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운 Jun 04. 2024

성인ADHD 입덕부정기를 겪다


살다 살다 ADHD 입덕부정기

이 일기는 adhd를 검사 받으러 가기 전에 쓴 일기다. 나처럼 복잡한 마음을 느낄 사람들을 위해 쓰기 시작했다. 내가 외로웠던 건 ADHD에 대해 같이 떠들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혹시 당신이 그런 상황이라면 나의 ADHD 입덕부정기를 읽으며 마음을 내려놓길 바란다.


일주일 전부터 쓰기로 마음먹었는데 정작 글을 쓰기 시작한 건 검사 받으러 가기 두 시간 전이다. 역시 미루기 끝판왕이다. 더 잘 쓰고 싶어서 미뤘다고 핑계를 대본다. 합리화 하나는 끝내주게 잘한다.


내가 ADHD라고 의심했던 건 작년 여름부터다. 그로부터 일 년 간의 입덕부정기(?)가 있었다. 무언가에 입덕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어떤 관심과 사랑은 벼락처럼 내려온다는 걸. 당시에 나는 ADHD 벼락을 맞은 셈이었다.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매일 ADHD 글과 영상을 찾아봤다. 꼭 그랬으면 좋겠는 사람처럼 주변 친구들에게 나 ADHD 같지 않냐며 물어보곤 했다. 또한 ADHD가 약 80% 유전이라는 말을 듣고 부모님의 일상을 훔쳐보기도 했다.



나는 어떤 사람인 걸까


ADHD를 의심한 데 꽤 많은 사건들이 있다. 제일 무난한 일화를 말하자면 물건을 제자리에 두지 않아 가족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거 어딨어? 또 다른 곳에 뒀어? 이게 왜 여깄어? 그것에 대한 끊임없는 피드백(내겐 잔소리)을 들었고, 끝내 내가 ADHD인 거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물건을 제자리에 둬야 된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잡념에 빠져 있거나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 있었으니까. 내 잘못도 네 잘못도 아닌 셈이다. 남들에겐 조금 생소한 계산법일 수도 있지만.


물론 이 일로 ADHD임을 확신하게 된 건 아니다. 글로만 봐선 너무 간단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미 내게 많은 실패와 좌절의 데이터베이스가 쌓여 있었다. (흑역사 배틀 고?) 이후 온갖 ADHD 영상을 찾아보면서 ‘이거 나잖아‘ 생각했다. 처음으로 든 감정은 두려움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의심으로 바꼈다.



나 또 회피하니?

나는 이것이 취업 회피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 ADHD라면 직장생활이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몸과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당시 나는 ADHD가 일을 못할 거라는 편견이 있었다. 깊게 반성한다..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전전해 가며 취업을 회피했고 여전히 회피 중이다.


이외에도 성인ADHD 양상이 곳곳에 나타났다. 그중 하나가 과집중이라고 한다. 작년에는 과집중이 심해 한 달에 서너 번은 번아웃이 오는 느낌을 경험했다. 멈추고 싶었는데 멈출 수 없는 느낌도 꽤 자주 들었다. (글을 쓰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6시간 내내 쓰고 수정하길 반복하고 있다) 더 이상 쓸 에너지가 없어 쉴 때는 시체처럼 누워 있었다. 내가 아닌 기분이었다. 분명 여기에 있는 진짜 나는 저기에 있는 느낌.


매일이 도전이었고, 또 매일이 실패였다. 아침마다 투두리스트를 작성했고, 썼다는 걸 까마득하게 잊어 일주일 뒤에 확인하곤 했다. 그렇게 쌓인 메모만 수십 개가 넘는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무언가 제대로 하는 건없는 인생.


이런 경험이 쌓일수록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는 바닥을 쳤다. 자기조절감이 없어진 지 오래였고, 자기효능감과 성취감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취업을 해도 문제가 될 거라는 생각이 강박적으로 들었다.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할 수 있긴 할까. 이런 생각이 일상을 뒤덮었고 나는 점점 삶에 대한 흥미와 기대를 저버리게 됐다.



안 되겠다. 입덕하자!


웃기게도 나는 힘든 일을 금방 잊었다. (ADHD특성 때문일 수도 있다) 잊었다기보다는 다른 생각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이거 꽤 괜찮은 극복 방법 아닌가. 오뚝이 정신은 끊임없이 작동했고 아무리 지쳐도 무너지지 않았다. 울면서 포트폴리오를 만들었고, 머릿속이 잡생각으로 가득했음에도 걷고 뛰었다.


ADHD 입덕부정기(?)를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더 이상 내가 ADHD인가 고민하기 싫었다. 가뜩이나 머릿속에 잡생각이 많아 에너지가 부족한데, 답을 내릴 수 있는 질문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할애하고 있었다. 정확한 진단을 내리고 치료를 받자는 마음에 병원을 예약했다. 사실 병원 예약도 매우 충동적으로 했다. 고민한 일 년이 무색할 정도였다. 끊임없는 미루기와 충동성의 합작이었다. 나름 완벽한시나리오 아닌가.


2시간 뒤에 병원에 가야 한다. 검사를 앞둔 지금 내 마음은 어수선하다. 맞아도 문제, 아니여도 문제라는 심정이다. 이건 뭐 정답이 없는 시험지를 풀고 있는 기분이다. 그러다가 문득 ADHD가 맞고 아니고는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온전히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 먼저 이 문제를 풀어야 될 것 같다. 이건 난제이다. 적어도 내일은 오늘보다 나를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괜찮지 않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