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바빠? 엄마 바빠!

가끔 전업주부가 되고 싶다

by 단미

어릴 적 아들과 딸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엄마의 이미지는 바쁜 사람이다. 우리 엄마는 항상 바쁘다는 것, 생각해보면 아이들을 위해 일한다는 것은 핑계일지 모르겠다. 결국은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고 어느 때는 일이 가장 우선이 되기도 했으니까.


정신없이 바빠 일에 치여서 지내는 동안에는 아이들을 챙기는 것보다 일을 잘 끝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차있다. 처리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어서 야근까지 해도 시간이 모자랄 때는 집안일은 대충 하기 십상이다. 한 달 정도 야근을 하고 나면 집안은 엉망진창이고 남편과 아이들에게는 미안한 마음뿐이다. 심지어 주말까지 출근하게 되면 가족 모두가 많은 것을 포기하며 보내는 시간이기도 하다.


매일 야근하는 아내 덕분에 아이들 챙기느라 어떤 약속도 할 수 없는 남편과, 나들이하기 좋은 주말에 엄마 아빠와 신나게 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소망은 고이 접어둬야 했다.




근거리에 있는 시댁에 방문하는 것도 남편과 아이들뿐이다. 엄마 없는 외출은 늘 시들하다. 바쁜 며느리를 위해 여러 가지 반찬을 챙겨주신 시어머님 덕분에 살림이 엉망이어도 일주일을 견딜 수 있게 된다. 바쁜 엄마는 이렇게 또 다른 신세를 지고 만다. 바쁘지 않더라도 살림을 잘하지 못해 챙김을 받곤 하지만, 얼굴이라도 비추면 조금 덜 미안할 텐데 언제나 미안함만 쌓여간다.


야근에 이어 주말에도 일하러 나간 며느리를 보며 고생스러워 어쩌냐며 안타까워하신다. 함께 살아온 7년의 시간 덕분에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었나 보다. 무뚝뚝한 시어머니와 애교 없는 며느리는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어색하거나 어렵지 않은 것은 서로의 마음을 헤아려주기 때문 아닐까.


일하고 싶어 하는 며느리를 위해 기꺼이 하시던 일을 접으시고 아이들을 봐주신 시어머님이 아니었다면 일하는 엄마도 바쁜 엄마도 되지 못했을 텐데,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도와주셔서 지금도 감사한 마음이다.




아이들뿐 아니라 친정 엄마도 당신의 딸은 항상 바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신다. 멀리 계신 엄마는 항상 바쁜 딸 걱정이다. 밥 잘 먹어라, 따뜻하게 입어라, 돌아다닐 때 조심해라 등등.. 결혼해서 애 낳고 살고 있어도 늘 어린애처럼 염려를 놓지 못하신다. 멀어서 엄마를 만나러 가기가 쉽지 않다.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도 자주 못한다. 죄송한 마음에 미안함까지 더한다.


어쩌다 전화통화 중에 못 가서 미안한 마음을 전할라치면, 바쁘니까 안 와도 된다, 하신다. 시시때때로 김치를 보내고 농사지어 수확한 다양한 먹거리를 보내주신다. 바쁠수록 잘 챙겨 먹으라고 당부하면서.


친정에 가면 아무것도 하지 말고 들어가 자라고 하신다. 바쁘게 사느라 힘들었으니 푹 쉬었다 가라, 하신다.

피곤을 안고 사는 딸은 엄마 말씀을 잘 듣는다. 친정에 가면 왜 그렇게 꿀잠을 자는지.... 그곳에서는 바쁘지 않아서일까?




바쁜 엄마로 산 지 오래되었으니 이제는 아이들도 가족들도 익숙해져서 그러려니 한다. 또 때가 되었구나, 하며 엄마의 존재를 잠시 제쳐두는 것은 아닐지. 계절마다 바쁘게 보내느라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에 목말라했던 아이들과 가족들에게 미안함이 크다. 무슨 대단한 일을 한다고 그렇게 매달려 바쁘게 살았을까?


"엄마 바빠? 안 바쁘면 놀이공원 가자~"

"엄마 바빠? 안 바쁘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엄마 바빠? 안 바쁘면 친구들 초대해도 돼?"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가 하고 싶었던 많은 주문을 나중으로 미루었다. 이제는 놀이공원에 가는 것도 외식하는 것도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도 혼자서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엄마가 바빠도 전혀 지장이 없게 된 것이다.


엄마는 여전히 바쁘다. 예전처럼 아이들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늦게 퇴근해도 집안일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만큼 각자 알아서 할 일을 하게 되었지만, 엄마의 존재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서운함이 다가온다. 바쁜 와중에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문득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엄마가 바쁘지 않았다면 아니, 전업주부였다면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겠지, 어른들 자주 찾아뵈며 포근한 시간을 많이 가졌겠지, 순간순간 함께 느끼며 작지만 소중한 추억을 마음속에 담았다가 두고두고 꺼내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