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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운 Jun 17. 2024

타투의 필연성


나의 타투 일대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

'이 감정을 기록하고 싶어'

'이 문장대로 살아가고 싶어'

'이 생명체를 닮고 싶어'



나의 욕망이 깃든 기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많고 많은 방법 중에 왜 타투를 선택했냐?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당시 내가 느끼기에 가장 투명하고 절절한 방식이었다. 살면서 한 번쯤 좋아하는 친구나 애인에게 편지를 써본 경험이 있을 거다. 꾹꾹 눌러쓴 문장이 상대방의 마음에 옅은 흔적을 남기는 것처럼, 내 삶에 하나의 자국을 남기고 싶었다. 스물의 나는 삶을 열렬히 사랑했던 모양이다. (열렬히 타투를 사랑한 걸지도) 한 문장 덧붙이자면, 내가 타투를 한 건 필연적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대개 내가 좋아하고 선망하는 건 손에 쥘 수 없는 것들이었으므로.



타투에는 각각의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나를 웃게 하는 것도 있고 울게 하는 것도 있다. 그중 제일 어려운 건 이해가 필요한 타투다. 어떤 마음으로 타투를 새겼더라. 발목 부근을 여러 번 쓸어내리다가 끝내 과거의 나를 이해하지 못한 채 눈을 감는다. 이처럼 아무리 곱씹어도 이해되지 않는 순간들이 있다. 어제는 치킨을 먹고 싶었는데, 오늘은 초밥을 먹고 싶은 것처럼 휙휙 변하는 게 사람 마음이니까. 타투라고 뭐 다를 게 있을까.



이처럼 과거의 내가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지난날을(나를) 이해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곤 한다. 사실 이해보다는 책망에 가깝다. '너 때문에 지금 내가 힘든 거야. 네가 잘했으면 됐잖아.' 이렇게 과거를 탓하면서 현재의 내가 갖고 있는 부담감을 덜어냈다.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것보다 뒤돌아가는 게 훨씬 빠르고 쉬웠으니까. 나와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 부딪혔고 서로의 숨을 틀어막기 바빴다. 모든 시간이 쌓여 내가 된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우울증에 걸리고 나서 좋아하는 걸 자주 잊는 사람이 되었다. 하루의 대부분을 자책하거나 걱정하면서 보낸다. 생각에 갇히는 건 순식간이다. 그럴 때마다 타투가 말을 걸어온다. ‘너는 사진 찍는 걸 좋아했어’, ’ 너는 나비처럼 자유롭게 날고 싶다고 했어 ‘, ’ 퐁신한 곰돌이처럼 귀엽게 살고 싶다고 했어 ‘, ‘삶이 영원하길 바랐어’ 흐릿한 기억들이 하나둘 선명해지기 시작한다. 내 몸을 천천히 들여다보며 타투를 새겼을 당시를 떠올린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제각각이다. 자연스럽게 그해 있었던 기억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것들은 다 어디에 숨어 있었던 걸까. 오랜만에 과거의 나를 떠올리며 웃었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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