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퇴근하세요

가끔 전업주부가 되고 싶다

by 단미

오후 6시, 매일 반복되는 통화가 있다.

어제와 다르지 않고 내일도 똑같겠지만 늘 전화가 온다.




"퇴근하자"

"먼저 퇴근하세요~"


바쁜 시기가 되면 매일 이어지는 야근이 한 달씩 계속되기도 한다. 평소에는 직장인이었던 남편과 퇴근시간이 같아서 중간에 만나서 집으로 가곤 했다. 시댁에서 살 때는 더 바쁘게 퇴근해서 가는 길에 시장을 봐서 들어가기도 했고, 분가해서는 어린이집에 아이들 데리러 같이 가기도 했다.



이른 아침에 아이들 깨워서 밥 먹고 어린이집에 데려다준다. 아이들이 안녕하며 손 흔드는 모습을 보고 바쁘게 발걸음을 옮긴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근을 한다. 출근시간이 빠른 남편은 먼저 집을 나섰고, 혼자서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기까지 이미 온 힘을 다 써버려서 사람들로 붐비는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간은 또 다른 전쟁이다. 맞벌이 부부의 아침 일상은 이렇게 매일 반복된다.


엄마인 제가 아침 전쟁을 치러야 했듯, 아빠인 남편은 저녁에 또 다른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6시 퇴근시간의 통화내용에 따라 어떤 시간이 이어질지 결정이 된다.




바쁘다는 것은 야근으로 이어진다는 것이고 퇴근시간은 혼자 몫이라는 것이다. 오후 6시에 "먼저 퇴근하세요~" 한다면 오늘도 야근입니다, 저녁 전쟁 치를 준비를 하세요~라는 것이다.


아빠가 데리러 가면 엄마가 오지 않았다고 서럽게 우는 딸, 어린이집 선생님께 민망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가는 길에 미리 관심을 보일만한 장난감이나 간식을 챙겨 마음의 준비를 하고 데리러 가지만, 아무리 좋아하는 물건을 내밀어도 소용없고 오직 엄마를 원하는 울음이 계속된다.


선생님과 아빠와 좋아하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겨우 달랜 후 어린이집을 나선다. 갑작스러운 환경변화로 인해 예민하고 까탈스러움이 극에 달한 시기였다.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식은땀이 나도록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던 그 시기는 워킹맘으로서 최대의 위기가 아니었나 싶다.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랄까.


집에 도착하면 아침과 반대의 상황이 이어진다. 저녁을 먹고 씻고 잠자리에 들기까지 아빠는 최선을 다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다. 늦은 퇴근을 하고 아이들이 자는 모습을 보는 것으로 하루가 마무리된다.




바빠요, 먼저 퇴근하세요, 이런 대답이 가장 무서웠다는 남편은 지금도 제가 야근해야 할 상황이 되면 또 다른 의미로 힘들어한다.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지난날과 비교하면 지금은 평온하기만 한 날이다.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 각자 자기 할 일 하며 지내느라 바쁘고 저희 부부는 여전히 맞벌이 중이다.


퇴근 후 운동도 하고 글도 쓰며 각자 좋아하는 일을 하며 지내고 있다. 그런데도 제가 야근입니다,라고 하면 한숨을 내쉰다. 퇴근 후 혼자 보내는 시간이 싫다고 하지만 바쁠 때는 어쩔 도리가 없다.


생각해보면, 남편은 운동하고 저는 글을 쓰며 각자 다른 일을 한다. 운동이든 글쓰기든 같이 움직이며 보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야근하지 않고 정시에 퇴근해서 귀가하면 혼자 보내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일까? 야근이라는 단어에 유독 맥 빠지는 기분을 느끼는 것 같다.




긴 시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야근하는 날이 많았다. 일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하는 것이겠지만, 받아들이는 가족 입장에서는 한숨이 나올 수 있는 일이다. 특히, 주부가 야근을 하게 되면 일상이 두배로 힘들어진다. 그럼에도 야근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잘 견뎠던 것은 가족 모두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바쁜 시기가 되면 지금도 야근은 계속된다. 일을 하는 동안 책임을 다해야하기에 피해 갈 수 없는 일이기도 하지만, 돌이켜보면 가족에게 많이 미안한 일이기도 하다. 엄마 늦어, 바빠, 먼저 퇴근하세요~ 이런 말을 많이 하며 살았다.


돌이켜보면, 일이 쌓이고 바쁜 시기가 되면 그러려니 생각하며 당연스럽게 받아들여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나 보다. 일이 우선이 되고 가족은 나중으로 밀리는 상황이 반복되었던 많은 시간이 미안함으로 다가온다.


"저녁에 맛있는 거 해줄게, 뭐 먹고 싶어?"

이런 말을 하며 즐거운 퇴근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오후 6시, 전화 오면 이렇게 대답해야겠다.

같이 퇴근합시다, 어디서 만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