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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elaide Son Jan 28. 2022

어쩌다 이사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사를 결심한 것은 사실 늦공부를 시작한 남동생을 배려하기 위함이었다. 나의 동생은 무려 대학원 생활을 어언 8년.... 아니 남동생의 이야기는 시작하자면 하염없이 긴 대 서사시가 될 것이 틀림없어 후일을 위해 잠시 미뤄두고. 강서로 출근하는 남편과 강북으로 출근하는 나, 경기 남부로 통학하게 될 남동생, 이 삼자의 접점을 찾다 보니 결국 결혼 전 살던 동네로 후보지가 좁혀졌다.


나도 사실 잘 모르고 있었는데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언젠가는 그 동네로 돌아가 살고 싶은 나의 소망을 잘도 말하고 다녔는지. 이사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나와 남편의 지인들은 결국 내가 소원을 성취했다며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그러나 꼭 내가 나의 사리사욕을 채우고자 그 동네를 꼽은 것은 아니었고, 거듭 말하지만 3자의 출퇴근 및 통학 시간을 고려한 기가 막힌 절충안이었다는 게 나의 변론이지만 나의 이 답도 없는 향수병을 치유하는 측면도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


공교롭게도 전세 들어갈 곳 알아보러 부동산 약속을 잡은 날은 시아버지의 환갑날이었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이런 데서 밥을 먹어보겠냐며 손을 떨며 소공동 롯데호텔에 식사를 예약해놓았더니 덜컥 거리두기가 상향되는 바람에 무산되었고, 꼼짝없이 집에서 행사를 치러야 하는 상황. 참말로 맏며느리 인생 최대 위기다.

아... 눕고 싶다....


머릿속으로 시간을 이리저리 헤아려보아도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 스케줄이었다. 이사 갈 곳은 지금 집에서 편도로 한 시간 이상이 걸리고, 우리는 그날 여섯 집을 보기로 했는데 돌아오면서 점심도 먹고 돌아와야 하니..... 결국 전날 밤 팔을 걷어붙이고 등갈비 양념을 재우고 미역국을 미리 끓여두었다. 남편은 괜히 내 눈치를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스트레스와 피로가 누적된 아내가 곧 활화산처럼 터지기라도 할 것 같았는지 자꾸만 이쯤 하고 넣어둬라 그냥 아무거나 시켜먹자? 내일 하게 그만둬라 하며 주변을 맴맴 도는데 사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이 자리를 빌려 말하고 싶군요. 메누리이자, 아내이자, 누나이자, 엄마인 나의 바쁘고 분주한 하루가 그렇게 저물었다.


아이를 남편에게 맡겨놓고 동생과 함께 결혼 전 살던 동네로 차를 모는데 머릿속이 수많은 생각으로 복잡해졌다. 그리고 심지어 멀었다. 이렇게 먼 동네로 이사를 왔었구나. 다시 돌아갈 일도 더불어 아득하게만 느껴졌으나 일단 엎질러진 물이니 수습은 해야 한다. 약속을 잡았던 여섯 군데의 집을 보았고, 내 마음의 1순위와 2순위는 이미 빠르게 정해진 상태였다. 더 이상 층간소음으로 아랫집과 분란을 겪고 싶지 않았으므로 필로티 혹은 1층 매물을 찾고 있어서 다른 조건들은 모두 미뤄두었기 때문에 의외로 후보는 쉽게 추려졌다.


숨도 돌릴 새가 없이 근처에서 빠르게 점심을 해결하고 집으로 한참 차를 달려 돌아왔다. 간밤에 미리 준비를 해둔 덕에 조촐한 환갑상도 순조로이 차려졌다. 갑작스러운 이사 소식에 시부모님은 조금 당황하시는 듯했으나 뭐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냐는 마음으로 축하해주셨다. 메누리의 아름다운 밥상 앞에선 언제나 덕담만이 오가게 되어있는 법이다.


모든 게 정리되고 그 언젠가 남편과 함께 술 한잔을 기울이며 이 날을 소회 하는데, 이렇게 나에게 미안하고 또 감사한 날이 없었다고 다시금 부부 사이의 돈독함을 확인했다나. 이게 다 뭐라고 이렇게 과분한 찬사를 받나 싶으면서도 나 또한 나 자신의 능력치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린 날이 아닌가 싶은 생각에 흡족했던 하루였다. 결혼 전이었다면 고작 맏며느리 노릇을 야무지게 해내는 일로 남편의 애정을 확인하는 이 상황에 분개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결혼생활은 결국 장기적으로는 섬세하게 설계된 양성 되먹임 작용이다. 나의 이런 수고로움(거창하게 희생이라고 말하지도 않기로 했다)이 결국 배우자의 마음에 오래도록 고마움으로 남아 또 서로에게 보다 충실할 수 있는 단단한 기반이 되어준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감사하게도 나는 이런 성숙한 인간이 되어 있었다. 이 또한 결혼 생활의 결실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이사 이야기로 돌아와, 시부모님을 보내드리고 우리 가족은 후보지 1과 2를 두고 치열한 회의를 펼쳤다. 후보지 1은 지하철 역 및 상가와 매우 멀다는 것이 치명적인 단점이었으나 집 상태가 양호하고 융자가 없는 깨끗한 등기부가 매력적이었으며 가격적으로 일부 협상의 여지가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었다.(위치적인 약점 때문에 오랫동안 나가지 않던 물건이었다.) 후보지 2는 지하철 및 상가와 조금 더 가까웠고 현재 공실 상태라 언제든 입주가 가능하며 아주 약간이지만 인테리어가 되어있는 집이라 나는 사실 후보지 2에 더 힘을 실었지만 치명적 이게도 집주인이 절대 상환하지 않겠다고 하는 융자가 일부 남아있는 집이었다.


깨끗하게 잘 정돈해놓은 내 집을 두고 더 구축으로 들어가는 건데 최소 도배는 하고 들어가고 싶었지만 당일 도배가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재빨리 다른 작전을 짜야했다. 이사 갈 집 부동산에 전화를 걸어 원하는 가격으로 조정을 해주신다면 후보지 1과의 계약 의사가 있음을 피력하고, 바로 곧이어 우리 집을 계약한 세입자에게는 혹시 잔금일보다 이틀만 더 늦게 입주할 수 없겠냐는 제안을 했다. 도배와 조명 교체, 입주청소를 진행하는데 빠듯하지만 이틀이면 가능할 것 같다는 계산이었다. 양쪽의 전화를 기다리느라 거의 영겁의 시간이 흐르는 것만 같은 오전이었는데 어찌어찌 비슷한 타이밍에 모두 회신을 받았다. 나의 제안이 모두 받아들여진 것이다.


나는 정말이지 지독한 ESFP형 인간이라 어마어마하게 충동적이고 계획이란 건 세울 줄도 지킬 줄도 모르는 그런 종류의 사람에 가깝다. 20대는 내가 어떤 인간인지 잘 모르고 살던 시절이라 지키지도 못할 계획을 참으로 많이도 세우고 실천하지 못함에 좌절하곤 했는데 이제는 내가 이런 사람임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다만 이토록 비체계적인 인간도 실천에서만큼은 이런 집요한 체계성을 발휘하기도 한다. 양쪽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부동산 소장님의 안내로 이사 갈 집의 집주인에게 계약금의 일부를 송금했다. 내 집 장만을 한 지 4년여 만에 나는 다시 임차인이 되었다. 이사 날짜가 비로소 정해졌다. 월요일에 집을 세 놓은 지 꼭 닷새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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