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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elaide Son Jul 01. 2022

2022년 5월 19일의 기억

생체간이식 수술을 하던 날

잠이 올 턱이 없었다. 평소에도 잠자리를 꽤 가리는 편인데 이른 아침 첫 스케줄로 잡힌 수술을 두고 나는 결코 편히 잠들 수 없었다. 꼬박 뜬 눈으로 날을 지새우고 이른 새벽부터 압박 스타킹을 신고 마지막으로 맞은편 병실에 있는 아빠에게 인사를 하고 왔다. 항생제까지 모두 맞고 기다리는데 7시 30분 즈음 내려간다고 기다리던 스케줄이 슬금슬금 뒤로 밀려 9시가 거의 다 되어서야 콜이 왔다. 그러는 사이 아빠는 나보다 먼저 수술장에 내려가서 먼저 수술을 시작했다. 수혜자의 병들고 낡은 간이 적출되고 난 다음에 시차 없이 새 간을 투입하기 위해 기증자는 최대한 타이밍을 지켜보다가 수술장에 입장하게 된다.


코로나 때문에 보호자는 수술장 앞까지도 따라오지 못하고 병동 엘리베이터 앞에서 나를 배웅해야 했다. 이송 침대에 실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철컹철컹 2 수술장으로 실려왔다. 분명 사지가 멀쩡한 사람이고 거동에 전혀 불편함이 없음에도 반듯하게 눕혀 수술장으로 배송되는  자신이 마치 제단 위에 고기 같다는 생각에 잠시 웃펐다. 걸어가라고 하면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을까 , 아니면 중간에 도망갈까봐? 침상 이송을 시켜주는 것인지, 수술장까지 움직이는  찰나에 일어날  있는 혹시 모를 낙상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안전하게  상태 그대로 옮겨주는 것인지  수는 없지만 아마 양쪽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나는 매우 안전하게, 누워 있던  자세 그대로 수술장으로 옮겨져 왔으니까.


바로 수술실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수술장 로비에서도 잠깐의 대기시간이 있었다. 이송 요원들은 마치 발레파킹 기사들처럼 들어오는 침대를 가지런히 나열하며 다음 침상의 자리를 확보했다. 수술실 간호사가 침상을 차례로 돌며 환자의 이름과 생년월일, 그리고 오늘 받는 수술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내 양 옆으로는 백내장 수술을 기다리는 할머니와 무슨 수술을 기다리는지 알 수 없는 프랑스 할아버지가 누워 있었는데 수술장에는 보호자가 따라 들어올 수 없지만 그는 통역이 필요한 특수성이 있어 통역 가능한 보호자를 동반했다. 두 사람이 쉴 새 없이 불어로 떠드는 것을 듣는 것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머리를 무심히 쓸어 넘겨주는 젊은 동양인 여자는 그의 연인같이 보이기도, 입양한 딸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단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두 사람의 눈빛과 말투로 어림잡아 연인 쪽이 더 가능성 있어 보였다. 그러는 사이 내 차례가 돌아왔다.


수술실까지 가는 길은 수술장 로비에서부터도 길고 길었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종종 보이던 그 장면 그대로 흰 천장 타일과 형광등이 눈앞을 휙휙 지나갔다. 생각보다 깊숙하고 내밀한 곳에 수술실은 숨겨져 있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C병원은 시설 또한 매우 노후해서 누운 자세 그대로 흘깃 염탐한 풍경들에 갑자기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연식이 어림짐작 가는 낡은 벽체와 거대한 비닐로 문 막음을 해 놓은 공간들(이 즈음 매우 심란해지기 시작함)을 수 개 지나치게 되자 이게 수술장인지 연쇄살인마의 비밀 작업실인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다행히 내 침상이 마침내 도착한 곳은 최신식의 희고 깨끗한 수술장이었다. 그제야 안도감이 들었다. 대여섯 명의 의료진들이 깨끗한 차림으로 분주히 수술을 준비하고 있었고 스크럽 널스의 지시에 따라 나는 순순히 수술대에 누웠다.


수술대기장에서도 한번 확인했지만 다시 한 번 생년월일과 이름, 그리고 LT Donor임을 확인했다. 어제 수술동의서를 받으러 왔던 인턴 선생님이 수술대를 준비해주었는데 아마도 집도에 참여하는 듯한 펠로우 닥터에게 수술실에서도 이래저래 혼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짠한 마음이 들어 마스크 너머 눈으로 인사를 보냈다. 스크럽 널스가 바이탈 체크를 위한 패치를 몸 여기저기 붙여주고 난 후 코와 입에 호흡기를 대주었다. 나는 "저 이제 기절하는 건가요?"하고 물었다. 갑작스러운 나의 질문에 당황했는지 호흡기를 잠깐 떼고는 아니요, 이건 그냥 산소예요 있다 마취가 시작되면 다시 알려드릴게요라고 대답했지만 그녀는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드라마틱하게 마취에 빠지는 순간을 기억하고 싶었는데 그녀는 내 눈을 보지도 않은 채 발치 어딘가를 응시하며 그저 웅얼웅얼 자 이제 좀 졸리... 이렇게 말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 음악 소리가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다른 공간에 와 있었다. 처음 듣는 목소리가 큰 소리로 나를 깨웠다. "2시 40분입니다. 수술이 끝났습니다. 정신이 드세요? 많이 아프세요?" 그 목소리와 함께 생경한 고통이 온몸을 휘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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