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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쓸쓸 Jun 19. 2024

왜 작은 학교는 더 작아지고 큰 학교는 더 커질까

* 교육 계간지 <민들레> 152호


* 교육 계간지 <민들레> 152호에 실었습니다. 


서울시 강서구의 한 초등학교 운동회


아이가 돌이 될 무렵부터 4년간 살았던 집은 ‘스쿨 뷰’, 12층 아파트 베란다에서 초등학교 운동장이 훤히 내다보이는 곳이었다. 아이의 지독한 감기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던 어느 날. 집 앞 초등학교가 떠들썩했다. 쿵짝쿵짝 음악 소리와 호루라기 소리, “와”하는 함성 소리…, 운동회가 시작되나 보다! 심심했던 아이와 나는 베란다로 구경을 나갔다. 한 선생님이 호루라기를 불며 학년별로 학생을 정렬시키고 있었다. “자, 1학년 모이세요! 자, 다음 2학년, 3학년…” 뭔가 이상했다. 이게 다라고? 이게 한 반 아니고 한 학년이라고? 한 학년이라고 모인 아이들이 채 스무 명도 되지 않았다. 


2023년 이 학교의 학생 수는 100명 남짓. 두 학년을 제외하면 한 학년당 한 학급씩 있고, 학급당 학생 수는 11.7명에 불과하다. 지난 15년 동안 이 학교의 학생 수는 4분의 1 가까이 줄었다. 서울의 아파트 단지 한복판에 있는 이 학교의 학생 수는 왜 이렇게 적은 걸까? 급격히 줄어드는 출산율의 영향이 크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이 학교는 서울시 강서구의 오래된 주공아파트 단지 사이에 있다. 학교 오른쪽으로는 임대단지가, 왼쪽으로는 분양단지가 학교를 감싸고 있는 구조다. 1995년에 입주한 영구임대단지의 구성원 대다수는 노령화되어 학령기 아동을 찾기 힘들다. 분양단지의 부모들은 자녀를 이 학교에 보내기를 꺼린다. 임대단지의 아이들이 이 학교에 배정받는다는 이유다. 대부분은 아이가 초등학교 가기 전에 이사를 가고, 위장전입을 해서 근처 다른 초등학교에 보내기도 한다. 임대단지가 배정되지 않는, 10분 거리의 다른 초등학교 재학생 수는 이 학교의 5배에 달한다. 


이 학교의 재학생이 100명 남짓으로 줄어드는 동안, 비약적으로 커진 학교도 있다. 같은 강서구에 위치한 공진초는 학생 수가 15년 사이에 6배 이상 늘어, 서울시에서 두 번째로 학생 수가 많은 학교(1937명)가 되었다. 가까이 있는 공항초 역시 1551명으로 4배 이상 늘었다. 공진초와 공항초가 위치한 마곡 지구는 대기업이 유치되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건설되면서 신도시로 개발된 곳이다. 넓은 도로와 잘 구획된 공원, 유기농 매장과 초등 대상 학원이 밀집해 있고, 강서구 내에서 높은 집값을 자랑한다. 지역 정치인들은 선거철이 되면 마이크를 들고 외친다. “○○동도 마곡처럼 개발하겠습니다!” 

 


인구감소가 심하다는데 신도시에 가면 어딜 가나 애들뿐


여기까지는 내가 태어나 유년기 대부분을 보냈고, 지금도 살고 있는 서울시 강서구의 이야기다. 그런데 대부분의 학교가 작아지고 심한 경우 폐교되기도 하지만, 소수의 학교는 오히려 커지는 현상은 내가 사는 지역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주간지 시사인에서는 전국 초등학교들의 학생 수 증감 현황을 인터랙티브 지도로 만들었는데, 이 지도는 2008년과 비교해 폐교한 학교는 검은색으로, 학생 수가 감소한 학교는 노란색으로, 학생 수가 증가한 학교는 빨간색으로 표시했다. 수도권에서 멀어질수록 검은색 학교가 많아지고,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막론하고 노란색 학교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가운데, 간간이 빨간색 점이 반짝였다. 지도를 확대해보니, 이 빨간색 학교는 마곡‧위례‧다산‧고덕‧잠실 등 수도권 신도시나 대규모 재건축‧재개발 지역에 있다. 빨간색 학교의 학생 수가 천 명을 가뿐하게 넘어가는 것을 보며 신도시 사는 친구의 말이 새삼 떠올랐다. “동네에서는 어딜 가나 애들이 많으니까…. 인구감소가 심하다는데 남의 나라 얘긴가 싶을 때도 있다니까.” 


초등학교 별 학생수 증감을 표시한 시사인 지도 (https://student.sisain.co.kr/)


학생 수의 증감 여부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시사인 지도로는 간과하기 쉬운 것이 있다. 2008년에 비해 학생 수는 감소했을지라도, 강남과 목동 등 소위 학군지라고 불리는 지역에는 학생 수가 천 명이 넘는 학교가 압도적으로 많다. 서울시교육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시 초등학교 중 학급당 28명 이상 과밀학급이 있는 학교는 13.2%(80개교)로, 이 중에서 서초·강남지원청 소재 학교가 36,4%(19개교)를 차지했다. 


대다수 지역에서 학생 수가 줄어드는 것과 별개로, 신도시나 재건축‧재개발이 진행된 지역, 그리고 학군지의 학교에는 아이들이 몰린다. 이러한 학교 양극화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도시형 캠퍼스(분교)’ 설립을 추진하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폐교 위기에 처한 소규모학교가 증가하는 데 반해, 대규모 재건축・재개발이 일어나는 특정 지역은 오히려 학생 수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는 학교의 지속적인 과대・과밀, 원거리 통학 문제 등을 유발하며 서울 안에서 교육환경의 차이를 만들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교육적 개입이 필요한 상황임에 공감하면서도, 나는 학교의 양극화 현상이 ‘대규모 재건축‧재개발’이라는 중립적 언어로만 해석되는 것에 아쉬움을 느꼈다. 물론 재건축‧재개발로 주거지가 늘어나면 해당 지역에 학령기 자녀를 둔 가족도 자연스레 늘어날 테다. 하지만 인구감소가 가파른 와중에도 일부 지역, 특히 신도시나 학군지처럼 주거지로 각광 받는 지역에는 아이들이 폭발적으로 몰리는 현상을 ‘대규모 재건축‧재개발’이라는 단어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왜 인구감소는 이토록 불평등하게 작동하는 것일까?  



균질적 집단에서 안전하게 자라길 바라는 욕망 


“결혼이 중산층 이상의 문화가 되어가고 있어요.” 김영하 작가가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인간 잡학사전>(2022년 12월 9일 방영)에 출연해서 한 말처럼, 결혼과 출산은 이 시대에 일종의 특권이 되었다.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아이를 낳은 가구를 저소득층‧중산층‧고소득층으로 나누어 비율 변화를 살펴본 결과, 저소득층(11.2%→8.5%)과 중산층(42.5%→37.0%)이 차지하는 비율은 줄어든 반면 고소득층(46.5%→54.5%)이 차지하는 비율은 늘었다. 오늘날 태어나는 아이 중 절반 이상은 고소득층 자녀인 셈이다. 결혼과 출산을 선택하지 않는 것에는 높은 집값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여러 원인이 있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출산을 선택할 때는 학군지의 높은 집값을 감당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인간 잡학사전> 2022년 12월 9일 방영본 갈무리


학군지의 높은 집값을 감당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면, 구도심보다는 신도시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선택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신도시의 환경은 육아하는 이들에게 특히 매력적이다. 아파트 단지 안으로는 차가 들어오지 못하거나 차도와 인도가 명확히 분리되어 보행이 안전하고, 단지 안에 유아차를 끌 수 있는 산책길이 갖춰져 있으며, 아이가 킥보드나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공원이 근처에 있다. 매력적인 요소는 더 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는 ‘균질성’을 보장한다. 소득 수준과 생활 수준이 비슷한 이들이 모이고,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초등학교는 아파트 단지 주민의 자녀로만 채워진다. 

 

균질적 집단 속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오늘날 양육자에게 강력한 욕망 중 하나다. 요즘 양육자들은 자녀 교육을 위해 이사를 결심할 때, ‘공부 시키기 위해서’ 이사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공부를 잘하지 못하더라도 비슷한 수준의 친구들 속에서 안정적으로 자라기를 바라서’라고 말한다. 전자의 목적을 세련되게 감추는 말이지만, 후자의 말 자체가 갖는 함의를 무시할 수는 없다. ‘대학 졸업장과 성실함을 바탕으로 삶을 일구어온 부모 밑에서, 자녀 교육에 신경 쓰는 분위기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성실하고 순할 것이다….’ 이러한 기대속에는 자신과 다른 환경에서 자란 이질적 존재에 대한 공포가 있다. ‘빌거’(빌라 거지), ‘휴거’(휴먼시아 아파트 거지), ‘월거’(월세 거지)라는 아이들 세계의 혐오 표현은 어른들의 공포를 학습한 결과다.


 

‘작은 학교가 무섭다’는 새로운 서사

 

과밀학급은 부동산 시장에서 핫한 키워드다. 과밀학급이 있는 지역의 부동산이 가격이 상승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 지역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이 글을 쓰기 위해 ‘서울 과밀학급’을 초록 창에 검색했을 때, 가장 많이 등장한 글 역시 교육 관계자가 아니라 부동산 투자자의 글이었다. 반면 작은 학교는 주거지로 선호하지 않는 지역에 많고, 이러한 학교의 재학생 수는 가파르게 줄어들고 있다. 2023년 폐교한 서울 화양초는 유흥시설이 많고 1인 가구 거주비율이 높은 곳이었고, 2020년 폐교한 서울 염강초는 임대아파트 비율이 높은 곳이었다. 

 

최근 눈에 띄는 현상 중 하나는, ‘작은 학교를 보낼까 큰 학교를 보낼까’ 고민하는 지역 맘카페의 글에 자녀를 작은 학교에 보내고 만족하는 학부모의 경험담만큼이나, 그렇지 못한 학부모의 경험담이 활발하게 유통된다는 것이다. 다양한 체험 활동이 가능하고 교사와 친밀하게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등 장점이 많지만, 기질적으로 맞는 친구를 찾지 못하거나 친구와 사이가 틀어져도 6년 내내 같은 반을 해야한다는 것은 큰 부담이다. 

 

전교생이 5명인 산골 분교에 발령받은 교사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선생 김봉두>가 개봉한 건 2003년. 획일화된 제도교육, 입시 위주 경쟁교육의 대항 담론으로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이 확산된 시기와 비슷하다. ‘순박하고 해맑은’ 아이들, 촌지를 받는 불량교사가 아이들에게 감화되어 헌신적인 교사가 되는 줄거리, “술래잡기 고무줄놀이”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OST(자전거탄풍경 <보물>) 등은 오랫동안 작은 학교를 대표하는 메타포로 쓰였다. 

 

어떤 대상을 낭만화, 타자화하는 서사였지만, <선생 김봉두>는 작은 학교의 가치를 매력적으로 홍보하는 서사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 양육자들은 이러한 서사를 예전처럼 쉽게 믿지 않는다. 어느 정도 규모의 집단이 교육적 효과가 높은가에 대한 고민, 공동체 안에서 부대끼는 것에 대한 거부감, 소비자 정체성의 확산 등등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겠다. 이제 작은 학교에 대한 서사는 조금씩 바뀌고 있다. 동료 교사가 적어서 과도한 업무 부담에 시달리는 교사, 같은 반 친구와 문제가 있어도 계속 한 반을 해야 해서 난감한 아이, 이미 형성된 학부모들의 관계 속에 끼어들지 못해 불편한 양육자…. ‘작은 학교가 아름답다’는 대항 서사가 어느덧 ‘작은 학교가 무섭다’는, 또다른 대항 서사로 바뀌고 있는 건 아닐까. 


교육적 해법을 말하기 전에

 

큰 학교는 커지고 작은 학교는 작아지는 현상은 수도권 중심주의와 부동산 양극화, 계급에 따른 거주지 분화 등이 직접적으로 얽힌 문제이기에, 교육적 해법으로 풀기 어렵다. 후기자본주의의 불평등 심화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이 장면에서만큼은, 윤리적 성찰과 반성 역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중앙동’과 ‘남일동’을 둘러싼 재개발, 빈부격차와 대물림 등을 그린 김혜진의 소설 <불과 나의 자서전>은 싱글맘 주해가 재개발이 비껴간 달동네 남일동에 이사 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주해는 남일동을 감싸고 있는 무력감과 패배감에 주저앉지 않고, 집 앞 골목에 가로등을 설치해달라고 민원을 넣고, 동네 벼룩시장을 연다. 하지만 남일동의 재개발 소식에 주해의 활력은 어딘가 방향이 바뀐다. 수아가 중앙동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남민’(남일동에 사는 난민)이라고 놀림을 받은 날, 주해는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여기 개발되고 우리 아파트로 이사하면 나아질 거예요. 여기 남일동 일대가 달라지면 이런 일도 더는 없을 거고요.” 

 

재개발 아파트로 이사하고 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주해의 바람은 끝내 이뤄지지 못한다. 재개발을 통해 상승하려는 욕망, 내가 상승하는 만큼 누군가를 분할선 밑으로 밀어내려는 욕망, 분할선 이편과 저편으로 끝없이 가르려는 욕망, 그 욕망이 다름 아닌 가족의 사랑이라는 형태로 전수되는 과정…, 그 모든 것들을 ‘나’(1인칭 화자)는 외면하지 않고 응시한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정면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마음, “자기 응시를 통해 혐오를 비추는 불빛”(해설). 이것이 폐교 옆 과밀학급이 생기는 이상한 시대, 섣부른 희망이나 해법 대신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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