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에 앉아 각 잡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잘 쓰는 게 대체 뭘까.나도 모르겠다. 잘한다의 기준은 굉장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이다. 어떨 때는 기분에 따라 변하기도 한다. 오늘의 잘이 내일의 못이 될 수도 있다. 잘, 못, 잘, 못 … 모든 게 잘못된 것 같은 이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왜 이렇게 잘하고 싶은 어른이 된 걸까. 나는 잘하고 싶은 어른 말고 자라고 싶은 어른이 되고 싶은데.
앞으로 잘하고 싶은 마음을 ‘잘잘’이라고 부르겠다. 잘잘은 마치 오케스트라 지휘관처럼 나의 감정들을 지휘한다. 불안 너는 점점 빠르게 움직이고, 침착은 점점 느리게, 자책은 스타카토로 강하게, 후회는 잔잔하게 계속! 한 번 시작된 연주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감정들의 불협화음이 시작되자 온갖 생각들이 기다려다는 듯 밀려온다. 글을 못 쓰는 것 같아, 단어가 별로야, 맨날 비슷한 내용이잖아, 잘 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나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텅 빈 화면을 바라본다. 지울 게 없는데도 습관적으로 백스페이스를 누른다. 이러다가 나 자신까지 지워버릴 판이다. 인생에는 ctrl+z가 없으니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각 잡고 글을 쓰지 않기로 했다. 대단한 방법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의자에 앉지 않기로 했다. 너무 단순한가. 이 글도 알바 끝나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쓰고 있다. 걸어다니며 글을 써본 결과, 일단 발바닥이 욱신거려서 글에 집중할 수가 없다. 아주 좋은 신호다. 나의 과몰입 성향을 방지할 수 있다. 어떤 일에 과집중하고 나면 두 번 다시는 그 일이 하기 싫어진다. 금방 싫증이 나고 지치는 걸 막을 수 있다.
그리고 답답한 마음이 바로 환기된다는 거다. 시선을 돌리자 무성한 나무들, 가로등 불빛, 취객이 보인다.
어라? 너무 흥미롭잖아. 그것들에 시선을 빼앗기고 나면 글 쓰는 일이 가볍게 느껴진다. 내가 글 쓰는 건 그들이 술 마시는 행위와 다를 게 없다. 모두 나 좋자고 하는 일 아닌가! 여기 안주 하나 추가요! (영감 하나 추가요) 여름 나무는 울창하고 거대하고 거룩하기까지 하다. 나무보다 한없이 작은 내가, 나보다 작은 휴대폰으로 글을 쓰고 있다니. 정말이지 하찮다. 이 하찮함을 알게 돼서 너무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