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티 플레져(My Guilty Pleasure)
감자탕 집에서도 테이블마다 재떨이가 있던 시절이었다. 24시간 해장국 집에 3차나 4차로, 아니면 아예 날 밝아 해장술을 하러 가면 한 테이블 정도는 식사와 술과 담배를 곁들이는 테이블이 있던 시절이었다. 카페에서도 바에서도 흡연가를 위한 공간이 어디나 있었다. 코엑스에서 심야 영화가 끝난 후 엔딩크레딧이 오르는 것을 보고 나오면 우리은행 영업점 옆 계단으로 삼삼 오오 모여들어 방금 관람한 영화의 여운을 느끼며 밤공기 사이로 센치한 회색 숨결을 불어넣을 수 있었다. 카페 휘트니의 테라스석은 흡연석이었고, 어느 선선한 여름 저녁이면 긴 햇살을 조명 삼아 시원한 맥주를 기울이며 책과 담배를 함께 즐길 수 있었다.
2012년을 지나면서부터는 식당이며 술집이며 금연구역으로 바뀌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담배 태우기 매우 눈치 보이는 세상이 시작되었으나, 그즈음 대학을 졸업하고 수험생활을 시작했다. 사실 수험생은 담배와 뗄 래야 뗄 수 없는 사이라 세상이 금연을 시작해도 독서실 옥상과 학원 옆 커피빈 흡연공간에서는 원도 없이 담배를 피워댈 수 있었다. 유유상종이라 했던가. 주변에는 비흡연자보다 흡연자가 더 많았고 담배값이 2500원에서 4800원이 되는 동안에도 금연해야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았다.
또한 그 무렵은 시간이 무한하게 많았다. 다만 돈이 좀 없었기 때문에 푼돈을 아껴 여행을 정말 많이 다녔는데 이국적인 여행지의 공기에 더하는 연초 한 모금이 또 기가 막혔다.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지역에서도 담배 태울 친구 만드는 일은 식은 죽 먹기에 가깝다. 사람들은 까마귀처럼 담배를 피워대는 작은 아시안 걸(이십 대 중반이 훌쩍 넘은 나이였으나, 서양인들은 동양인의 나이를 가늠하지 못하므로)을 무척 신기해했기 때문이다. 홀로 낯선 도시의 숙소에 배낭을 푸는 날이면 옥상 테라스에 올라가서 담뱃불을 당기며 사람을 기다리곤 했다. 일산화탄소 연기는 사람을 느슨하게 만들어주었고 여행자들은 마음의 경계를 풀고 어느덧 줄담배를 피워대며 손짓 발짓을 동원해 대화를 이어 나갔다. 나는 제법 사교적인 인물이었고 술과 담배는 이 사교성을 부스트 업 해주는 촉매에 가까웠다. 술 한 병과 담배 한 갑이면 밤을 지새워 누구와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재기 발랄함이야말로 나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쩌다 보니 나는 그저 재미없는 회사원이 되어 있었다.
입사지원서에는 음주와 흡연을 장기로 쓸 수가 없다. 나는 내가 가진 가장 초라하고 재미없는 속성을 들이밀어 (가령 법대를 졸업했다던가) 이 회사에 합격 통지를 받았다. 그리고 늦은 나이에 시작하는 사회생활은 참으로 녹록하지 않았다. 난생처음 겪어보는 부류의 사람들과 소통하고 관계를 다져야 했다. 나의 첫 사수는 나보다 열세 살이 많은 미혼 여성이었는데 이 분의 마음을 사는 일이 참으로 쉽지 않았다. 열세 살이 많은 미혼 남성이었으면 얘기가 좀 달랐으련만. 나는 전혀 그녀를 상대하는 방법을 알 수가 없었고 아마 그분에게도 그때는 나라는 존재가 굉장히 난감했으리라 생각된다. 신입사원 치고는 내 나이가 너무 많았다.
하루 종일 긴장하고 다니는 탓에 온 머리가 지끈지끈한데 나는 긴장이 과하면 졸음이 오는 편이다. 사수가 알려주는 중요한 업무의 지식들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고 키보드 위의 손이 자꾸만 미끄러지며 춤을 췄다. 아, 이쯤 되니 밖에 나가서 담배 한 대만 태우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보다도 더 난감한 순간은 점심 식사 이후에 벌어졌다. 초반에는 몇 안 되는 입사동기들과 함께 점심을 같이 먹기도 했고, 조직의 막내들에게 의례 베풀어주는 후의로 마치 신입생이 된 것 마냥 여기저기 밥을 얻어먹고 다니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남자 동기들에게는 늘 식사 후 슬쩍 담배가 권해졌는데 그 누구도 나에게 담배를 권하는 이는 없었다. 우리 회사는 직원이 200명 정도 되는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조직이었고 여직원이 절반이 넘는 회사임에도 100여 명이 넘는 여직원 중에 아직까지 담배 태운다는 사람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나도 그냥 스리슬쩍 원래 그랬던 것처럼 담배를 피우지 않는 여직원이 되기로 했다. 누군가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일은 굉장히 피곤한 일이기 때문이다. 20대 내내 피워왔던 담배와 드디어 이별하는 듯했는데 그 무렵 지금의 남편과 연애를 시작했다. 담배는 나에게 어떤 낭만의 아이콘 같은 것이었으므로 나는 비흡연자였던 나의 남편과도 이 기호를 아낌없이 공유하였다. 밤이 이슥하게 깊어지면 낡은 복도식 아파트 난간에 팔꿈치를 괴어 놓고 몰래 불을 붙여 함께 담배 한 대를 나눠 피웠다. 밤공기에 촉촉하게 흩어지는 연기를 바라보며 우리는 그렇게 미래를 약속하는 사이가 되었다.
(3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