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엄중한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기후 혼란이 세계의 모든 것을 변화시키도록 지켜만 볼 것인가, 아니면 기후 재앙을 피하기 위해 경제의 모든 것을 변화시킬 것인가?” - 나오미 클라인
그렇다면 기후위기 시대, 기본소득과 함께 어떤 시간을 만들 것인가? ‘기본소득과 함께'라는 건 상당히 모호한 표현이다. 기본소득이 아직 도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동시에 기본소득은 ‘아이디어’로서 우리 가운데 이미 도래해 있다고 볼 수 있다.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을 인지하고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 방법을 고민하는 이들과의 대화 속에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여기서는 한국의 청년활동가들, BIYN 회원들과 나눈 대화를 정리했다.
이 상황을 인식하는 데 있어 감정은 방해물이기도, 가능성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간은 ‘마음’을 가진 존재이기에, 우리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는 중요한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같은 맥락에서 기후운동에 참여하는 많은 사람들이 ‘기후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즉시 공감이 됐다. 점점 더 자세한 정보를 접할수록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고은영 녹색당 미세먼지기후변화대책위원장을 만난 날, 그간 기후운동을 하며 어떨 때 가장 힘든지 물어보았다. 그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기후위기에 대해 강연을 하거나, 이야기할 때 사람들의 ‘경로의존성'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라 답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 자체에서 본인이 이걸 다 깨고 새로운 것을 상상하고 새로운 문명이나 삶의 태도를 상상하고 해내야 한다는 것에 대해 감당하기 싫어하는 마음들을 느껴요. 그게 지금 사회에서 피로한 일인거죠. 그 마음들을 많이 느끼고 있고 그게 벽 같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너무 이해가 돼요. 이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과 팩트들과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돌파해야할 게 너무나 많고. 이미 각자가 살아온 경로의존성이 있고. 그걸(기후위기를) 부인하고 싶어하는 마음들을 여러 가지로 확인할 때.” (고은영)
모두가 경로의존성을 갖고 있다면, 그 형태를 자각하는 게 먼저일 것이다. 나와 동료들의 경로의존성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BIYN 워크샵에서 기본소득 단체로서 우리가 무엇을 할지에 대해 논의하기 앞서,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기후위기'라는 상황은 왜 문제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개개인의 감각을 서로 공유했다. 뚜렷한 답이 나오지 않더라도 현 상황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고, 이를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해 신뢰하는 공동체에서 말하기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다음과 같은 이야기들이 나왔다.
“결국 인류가 문제이다, 인류가 없어지면 되지 않느냐 하는 무력감으로 빠지게 된다.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형태가 과거로 회귀하는 등의 불가능한 방식만 떠오른다. 현재 내가 하는 행동들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의도가 어떻건 결국 악영향을 발생시키는 상태인 것도 문제이다. 지금 아니면 되돌릴 수 없는데 현실 정치는 단기 성과에 집중하기 때문에 기후위기를 아젠다로 삼지 않고 있다.” (팀 ‘기')
“질문을 처음 했을 때는 멸종이나 죽음이 닥쳐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전 세대의 쓰레기를 처리한다는 점에서 억울하기도 했는데, 한편으로는 이전 세대가 만들어놓은 풍요를 누리고 있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죄책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멸종과 죽음은 평등하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문제의식도 있다. 한편으론 개인이 많은 부분을 포기하고 체념하기가 어렵고 내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고 느끼기 쉬워서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하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노력을 해야하는데 임금노동 체제가 너무 견고해서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내 일자리가 사라지나, 하는 생각에 포기-무력감-체념으로 다시 이어지고 ‘그냥 다 빨리 죽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임시방편으로 대처하는 방식으로 마스크 쓰고 공기청정기 쓰는 다른 산업의 부상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있는데 ‘그린뉴딜’을 하려면 전반적인 산업 구조의 고민이 필요하고, 한 사람도 놓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가 필요하다는 지점에서 기본소득이 필요하다.” (팀 ‘청')
“기후위기는 생존과 직결되고, 동식물이 죽어나가는 등 생존의 문제인데,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예측이 불가능해서 더 심각하다. 한번에 다 죽으면 차라리 편할 수 있는데 부자/강자들은 자기 살 길 찾고 사회경제적 차별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두렵다. 각자 알아서 살 길을 마련할텐데 거기에 내 자리는 없다는 느낌이 든다. 과거에는 어떻게 살 것인가 했을 때 청사진으로서 소위 선진국이 있고, 경제 성장을 해야하고, 부모들의 생애주기 흐름이 있었는데, 기후위기는 아무도 겪어보지 않은 길이라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아직도 경제 위기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기후위기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세계적으로는 강대국이 나서야하는데 미국과 중국이 큰 변화를 이끌지 않으면 개인이 해봐야 헛수고 아닌가 싶기도 하고, 동시에 미세먼지가 기후위기로 인한 직접적인 결과일텐데 모두 중국 탓만 하고 억울해한다. 이것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팀 ‘넷')
한편 핀란드의 공공재단 SITRA에서 발행한 <1.5도 라이프스타일 보고서 1.5-degree lifestyles: Targets and options for reducing lifestyle carbon footprints>에서는 1.5도 이하 온도 상승 목표를 이루기 위해 현재로부터 2050년까지 얼마만큼의 변화가 있어야 하는지를 라이프스타일에 초점을 맞춰 보여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재의 90% 이상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개인 및 가구 단위 레벨에서 시도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제안하고 있다는 점에서 도움이 되는 자료다. 상상하기 어려웠던 것을 상상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물론 개개인의 실천으로 거대한 흐름을 바꾸기엔 한계가 명확하다지만, 경로의존성으로부터 탈피하려면 결국 개개인의 마음과 욕망과 습관이 변화해야 하고, 그럼으로써 집합적 삶의 양식이 변화하며, 새로운 문명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