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입학을 앞둔 워킹맘의 고군분투기
식탁에서 오후 간식을 먹고 있는 아이를 마주하고 앉았다.
오전 내내 재택근무를 하고 아이와 점심을 함께 먹고 남편이 나가고,
혼자 있던 아이의 학원 시간에 맞춰 잠깐 들어와 간식을 챙기던 참이었다.
문득 혼자 있던 아이가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가볍게 던진 말.
- 서진아, 서진이도 다른 친구들처럼 엄마, 아빠 중에 누군가가
일을 안 하고 서진이 하교할 때랑 학원 갈 때 챙겨줬으면 좋겠어?
- 당연하지.
간식에 코를 박고 먹으면서도 질문이 채 끝나기 전에 답변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나는 솔직히 좀 놀랍고, 두려웠다.
아이가 나를 원망하고 있을까봐, 아이를 외롭게 만든 게 나의 욕심이라고 생각할까봐.
서진이는 올해 아홉 살이 되었다.
뽀얗고 몽글몽글하던 내 아가는 무럭무럭 자라 지난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육아휴직을 마치는 15개월째부터 아이는
병원에 입원하거나 열이 펄펄 끓지 않는 한은 빠짐없이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갔었지만,
초등학교 입학은 이전의 것과는 사뭇 다른, 어떤 결기 같은 것이 있었다.
3월 입학을 앞두고 가장 초조했던 것은 바로 나,
문제는 아이의 하교 후 스케줄 때문이었다.
나와 남편이 일하는 동안 아이를 빈틈없이 케어해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러고 보니 퇴근 시간 동안 아이를 안정적으로 돌봐줄 수 있던 유치원 생활을 오히려 꿀이었다.
1학년을 대상으로 돌봄 교실을 운영했지만,
취약계층을 우선순위로 기회를 주고 남은 자리에 한해서 맞벌이 가정 대상으로 추첨을 했다.
간절했지만, 우리는 추첨에서 떨어졌고 대기번호 8번을 받았다.
아이를 보다 민주적으로 키우고자 혁신학교를 찾아 이사까지 왔으니 맹모가 따로 없다.
워킹맘인 나에게 택지지구에 새로 개교하는 혁신학교는 오히려 복병이었다.
학교 운영의 래퍼런스가 전혀 없었기에 어디에 물어볼 곳도 없었다.
학교에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 입학 후 1학년의 하교시간에 대해 줄기차게 물어봤다.
또한, 혁신학교만의 강점인 긴 놀이시간을 반드시 확보해달라고 요구했다.
놀이시간이 아이들의 발달에 더욱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과 더불어
그래야만 하교 시간을 조금이라도 늦춰 학원 개수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3월 2일 개학을 앞두고 결정된 1학년 하교시간은 1시 40분.
화, 수, 목요일은 2시 20분에 하교하는 것으로 답변이 왔다.
학교에서 교과과정을 새로 짜며 하교시간이 결정되는 동안
가만히 기다릴 수 없었던 나는 틈틈이 학교 주변 학원을 물색했다.
4시 반 무렵에 퇴근하는 나의 시간을 맞추려면,
아이는 최소 2곳의 학원을 가야만 했다.
워킹맘인 나의 학원 선정 기준은,
1. 학교와 가까울 것 : 하교 후 아이가 스스로 오갈 수 있어야 한다.
2. 예체능 위주 : 학습 보충은 원하지 않으며, 하교 후 돌봄이 우선이기에 미술, 음악, 체육 등 예체능이 적합하다.
3. 차량 운행 여부 : 학원과 학원 사이를 원활하게 이어 줄 도움이 필요하다.
물론, 선생의 인성과 교육적 가치관이 가장 중요하지만 그건 사실 차후의 문제였다.
그리고 여러 학원을 돌아보며 내 마음에 쏙 드는 선생을 찾는 일은
어쩌면 허황된 꿈인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쾌활하고 따뜻한 분위기의 선생이면 오케이,
그리고 아이에게 쾌적한 환경만 갖춰지면 된 거다.
3월 개학을 하면서 세팅한 아이의 하교 후 시간표는 결국
미술과 영어를 교차로 가고 그 사이 시간에 맞춰 피아노를 매일 집어넣었다.
미술학원은 학교에서 50미터쯤 떨어진 거리,
피아노 학원은 학교와 집 가운데쯤이지만 차량 운행을 한다.
각 학원별 수업 시간표가 정해져 있어서 짜 맞추다 보니 결국 학교 바로 옆 건물에 영어를 넣었다.
마침 아이가 영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서 수월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
월, 수는 미술 먼저 갔다가 피아노에 가고
화, 목, 금은 피아노 먼저 갔다가 영어를 가는 식이다.
다른 곳은 차량 운행이 되지 않았기에 피아노를 허브로 학원 사이에 픽 드롭을 할 수 있게 했다.
추후 아이의 요청에 따라 평일에 한 번, 주말에 한 번 수영 수업도 넣었다.
하지만 빈틈없을 줄 알았던 모든 계획은 망할 코로나 때문에 차질이 생겼다.
아이의 하교시간은 12시 20분으로 당겨졌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통 2시부터 시작하는 모든 학원의 수업시간에는 변동이 없었다.
남편과 나는 점심을 포기하고 시간을 내서 매일 하교하는 아이를 번갈아 데리러 갔다.
학원시간까지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할머니 집에도 맡기고,
일터에도 데리고 가고, 친구네 집에도 맡겼다.
그나마 학교를 갈 수 있을 때는 나았다.
학교조차 가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다행히 남편은 재택근무를 할 수 있어 학교를 가지 못하는 아이를 곁에 두고 일할 수 있었다.
남편이 일이 있을 때는 내가 휴가를 내거나 재택근무를 했다.
직장에서는 눈치를 봐야 했고, 일은 진행이 더뎠으며, 아이조차 제대로 돌볼 수 없었다.
집안은 엉망이고, 아이는 방치되고, 일의 만족도는 떨어졌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이러고 있나..라는 생각이 자주 엄습했다.
그 말이 맞았다. 3월 입학을 앞두고 나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바로 그 말.
초등 1학년은 워킹맘의 무덤이라는 그 말에 나는 두 손을 들고 싶어 졌다.
교문 앞에서 하교하는 아이를 기다리던 많은 엄마들,
그 엄마들은 다 어떻게 아이를 돌보고 있나..
궁금해지던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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