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부장은 집요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다. 한 사람에게 꽂히면 그가 그만둘 때까지 갈구는 걸로 유명했다. 오죽했으면 사내 사이트에 김 부장을 조심하라는 경고 문구가 수십 번 올라왔을까. 기준이 있는 건가요? 나는 당돌한 신입의 질문에 부장의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부장은 점심을 과하게 먹었는지 눈이 반쯤 감긴 채 졸고 있었다. 이상하게 마른 사람들만 골라서 괴롭힌대. 나뭇가지처럼 마른 사람들. 신입은 겁먹은 얼굴로 말했다. 저도 마른 편인데 괜찮을까요? 듣고 나니 신입의 팔과 다리가 앙상해 보였다. 아니. 건조해서 금방이라도 쪼그라들 것 같은 사람들이 있어. 영혼이 말라비틀어진 사람들.
다음 타깃은 나였다. 김 부장의 괴롭힘이 시작되었고 직원들은 우두머리의 만행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버텨볼 생각도 했지만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친구이자 옛 동료인 재연은 부장의 만행에 얼굴을 붉히며 대신 화를 내줬다. 재연도 부장의 타깃 중 한 명이었다. 그래도 회사에 질릴 대로 질렸으니 마음 후련하지 않아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들어왔다. 애써 괜찮다고 했지만 매일 밤마다 거울을 보며 마른 부분을 찾아내려 애썼다. 얼굴에 파운데이션을 올리고 립스틱을 발랐지만 건조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평소에 이상한 소리를 한다고 욕했던 인터넷 선생님들의 의견까지 찾아봐야 했다.
말라비틀어지지 않는 방법을 검색하니 수백 개의 식물 사진이 나왔다. ‘사람도 햇볕 쬐고 물 뿌리면 건강해짐. 내가 해봤음. 그리고 몬스테라라고 이파리 큰 식물이 있는데 먹어 봐. 몬스테라가 성분이 제일 좋아서 추천한 거고, 다른 식물도 다 가능. 아침, 저녁으로 한 번씩 먹어.’ 그동안 아껴두었던 휴가를 써서 나무시장을 찾았다. 감시카메라를 피해서 몇 번 이파리를 떼서 먹었다. 건강해지는 느낌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퇴직금의 절반으로 식물을 샀다. 매주 월요일마다 나무시장을 찾아서 아는 얼굴도 몇 생겼다. 5평도 안 되는 자취방이 크고 작은 화분들로 가득 찼다. 매일 아침으로 쌀밥에 홀리페페와 몬스테라를 비벼 먹었다. 간이 심심할 때는 커다란 몬스테라 잎에 고기와 쌈장을 올려 먹기도 했다. 각종 식물로 음식을 만드는 블로그나 유튜브를 운영할 계획도 생겼다. 나는 인터넷 선생님 말씀대로 활기를 찾아갔다.
아침밥이 소화될 때쯤에 동네를 산책했다. 정수리 위로 쏟아지는 햇볕을 쬐며 한참을 걷다가, 나무가 즐비한 곳에 도착했다. 툭. 뺨 위로 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맑았던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 껴 있었다. 물방울이 하나둘 떨어지더니 어느덧 빗줄기로 변했고 거리에선 진한 풀냄새가 진동했다. 집에 있는 우산을 싹 갔다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비를 맞았다. 얇은 니트가 빗물에 젖어들어 몸이 무거워지다 못해 발이 묶인 느낌이었다. 나무처럼 뿌리를 내린 채 비가 멈출 때까지 서 있었다. 의도치 않은 과식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