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한 시간씩 울던 아이

가끔 전업주부가 되고 싶다

by 단미

배시시 웃으며 눈을 뜨는 딸은 세상에서 가장 예쁜 천사다. 맞벌이 부부의 하루 시작은 눈을 뜨면서 분주해진다. 6살 아들과 두 돌이 지난 딸은 엄마 아빠의 시간에 맞추어 하루가 시작된다.


웃으며 눈을 뜬 아이를 안아주고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일어나기를 재촉한다. 엄마 마음은 벌써 바빠졌고 전쟁 같은 하루를 어떻게 잘 시작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아이를 안고 욕실로 들어가 씻긴 후, 편하게 쉴 수 있게 해 주고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아침을 준비한다.


웃으며 일어났던 기분이 유지되도록 조심하며 아침을 먹는다. 즐거운 분위기로 아침을 잘 먹어주면 그날은 성공이다. 어린이집에 가는 것도, 퇴근해서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오는 것도 순조롭게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할 수 있게 된다.





6살 아들과 두 돌이 지난 딸은 같은 어린이집에 다닌다. 엄마 출근시간에 맞추어 같이 등원하고 퇴근시간에 맞춰 함께 하원한다. 좀 더 자란 아들은 엄마와 대화가 가능해서 어린이집에 오고 가는 일이 어렵지 않다. 아직 어린 딸은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예민한 반응을 보이며 엄마를 곤혹스럽게 하는 일이 종종 있다.

아침에 기분 좋게 눈을 뜨면 그나마 수월하다. 울지 않아서 씻기는 것도 쉽다. 기분이 좋으니 아침도 맛있게 먹는다. 어린이집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는 것도 가볍다. 엄마손을 잡고 기분 좋게 어린이집으로 향한다. 길가에 핀 꽃을 보며 꽃과 대화를 나누고, 키가 큰 나무를 올려다보며 인사를 하고, 가끔은 바닥에 그림을 그리느라 바쁜 엄마를 당황스럽게 한다. 그래도 울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한 하루가 고맙다.






퇴근시간이다. 마음이 바쁘다. 어린이집에 늦지 않게 도착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부랴부랴 마무리를 하고 아이들을 데리러 어린이집으로 향한다. 퇴근시간이지만 엄마는 다시 출근을 하는 것이다. 저녁 육아시간이다.


기분 좋게 시작한 하루였으니 퇴근길도 무난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어린이집 문을 연다. 서둘러 왔는데 항상 마지막이다. 다른 아이들은 없고 아들과 딸만 남아있다. 그 모습은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속상하다. 아이들을 안아주고 가방을 챙겨서 어린이집 문을 나선다.


유난히 피곤할 때는 바로 집으로 가기도 하지만, 간단한 장보기를 위해 아이들과 함께 마트에 들르기도 한다. 가끔 군것질도 하고 어쩌다 사달라고 조르는 물건을 사주기도 한다. 집에 들어가기 전에 잠시 여유롭게 보내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 집으로 가야 할 시간이다. 오늘은 잘 들어갈 수 있을까? 걱정되고 염려스럽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걱정은 커진다. 제발, 제발...






엄마 손잡고 룰루랄라 즐겁게 집으로 향한다. 어린이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재잘거리며 잘 걷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른다. 13층 문이 열린다. 운다, 운다, 또 운다.. 오늘도 울기 시작한다.


두 돌이 지난 딸은 현관 앞에만 서면 운다. 악을 쓰며 서럽게 울며 꼼짝을 하지 않는다. 집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고 다시 1층으로 내려가지도 않는다. 그냥 현관 앞에서 꼼짝하지 않고 서서 한 시간을 운다.


왜 그러는지 몰라서 달랬다가, 혼냈다가, 그냥 내버려 뒀다가 다시 달랬다가 혼내기를 반복한다. 이유를 알 수 없으니 답답하다. 기분 좋게 시작한 하루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도 아주 좋았는데, 왜 현관 앞에만 서면 우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딸아이를 안고 집으로 들어가면 기어이 나가서 운다. 알 수 없는 딸의 행동에 결국 엄마가 졌다. 그냥 두기로 한다. 스스로 그칠 때까지 기다려주기로 했다.






결혼하면서 7년을 시댁에서 함께 살았다. 계획하지 않았던 분가를 하게 되었고 딸은 아직 어린 나이에 어린이집을 가게 되었다. 어른들의 일상에 큰 변화가 생기면서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변화를 겪게 된 셈이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한 달 휴가를 내고 함께 보냈다. 한 달의 적응기간 동안 별 탈 없이 잘 지냈고 어린이집에서도 아이들과 잘 어울리며 무리 없이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엄마도 아이들도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느라 애쓴 시간이었다. 한 달의 휴가가 끝나고 다시 출근을 하면서 시작된 딸아이의 울음은 거의 한 달 동안 계속되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1시간 동안 울기를 반복했다. 뭐가 문제일까? 갈등의 기로에 섰다. 직장을 그만둬야 하나, 하루에도 몇 번씩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매일 1시간씩 반복되던 울음은 한 달이 지나니 사라졌다. 어느 날부터 기분 좋게 집으로 들어갔다. 그날의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환경변화에 대한 스트레스라고 막연하게 짐작할 뿐 어째서 그렇게 울었는지, 또 어떤 계기로 울음을 그쳤는지 지금도 알 수 없다. 언젠가 성인이 된 딸에게 물어보았다. 그렇게 울었는데 기억이 나느냐고. 기억나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한 달 동안 엄마의 퇴근길을 그렇게 힘들게 했던 일을 딸은 기억하지 못한다. 차라리 기억나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일하는 엄마는 아이들이 보여주는 행동에 아주 민감하다. 작은 상처라도 엄마 탓인 것처럼 미안한 마음이 크게 작용한다. 한 달 동안 우는 아이를 보며 일하는 엄마여서 그런 힘든 시간을 겪게 했던 것은 아닌지 마음 아팠던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함께 하는 시간이 부족해서 정서적인 결핍을 느끼게 되는 것은 아닐까 염려스러운 마음이 컸다. 만약 일하는 엄마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딸은 1시간씩 울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