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왔으면 좋겠어

가끔 전업주부가 되고 싶다

by 단미

초등학교 입학통지서를 받았던 날, 가슴 벅찼던 기분은 아직도 생생하다. 쉬지 않고 직장생활을 했던 나는 아이들이 초등학교 입학을 하면서 직장생활에 대한 갈등을 여러 번 겪어야 했다. 그럼에도,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졸업 때까지 일하는 엄마로 자리를 지켰다.




중,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면서 더 이상 엄마손이 필요 없을 만큼 아이들은 스스로 제 할 일을 잘했다. 오히려 엄마를 도와주는 역할까지 해내며 일하는 엄마의 수고로움을 덜어주었다. 그동안 겪었던 힘든 과정이 있었던가 싶을 만큼 아이들이 다 자라고 나서는 일하는 엄마의 자리가 수월해졌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 어쩌면 엄마의 도움이 더 필요한 시기일 수도 있겠으나, 물리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는 시기는 초등학교 때가 가장 많았고 힘든 시기이기도 했다.


연초가 되면 업무적으로 가장 바쁜 시기를 맞는다. 매년 상반기에 많은 일을 해야 하기에 매일 야근하는 날이 계속된다. 휴가를 낼 수 있을 만큼 여유롭지 못한 상황이기에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여간 곤란해지기도 한다.






학기초, 부모 면담을 하기 위해 학교를 방문해야 할 때가 다가오면 시간을 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어서 머리가 아파 온다. 애를 쓴 덕분에 겨우 참석할 수 있으면 다행스러운 일이고 아이한테 미안한 마음이 덜해진다. 저학년일 때 친구 엄마들이 와서 교실 청소를 해줬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엄마가 학교에 왔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했을 때 많이 미안하고 마음 아팠던 기억이 난다.


더 어릴 적 어린이집에 다닐 때는 야근하는 엄마를 대신해서 아빠가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 아직 어렸던 딸은 아빠가 온 것을 확인하고는 엄마가 오면 집에 간다고 버티며 울기를 반복하기도 했다. 그렇게 울며 아빠와 함께 집으로 온 딸은 엄마가 오는 것도 확인하지 못한 채 잠들었고, 다음날 아침이면 오늘은 꼭 엄마가 데리러 와야 한다고 다짐하곤 했다.






어린이집은 종일반을 운영해서 퇴근할 때까지 돌봄을 받을 수 있어서 그나마 나았다. 초등학교는 수업이 끝나고 방과 후 수업을 하며 엄마 퇴근시간을 기다려야 하지만, 간혹 방과 후 수업이 없을 때가 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비상열쇠를 아이들 가방에 넣어주곤 했는데, 열쇠가 없어졌다며 엄마가 와야 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아찔 해지곤 했다.


지금은 대부분 번호키를 사용하지만 예전엔 열쇠를 사용했었다. 열쇠를 잃어버리는 일이 자주 있었고 그로 인해 누군가는 집에 다녀와야 했던 난감한 상황이 반복되곤 했다. 이렇게 예정에 없던 공백으로 집에 일찍 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오후 내내 불안한 마음이 되곤 한다.


당시, 남편도 나도 직장생활을 하고 있던 시기여서 아무 때나 자리를 비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아이들에게 돌발상황이 생기면 머리가 복잡해지곤 했다. 아무리 일이 바빠도 아이들을 길거리에 있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쩔 수 없이 근무 중에 양해를 구하고 집에 다녀오기도 했다. 아이들을 집에 데려다주고 다시 사무실로 복귀해서 더 늦은 시간까지 바쁜 일을 마무리해야 했다.


어떤 이유로든, 아이들에게 엄마가 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을 때면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이렇게 애들을 고생시키면서 일을 계속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학교는 학기초에 바쁘다. 특히 초등학교는 학교에 가야 할 일이 생기기도 하고 엄마가 준비해줘야 할 것도 많다. 입학한 1학년은 말할 것도 없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새 학기가 되면 아이는 새로운 친구들과 어울리기 바쁘다. 그 시간에 엄마는 아이 친구의 엄마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아이로 인해 연결된 엄마들과의 인연은 평생 가기도 한다. 아쉽게도 나에게는 그렇게 연결된 인연이 없다. 아이와 엄마와 연결되어 좋은 인연으로 이어가는 모습을 보게 될 때, 가끔 아쉽고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아이들이 다 자라고 어린 시절을 돌아보니, 엄마를 필요로 하는 시기는 그리 길지 않다. 잠시 전업주부로 살았어도 좋았을 텐데 일을 핑계로 온전히 집중하지 못해 아이들에게 미안해진다.


'엄마가 왔으면 좋겠어' 이제는 듣기 힘든 말이다. 지금은 '엄마가 갈게~'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