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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혜영 Jul 13. 2018

한 번의 일탈, 단 하나의 운명

[불온한 숨 / 박영 소설]

 열정과 사랑의 차이는 일상에 있다. 열정은 일상의 그물코를 더 촘촘히 짜깁기하고 사랑은 견고한 일상에 구멍이 생기는 일로 시작된다. 그물과 구멍. 그물코가 빽빽한 그물일수록 일상은 견고해지고, 뚤린 구멍이 크고 깊을수록 온화했던 일상은 멀어지고 깨진다. 우리는 그것을 ‘일탈’이라 한다.

이 소설 [불온한 숨]의 주인공 제인, 텐, 진은 열정적인 삶에 순응하는 사람들이다. 그중에서도 서른 여덟, 남들은 은퇴하는 나이 세계 최고 무용수 자리를 유지하는 제인은 마치 기계처럼 혹독한 일상으로 자신을 깎아 세운다.

그녀는 보육원에서 살다 영국으로 입양됐다. 죽은 딸과 닮았다는 이유로 그녀를 입양한 양모는 죽은 딸의 이름과 발레복을 물려줬다. 말도 얼굴도 낯선 타국에서 그녀는 한국인 임성경이 아닌 죽은 영국 소녀 제인으로 살아야했다. 그녀의 일상은 양모에 의해 철저히 계획되고, 그녀는 당연한 일처럼 그 삶 속에 자신을 끼워 맞출 수 밖에 없었다. 그녀를 에워싼 세계는 그녀에게 한순간도 일탈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죽은 제인의 대용품일 뿐이니까.


                       “마담, 당신은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 있나요?

                   죽어도 좋을 만큼 누군가를 끌어안고 싶었던 적이 있나요?” (44P)


그런 그녀 앞에 나타난 가사도우미 크리스티나는 그녀와 상반된 성향을 가진 인물이다. 다정다감하고 당돌하다 싶을 정도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일에 솔직하다. 세상의 명성과 부를 가진 제인과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언제 추방당할지 모르는 크리스티나. 제인은 딸 레나가 엄마인 자신보다 더 따르는 모습을 보며 점점 그녀를 미워한다. 제인은 차마 미움이란 감정에도 솔직하지 못해 제인은 크리스티나가 천박해서 그렇다고 몰아세운다. 집안에서조차 밀실에 갇혀야 안도하는 제인의 눈에 한밤중에 빠져나가 애정행각을 벌이고 들어오는 크리스티나는 살을 후비는 끝이 뾰족한 바늘 같다. 결국 제인은 오갈 데 없는 그녀를 몰아세워 쫓아낸다. 그것은 제인 자신에게 내재된 욕망을 제거하는 일이기도 했다.


단 한 번, 평생에 단 한 번 제인은 사랑을 했다. 대학시절에 만난 강사 마리와 동료 맥스. 그들의 춤을 몰래 훔쳐보던 제인은 곧 그들의 춤에 합류하게 되고, 불꽃같은 일탈에 온 몸을 내 던졌다. 온 몸이 부서져도 좋을 것 같은 기분. 제인은 그들을 만나 처음으로 행복하단 생각을 했다.

그러나, 짧은 행복 끝에 그녀에게 거짓말처럼 선택의 순간이 주어지고, 그녀는 마리와 맥스를 버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들이 영혼과 육체의 합일이라 여긴 춤이 다른 사람의 눈에는 불온한 짓거리로밖에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을 절감하며. 제인은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순진한 피해자 가면을 쓴다. 제인이 불쌍한 희생자가 될수록 마리와 맥스가 파렴치한 괴물이 된다는 걸 알면서도. 제인은 순진이란 가면으로 불온한 숨을 감춘다.

 

                                 "처음 본 사람처럼 인사를 하시는군요." 


첫 만남에서 이미 제인을 잘 알고 있는 듯 응수하는 텐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혹독한 훈련으로 무용수에게 고소를 당한 전력이 있는 텐. 그가 집요하게 제인의 주변을 맴돌며 그녀의 딸 레나에게까지 접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스테리한 인물 텐이 등장하면서 제인의 일상은 위태로워지기 시작한다. 모두를 버리고 택한 안전한 일상이 텐 때문에 흔들리고 무너지기 시작한다.

박영의 소설은 인간 내면에 잔재하는 욕망과 일탈의 조각을 집요하게 파헤친다. 한 번의 일탈이 남아 있는 일상에 일으키는 나비효과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과연 그 일탈을 불온이라 부를 수 있을지, 우리는 직접 읽고 확인해야한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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