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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elaide Son Feb 04. 2022

숨고를 틈이 없는 이사 준비

무소의 뿔과 같은 나날들

때때로 나는 무진장 성격이 급하다. 일단 장애물이 던져지면 앞뒤 안 보고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편. 남편은 너의 이런 성향이 주변 사람을 매우 열 받게 할 수 있음을 충고하였으나, 나는 당신의 미적거림에 더 열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냥 급한 대로 너를 열 받게 하고 일을 해치우고야 마는, 나는 그런 스타일이다. 그러고 보니 서로 열 받아 미치고 팔딱 뛰는 상황이 종종 벌어지는데, 사실 우리의 갈등은 매우 단순하다. 남편의 미지근한 부작위(不作爲)는 나를 열 받게 하고, 나의 코뿔소 같은 작위(作爲)가 남편을 열 받게 하니 그럼 남편이 움직이고 내가 한 발 멈추면 해결되는 일이지만. 우리는 언제나 이 간단한 타협을 이루지 못해 서로 평행선을 달린다. 매일 이렇게 당최 너를 이해할 수가 없다고 혀를 내두르고 어쩌면 이리도 안 맞는단 말이냐 길길이 날뛰며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중인데 양성되먹임(Positive feedback) 운운하며 짐짓 성숙한 결혼생활을 하는 것 마냥 써놓은 지난번 글이 갑자기 부끄러워집니다만. 어쨌거나 이렇게 된 거 열심히 사랑하며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우리 다들 그렇게 살고 있잖아요?


코뿔소 아내는 날짜가 촉박했기 때문에 우선 이사업체를 구하는 일이 다소 걱정스러워 무진장 서둘렀다. (아니, 사실 이미 모든 일을 서두르고 있....)후닥후닥 날짜가 가능한 세 군데를 추려서 견적을 받았다. 이사업체 A, B, C는 각각 우리 집에 와서 6.5톤, 7.5톤, 8.5톤으로 달리 견적을 하고 갔으며 가격도 이에 맞춰 6.5톤 견적을 잡았던 A업체와 8.5톤 견적을 잡았던 C업체는 120만 원가량이 차이가 났다. 견적은 이렇게 천차만별이지만 하나같이 문을 나서면서 끼워 맞춘 듯이 "이 바닥은 나 빼고는 다 사기꾼이에요~"라는 주옥같은 명대사를 남기고 떠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어차피 모두가 사기꾼이라면 싸게 당하는 사기가 낫다고 생각해 가장 적게 견적을 낸 A업체와 계약을 하기로 했다.


잔금 날과 입주일 사이에의 이틀간 간격이 생겼다. 나의 값진 외교(?) 벌어들인 소중한 이틀이니 알차게 써야만 한다. 이틀간 하고 싶은 것은 입주청소와 도배, 그리고 LED조명 교체. 막상  맞추려니 이틀이 빠듯하기도 해서 하루만  늦춰달라고 할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주어진 시간 안에서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 여러 가지 방향으로 스케줄을 고려해보았고 이사   세입자가 빠지는 잔금 당일 도배를, 그리고  이튿날 하루 종일 입주청소를  후에 입주 당일 오전에 2시간가량이면 충분하다 하니 LED 조명 교체 시공을 하기로 하였다.


입주청소는 평당 10,000원에서 15,000원 선, 도배 후에 필히 해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도배 시공을 마음먹은 나에게는 생략할 수가 없는 중요한 과제였다. 짐이 들어오고 난 후와 짐이 들어오기 전의 가격이 크게 차이 나고 경험상 크게 무언가를 기대하기보다는 그냥 돈을 주고 이 집을 닦았다... 정도의 위안이랄까. 그냥 많이들 하는 대형업체에 견적을 받아보았더니 평당 11,000원을 불렀다. 계약금 없이 시공 3일 전에만 연락을 주면 위약금 없이 취소가 가능한 점이 마음이 들어 이 업체와 우선 계약을 해 두었다.


본의 아니게 이사 갈 집마다 도배를 하고 있어서 이번이 벌써 세 번째 도배 시공이 되었다. 이미 앞전 두 집을 같은 사장님께 도배를 맡겼기 때문에 이번에도 별 고민 없이 이분께 도배를 맡길 생각이었다. 신혼집 입주를 앞두고 아무 연고도 없는 동네를 헤매며 지물포를 찾던 시부모님께서 바로 옆에 오래된 구축 아파트 상가에 입주한 인테리어 업체를 발견하고 문을 두드린 것이 사장님과의 인연이었다. 오래된 아파트는 보통 리모델링을 심심찮게 하기 때문에 근처에 인테리어 가게가 필히 있을 거라는 어머님의 헤아림이 옳았던 셈. 어머님은 돌아가신 우리 친정엄마가 장흥 출신이라는 사실까지 어떻게 기억해내시고는 사장님이 장흥 사람이라는 것이 우주가 우리를 운명의 끈으로 맺어주었다고 생각하셨는지 사장님이 내주는 묻지 마 견적에 아무런 흥정도 하지 않았고 우리도 덩달아 턱턱 대금을 치렀다. 당시엔 얼마를 지불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지만 이번에 서른네평 전셋집 광폭 합지 도배를 의뢰하니 220만 원을 불렀다. 4년 사이에 비로소 세상 물정에 밝아졌는지 가격이 터무니없다는 것이 얼른 피부로 다가왔다. 남편은 옛정을 생각해서 웃돈을 주더라도 아는 사람에게 맡기자는 입장이었는데(그러고 보면 남편은 정에 매우 약하고 어머님의 "우주가 이어준 인연설"을 대체적으로 믿는 편) 20만 원 정도 네고해줄 수 없겠냐는 요청에 콧방귀를 뀌는 사장님을 보며 나는 조용히 마음을 접었다.


즉시 "숨고"라는 어플을 깔고 원하는 날짜에 34평 합지 도배를 해줄 수 있는 업체를 찾았다. 정보의 접근성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더 이상 모르는 동네에 가서 지물포가 어디 있는지 헤매고 다닐 필요도 없고 힘들게 지역 커뮤니티 카페에 가입하고 승인을 얻어 정보를 구걸하지 않아도 된다. 도배는 숨고에 올라오는 시공 중에 비교적 고가 시공이라 순식간에 열 개 가까운 업체에서 제안을 보내왔다. 후기가 우수하고 시공 경력이 풍부한 업체는 얼른 눈에 띄었다. 가격도 합리적이었다. 140만 원에 가격을 협상하고 계약금을 보냈다.


다음으로는 역시 숨고 어플을 활용해서 LED 시공 업체도 찾아보았다. 이 역시 시공난이도 대비 공임이 비싼 작업이라 수많은 업체가 천차만별의 견적을 내밀었다. 이사 갈 지역에서 가까운 곳에 조명가게를 하고 있다는 사장님에게 상담을 받으며 공사 일정을 맞춰보던 중이었으나 어쩐지 끝까지 시공 가액에 대해 어물쩡 넘어가려는 모습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거기에 처음엔 언급되지 않았던 추가 비용까지 조금씩 붙여나간다. 시공 전날 방문하여 기존 조명을 탈거하고 들어갈 조명 개수와 사이즈를 파악해야 하니 10만 원의 출장비를 추가로 지불하라고 하는데 간단한 조명 교체 시공에 사전답사 비용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 속 보이는 계산이지 싶었다. 깔끔하게 총금액 60만 원으로 견적한 사장님께 두 번째로 연락을 취해 일정을 잡았다. 그는 이렇다 저렇다 첨언이 없고, 20만 원의 정액 출장비를 받는다고 하였다. 참고로 지난번 도배를 해주셨던 사장님께도 LED조명 교체를 의뢰했었는데 가장 저렴한 모델의 조명으로도 100만 원의 견적을 불렀다. 눈 뜨고 코 베이는 건 두어 번으로 족하니 이번에는 품이 들더라도 직접 알아보고 각각의 공사를 나누어 계약했다. (숨고 어플을 매우 추천합니다!!)


눈코   없이 바쁜 나날들이 흘러갔다. 하루가 30 시간 같던 나날들이 지나고 굵직굵직한 일들이 모두 마무리가 되었으며 이제 차분히 집안 살림을 천천히 돌아보고 줄여나갈 짐들을 줄이는 기간을 보내야 한다....라고 생각하던 찰나! 경기지역 학교에 지원해놓은 동생의 최종 합격 발표일이 어느덧 다가왔다. 기대 이상으로 준수한 성적을 거뒀기 때문에 무난한 곳에 지원을  두었고 모의 지원상으로도 1 배수 이내였으며 직전 연도 입시 데이터를 뒤져보아도 합격에 무리가 없는 고득점이었다. 다들 차분히 결과 발표를 기다리고 있던 화요일 오후. 예정된 4시가 가까워오자 나는 조금씩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수험번호를 내가 알고 있었으면 좋으련만. 괜히 입학처 홈페이지를 들락날락하면서 소식을 기다리는데 4 1, 2 6분이 되도록 아무런 연락이 없다.  뒤가 차가워지는 느낌과 함께 불길한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찔하고  아찔한 작가의 이사 대장정은 다음  금요일에 계속 연재됩니다!)


(해당 업체에서는 어떠한 금전적 혜택을 받은 바가 없지만 주신다면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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