욱 진하게 느끼도록 돕는다.
서양의 근대철학을 완성했다고 평가 받는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철학은 반드시 시대를 포착한다”고 말한 바 있다. 영화의 역사가 어언 100년을 넘어가면서 영화는 단순히 한 켠의 예술 장르를 넘어 현대인의 시대정신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1980년대와 2000년대를 아우르는 이 영화를 2020년대에 다시 본다는 것은 그야말로 거의 반세기에 달하는 시간 동안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하고,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어왔는지를 보여주는 그야말로 생생한 기록의 단면이리라.
헤겔은 한 시대를 정리했고, 홍석천은 새 시대의 포문을 열었다.
다만 영화든 문서든 어떤 기록을 살펴볼 때 반드시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그 시대만의 맥락을 살펴보는 일이다. 이 영화가 상영되던 시기, 그 즈음의 대한민국은 어땠었나? 방송인 홍석천의 커밍아웃은 금기 시 되던 성정체성, 나아가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대중이 인지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한 시대의 질서를 깨부수는, 이른바 ‘파격’이었다. 경천동지할 이야기로 시작한 앞자리 2 시대의 벽두에서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는 개봉했고, 결국 영화는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등의 억울한 해프닝에도 휘말리게 된다. 커밍아웃으로 시작했던 시대에서는 이 영화를 읽어낼 때 시대적 한계가 뚜렷했지만, 20여년의 시간이 흐른 현재, 그 시대 주목했던 동성애 코드는 더 이상 한계나 굴레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이번에는 현재의 관점과 맥락에서 이 영화만의 독특한 지점, 캐릭터에 대한 의미를 주목했다.
최민수, 90년대를 대표하다
1990년대 한국 남성배우들의 캐릭터의 특징은 네 글자로 요약된다. “터프가이”
90년대 초반 공전의 히트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속 대발이를 연기한 최민수는 터프가이의 상징과도 같았다. 여세를 몰아 “모래시계”에서 그가 연기한 태수 역시도 비장한 터프가이였다. 대발이의 코믹한 이미지에서 태수의 진한 남성미로의 이동은 있었지만 그 축이 되는 발은 최민수의 터프가이 이미지였다. 최민수 이전에는 “여명의 눈동자” 최재성이 있었고, 이후에는 뭇 청춘의 가슴에 불을 질렀던 “비트”의 민이, 정우성이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비장했고, 거칠었고, 세상을 향해 저항했다. 하지만 30년 지난 한국의 미디어 환경에서 그려지는 이상적 수컷의 캐릭터는 어떤가? 남성 배우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정우성과 원빈이 물론 건재하지만 얼마나 다채로운가. 김수현, 송강, 박서준, 정해인, 송중기, 그리고 남주혁까지. 이들이 보여주는 모습에 대발이나 민이나 태수만 있던가. 어쩌면 그 반대 좌표라 할 수 있는 무해함과 부드러움이 오히려 더 가깝지 아니한가.
서인우라는 캐릭터는 이병헌을, 그리고 한국 영화를 용산역에서 기다린 것은 아니었을까.
1990년대와 2천년대라는 변곡점에 배우 이병헌이, 그리고 그가 연기한 영화의 ‘서인우’가 바로 서있다.
영화 개봉 당시만 해도 지금의 명품배우라는 이미지와 달리 이병헌은 연기파 배우의 평을 듣던 때가 아니다. 오히려 그의 출연 소식에는 불안과 우려 섞인 메시지가 나오던 때였다. 물음표가 뜨곤 했던 이병헌의 연기를 느낌표로 바꾼 시발점이 되는 몇 개의 작품 중에 바로 이 영화가 있다. 이병헌은 소년과 청년의 경계에 있는 서인우를 그대로 재현하며 배우로서는 스스로의 가치를 높였고, 한국 영화사에는 새로운 캐릭터의 길을 열어 낸 배우로 기록 될 것이다. 이병헌의 서인우는 이듬해 ‘봄날은 간다’의 상우(유지태), ‘엽기적인 그녀’의 견우(차태현)로 이어지며 오랜 기간 터프가이로 연명하던 한국 남성 캐릭터의 족보를 바꾸는데 이바지 했다.
서인우가 부드러움에 발을 딛고 서 있다면 이은주가 연기한 임태희는 도회적이고 당찬 ‘모던 걸’이미지에 가깝다. 하지만 이은주가 연기한 임태희는 신여성의 옷을 입고 있지만 서인우와는 조금 다른 결을 갖고 있다. 그녀는 생기 발랄하고, 진취적이어서 마음이 가는 이성에게 먼저 다가서는 새로운 여성의 역할도 보여주지만 동시에 상당히 정숙하고 순종적이며 남성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여린 여성의 모습을 함께 표현하고 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르는 것이 당연한 이치겠지만, 기실 태희라는 인물이 보여주는 것은 이 영화를 제작했던 세대가 갖고 있었던 판타지에서 기인한다.
이은주의 임태희는 어쩌면 한 시대와 그 세대의 바람이었으리라
시간을 한번 짚어보자. 2001년은 60년대생, 80년대 학번의 청년들, 이른바 386이라던 사람들이 사회에 진출해 열심히 정열을 불사르던 시기였다. 한국 영화계 역시 마찬가지로 이들이 서서히 주류로 입성하고 있던 시기이다. 이 세대의 남성들은 이전 산업화 세대와는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이 구별된다. 그들은 여성의 인권과 주체성의 확대를 학습했던 세대였고, 여성의 지위가 개선되어야 함을 부르짖던 민주화의 역군이었다. 이것이 그들이 머리로 학습했던 지향점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가슴은 이전 세대가 바라보던 여성에 대한 정서가 이미 바탕에 채색되어 있었다. 여성은 무릇 지고지순 해야 한다는 전통적 여성관과 대학에서 학습된 주체적 여성이라는 모순된 관념은 양자의 장점만을 선별해서 수집한 일군의 여성 캐릭터를 창조했다. 임태희는 386이 창조한 여성의 모습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한국영화의 세대교체 속 밀물처럼 밀려든 386세대의 입성은 그래서인지 이 시기 개봉된 한국영화 속 여성들의 모습에서 유사하게 나타난다. 봄날은 간다의 ‘은수’, 번지점프를 하다의 ‘태희’, 그리고 8월의 크리스마스 속 ‘다림’의 모습에서 기시감을 일으킬 정도로 유사한 일련의 정서를 느끼게 된다.
매력적으로 발랄하지만 억척은 아니고, 남성들에게 어필하지만 반드시 선을 지키고, 끝끝내 남성을 세워주는 캐릭터, 그래서 뭇 남성들의 환호를 받게 만드는 캐릭터가 바로 임태희이다.
더구나 태희와 다림과 은수는 남성에게 적어도 겉으로는 지지 않는 당찬 면도 갖고 있기에 남성이 여성을 압도하는 것과 같은 부채감도 탕감해준다. 그런 면에서 태희와 무리들이라 할 수 있는 이러한 캐릭터들은 그 시대의 조류였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시대 386이 갖고 있는 마지막 바람인 면도 있다.
386은 어쩌다 이러한 흠결 없는 캐릭터를 창조할 수 있었을까?
실제로 386에 이입해보면, 그들이 학창시절 배운 이론과 마주한 현실은 결코 등치하지 않았으리라. 그들이 배운 이론은 수용되기 보다 거절되었고, 그들의 문법은 적용 보다는 반려되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그들이 느낀 좌절감은 점점 쌓여갔다. 이상과 현실 간의 부등호는 결국 현실의 것이 커져갔고 386 역시 삶의 화살표를 현실로 돌려세웠다. 그렇게 한 10년 정도의 사회 생활을 지나 순수했던 학창시절의 노스텔지어를 돌이켜 보는386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들이 주장한 여러 가치의 원형이 퇴색되는 것을 목도하면서정녕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가치, 결단코 원색을 훼손하고 싶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사랑이 아니었을까싶다.
모조리 때묻어 변색되어 좌절하는 그들을 구원해줄 유일한 초인, 그 초인이자 뮤즈가 바로 태희와 같은 캐릭터는 아니었을지.
영화의 마지막, 태희는 말한다.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하다고."
인우는 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줘서 고맙다고."
어쩌면 386은 아직도 용산역 인우처럼 태희를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현실과 이상의 배신을 감당하면서 그들의 이상을 회복해줄 절대적 초인, 태희를 말이다.
1980년대의 이야기와 2000년대의 사람 풍경을 느낄 수 있는 영화를 2020년대에 다시 보며 느끼는 감정의 뿌리는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어떤 장면 속에 남아있는 내면의 미련 때문일지 모른다. 어느 순간 우리는 필경 인우이기도, 태희이기도, 현빈이기도 했으니까.
한 시대의 배우였던 그녀를 추억하며, 애도한다. "너무 늦어서 미안해"
한 줄 요약 - "삶의 어느 순간 우리는 필경 인우이기도, 태희이기도, 현빈이기도 했다."
작가 '원우씨'와 함께 호우시절이라는 채널로 그 시절 반짝거렸던 때를 추억하며
영화를 리뷰하고 있는 조쿠나입니다.
이번 작품은 김대승 감독, 이병현, 이은주 주연의 2001년작 '번지점프를 하다' 입니다
영화에 대한 더욱 다양한 이야기는 네이버 오디오클립 ‘호우시절’과유튜브 ‘영화발골채널 호우시절’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