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잘하는 학생이 열망하는 것
여러 해 동안 공부하는 학생들을 관찰해 보니 공부 잘하는 학생들, 앞으로 잘 하게 될 학생들은 알고자 하는 수준이 좀 남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잘 알고야 말겠다는 열망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집요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이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지식의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는 좀처럼 물러서지도 않고 부끄러움도 잊은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런 학생들의 특성에 '탁월함의 추구'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탁월하다를 국어사전으로 찾아보니 높을 탁(卓), 넘을 월(越) 자를 써서 ‘월등하게 뛰어남’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남들보다 시험 점수를 잘 받아서 월등해지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탁월함의 추구는 지금 공부하고 있는 지식을 남달리 완벽하게 알고 말겠다는 마음가짐을 말합니다. 또한 이 태도는 비슷한 문제를 앞으로도 맞히기 위해 몇 가지 요령을 익히거나 공식을 암기하고 넘어가겠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당장 시험에 나올만한 것만 공부한다거나, 지금 본 문제를 외워서 또 맞히려는 자세가 아닌, 마치 학자라도 된 듯이 지금 공부하는 내용은 물론 그 근본 원리까지 파헤쳐 알고 말겠다는 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남달리 앎에 대한 기준치가 높은 학생들은 어떻게 공부할까요? 이 학생들은 공부하고 있는 그 순간만큼은 알고자 하는 마음이 남달리 집요하기 때문에 공통적으로 정확히 알 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태도를 보입니다.
가령 수학 문제를 풀다가 뜻대로 잘 풀리지 않으면 우리 마음속에는 갖가지 질문들이 생겨납니다. 그러나 질문도 잠시, 약간의 노력을 더 해서 문제가 풀리고 나면 보통 학생들은 동그라미를 친 후 이 문제를 넘어갑니다. 반면 탁월함을 추구하는 학생들은 문제를 푼 것에 만족하지 않고 마음속에 일어났던 위와 같은 질문들을 해결하기 위해 추가적인 노력을 시작합니다. 해답지 해설 부분을 바꿔 써 보기도 하고, 교과서를 앞뒤로 뒤적이기도 하며, 새로운 질문을 할 수도 있습니다. 겉에서 볼 때는 조용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 학생의 머릿속은 계속 질문하고 답하느라 너무나 바빠서 다른 일로 주의가 흐트러질 틈이 없습니다. 지금 공부하고 있는 내용에 완전히 몰두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듯 질문으로 물고 늘어진다는 것은 학생이 지금 하는 공부에 대해 스스로 문제를 설정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공부를 진행해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저는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이렇게 정확한 공부를 추구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것은 고2 때 만난 한 영어 선생님 덕분이었습니다. 그 선생님의 수업을 한마디로 하자면 학생이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수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날 수업부터 문법책과 독해 책을 학생인 제가 문장을 읽고 소리 내서 해석을 하고 문법 원리까지 설명하도록 하는 수업 방식이었지요. 선생님은 나의 공연(?)을 듣다가 틀린 부분을 수정해 주셨고, 내가 끝까지 내용을 다 설명하면 그제야 새로 익혀야 할 숙어나 단어, 놓친 원리 등을 잠시 소개해 주시는 것으로 수업이 끝나곤 했습니다. 저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이 수업을 열심히 준비했는데요, 그것은 하루 8시간씩 꼬박 혼자 사전을 찾고 문제를 풀고 채점하고, 문장을 소리 내서 읽고 해석하는 고행의 시간이었습니다. 문장을 눈으로 읽고 머릿속으로 해석되면 넘어가는 수준으로 공부해서는 내가 끌어가는 수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해석이며 발음, 문법 설명까지 영어선생님이 된 것처럼 정확하게 준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딱 3개월을 보내자 지지부진하던 학교 영어 성적이 시험공부를 따로 하지 않아도 최상위권으로 나오기 시작했고 그 후 고3 때 영어만큼은 유지하는 정도의 공부만으로도 수능을 잘 치를 수 있었습니다.
이전에도 공부를 제 나름대로는 열심히 하고 있었지만 실력의 변화는 미미했습니다. 하지만 영어를 통해 스스로 애써 정확히 공부를 하면 실력이 비약적으로 성장하게 된다는 것을 경험하고서는 다른 과목을 공부할 때도 이렇게 공부하고자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탁월함의 추구라는 말이 부담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필요한 일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공부 내용을 내가 정말 알고 있는지 생각해보고, 그렇지 않다면 내가 정말 알 수 있도록 만드는 행동 한 가지를 실행하면 됩니다. 그것은 사전을 찾는 것일 수도 있고 교과서를 다시 찾아보거나 다른 사람에게 질문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공부를 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누군가 이해시켜주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려서는 안 되며 뭐라도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탁월함을 열망하고 탁월함을 이루는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자신뿐입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