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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 Nov 25. 2017

요즘 런던의 혼란 속에서

미술사 석사를 따보겠다고 런던에 유학 온 지도 어느덧 두 달이 다 되어간다. 내가 지금 여기 있는 이유는, 유럽과 미국의 문화 우월주의로 점철된 근현대 미술사에서 벗어나 대안적 방법론을 공부할 수 있는 몇 안되는 학교가 아이러니하게도 360년 식민 역사의 진앙인 런던에 위치하였기 때문. 또다른 아이러니는 아무리 제3세계 문화권에 기반을 둔 미술사 방법론을 공부한다 해도, 영미권에서 공부하고 소통하고 출판하는 것이 유리할 정도로 영어가 근현대사의 만국 공통어가 되어버렸다는 것. 나 자신도 쉬이 납득이 안 가는 아이러니 이외에도 지금의 런던은 여러 이유로 꺼려야 할 도시가 맞다. 여러 문화가 공존하고 미술 자본이 모여드는 매력적인 도시인 건 사실이지만, 작년의 브렉시트로 국가적 이기주의와 현실주의를 입증하였을 뿐 아니라 최근에는 이슬람 국가(ISIS)가 배후를 자처한 여러 무차별 테러에 공격받는 등 요즘 이곳은 도무지 수난이 끊이지를 않는다. 그런 런던에, 후 식민지 이론과 동아시아 근현대미술사를 공부해 보겠다고 무언가에 홀린 듯 짐 싸 들고 온 지 두 달이 지났다.


이곳에 도착하고 일주일 뒤,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총기난사로 58명이 죽고 600명가량 부상당한 대참사가 일어났다. 휴대폰으로 소식을 접하고 벌벌 떨며 귀가하던 지하철 안, 어느 중동 계열의 검은 옷을 입은 덩치 큰 남자가 정체불명의 물건이 잔뜩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안고 내 옆에 앉았다. 나를 포함한 승객 두 명은 그를 보자마자 즉시, 혹은 약간의 망설임 뒤에, 일어나 문 쪽으로 다가가 서서 다음 역에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전동차 소리가 너무나도 크고 길게 느껴지던 2분 동안 다행히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전차에서 뛰어내린 즉시 그 검은 옷의 승객에게 얼마나 미안하던지. 그가 분명히 눈치챘을 만큼 당연한 상황에서 그는 얼마나 야속하고 억울했을까.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걷는 중 기숙사 같은 층에 살고 있는 어느 학생과 한 대화가 생각났다. 가족을 따라 어렸을 때부터 인도, 이탈리아, 미국, 벨기에 등을 돌아다니며 자란 그 친구는 분명 국적과 문화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고 여러 개의 언어를 구사하는 제3문화 아이들 (일명 TCK) 중 한 명임에도 불구하고, 터번을 쓰고 있다는 이유로 학교나 지하철 등 공공장소에서 위와 같은 차별을 경험한다고 했다. 사실 그가 쓰고 있는 터번은 인도 북부의 펀자브 지방에서 유래한 시크교(Sikh)의 터번으로, 우리가 각종 미디어에서 접하는 아프가니스탄 지역의 이슬람 터번과는 다르게 생겼다. 이 두 가지의 터번 이외에도 인도아대륙, 동남아시아, 아프가니스탄, 중동, 서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에서 수많은 종류의 터번이 종교 이외의 목적으로도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중동'이라 규정한 문화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이해하려 시간 및 노력을 투자하려 하기보다는 '터번 = 이슬람 = 테러'라는 끔찍하게 간단명료한 공식으로 각종 판단의 잣대를 아무렇지도 않게 들이미는 것은 아닐까. 굳이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이런 식으로 벌어지는 비이성적 차별의 순간 속에서 뜻하지 않게 폭력이 발생하고, 그 폭력으로 인한 반감이 또 다른 끔찍한 폭력을 만드는 악순환이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수난의 근본이 아닐까 생각했던 그날 저녁의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던지 모른다.


시크교도가 쓰는 터번의 모습.


아프가니스탄 등의 중동 지방에서 쓰는 터번들 중 한 종류. 오사마 빈 라덴으로 유명해진 흰 터번이 이에 포함된다.

사진 출처: http://barenakedislam.com/2013/02/28/sikh-vs-muslim-headgear-understand-the-differences/; 이 웹페이지는 위의 두 종류 외에도 여러 지역의 터번을 간략히 소개하고 있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오게 된 학교는 분명 좋다. 너무 좋다. 미국 내에서 급진적이기로 소문난 코넬에서의 미술사 학부 때와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은 비서구권 학자들이 포진해 있고, 주 단위로 학회와 강연이 개최되고, 학생들 모두 각자의 배경, 인종, 정체성에 자부심을 가지며 그 자부심이 이 학문으로 이어지는, 지금의 나에게는 이상적인 배움의 공간이다. 수업은 기존의 도상학적 연구 이외에도 후 식민지 이론, 초국가주의 이론(transnationalism, 한 국가에 국한된 역사연구를 넘어 다국가, 다지역 간 역사의 연계와 소통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방법론), 사회학, 젠더학 등의 다양한 이론을 병행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학교 밖으로 나가도 요즘 런던의 인문대학이나 미술관에서는 제3세계의 문화와 관련된 전시회, 상영회, 강연 등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내가 런던에 있었던 두 달 사이에도 인도 독립 (및 인도/파키스탄 분할) 70주기 기념 전시, 한영 문화 교류의 해, 아프리카 아트 페어 등 타문화권을 알리고 문화적 다양성을 찬양하는 행사들이 수없이 많았다.


오늘날의 런던은 유럽 연합과의 법률적 관계를 떠나서 지리적, 언어적 장점에 기반을 둔 세계도시로 성장하고 있으며, 지역과 국가의 차이를 초월하고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혹은 해야만 하는) 초국가적 도시로 변모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이면에는 또한, 씻을 수 없는 식민 역사가 있고, 인종차별이 있고, 그로 일어나는 무고한 자의 희생 및 비이성적 공포가 있다. 런던에 온 지 두 달 째, 나는 이 도시가 겪고 있는 갈등을 매일같이 체감한다. 포용과 공존의 의무와 내부에 잔재하는 타자성 사이의 긴장 상태. 이 갈등의 타협점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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