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을 추구하는 공부
오래 공부하는 것보다 효율이 높은 공부를 해야 한다고들 합니다. 효율이 높다는 것은 짧은 시간 공부했는데도 효과가 좋은 것을 말합니다. 물건으로 치면 가성비라고 할까요? 적은 시간을 투자하고도 필요한 공부가 다 된다면 그것처럼 좋은 것은 없을 것입니다. 힘써 생각하는 공부란 바로 이런 공부를 말하는 것입니다.
힘써 생각하는 공부는 일단 공부에 돌입하면 공부하는 내내 전력으로 생각하는 공부입니다. 쉽게 말해서 공부하는 순간만큼은 시험 볼 때와 같은 강도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시험 때는 1분 1초를 아끼며 생각하고, 시험 시간 내내 온갖 아이디어를 총동원해서 문제를 고민합니다. 이와 같이 일단 공부를 시작하면 생각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처럼, 이 문제를 반드시 풀어내야 하는 사명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의식적으로 두뇌를 최대출력으로 가동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하면 같은 시간을 들여도 느슨하게 공부할 때와는 비교할 수없이 많은 양을 공부할 수 있습니다. 공부 효율이 좋아지는 것입니다.
앞서 공부의 재미는 공부 자체에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공부 과정에서 그 과목이 가진 매력을 맛보자면 공부를 할 때 몰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뭔가를 알기 위해서 또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방법을 열심히 시도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는 어디에 있는지, 뭘 하고 있는지 그 의식조차 없어지게 됩니다. 문제와 문제를 생각하고 있는 나만 남게 되지요. 이런 상태를 몰입(flow)이라고 합니다. 레고를 만들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거나 한참 놀 때는 몰랐는데 다 놀고 나니 그때야 배고픔이 밀려오는 것은 모두 활동하면서 몰입을 경험한 것입니다. 몰입의 좋은 점은 몰입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데 있습니다. 몰입해서 뭔가를 하면 우리 뇌 속의 뉴런 연결 부위(시냅스)에서는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나오는데, 이것이 뇌에 쾌감을 줍니다. 1 도파민은 경쟁에서 이겼을 때나 얻기 드문 행운이 왔을 때 뇌에서 나오는 물질로 짜릿함, 희열, 의욕을 가져다줍니다. 숙제나 공부를 할 때 처음에는 온몸이 쑤시고 딴생각이 나지만, 좀 하다 보면 은근히 빠져드는 게 나름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나요? 그것이 바로 몰입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도파민을 경험한 것입니다.
공부가 재미없고 힘든 것은 공부가 원래 그래서 라기보다는, 공부할 때 충분히 몰입해 본 경험이 없어서입니다. ‘공부가 좋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공부에 몰입할 때의 그 짜릿함, 쾌감을 알고 있기에 도파민 분비를 만드는 공부 몰입을 자꾸만 경험하고 싶어 합니다.
몰입이 공부의 재미를 가져온다고 하니 쉽고 놀이에 가까운 공부가 몰입을 잘 일으킬 것 같지만, 의외로 사람들은 뭔가를 알려고 또는 해결하려고 애쓰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좀 더 쉽게 몰입합니다. 본래 몰입은 보통 자신의 능력보다 조금 높은 정신능력을 발휘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더 쉽게 찾아온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2 그래서 실제로 몰입을 통해 많은 난제들을 해결한 것으로 유명한 우리나라 몰입의 대가 서울대 황농문 교수는 몰입을 하려면 암기보다는 이해와 사고 위주의 학습을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몰입도가 낮은 상태에서 최선을 다해 공부하려는 의지가 강할 때 전형적으로 나오는 학습이 단순 암기이다. 학습에서 단순 암기가 가장 비효율적이고, 이해 위주와 상호 관련성을 파악하는 방식의 학습이 가장 효율적임을 명심해야 한다. (황농문, 『공부하는 힘』 (위즈덤하우스, 2013) 61쪽)
그래서 그는 자신이 지도하는 학생에게도 시험공부를 할 때 건성으로 넘어가면 몰입이 안 되니, 하나하나 꼼꼼하게 소화하고 이해하면서 공부하라고 주문합니다. 시험 점수를 위한 얕은 노력이 아닌 깊은 이해를 목표로 하는 '탁월함의 추구'가 곧 몰입을 불러오는 방법임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런 몰입의 즐거운 경험을 주기 위해 저는 가끔 수업 시간에 수업내용과 관련해서 원리적으로 좀 어려운 질문을 하나 걸어놓고 반 전체가 도전하는 퀴즈 시간을 갖습니다. 원리를 알아낸 학생은 앞에 나와서 선생님께 알아낸 원리를 설명해야 합니다. 실패하면 자리에 가서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다시 고민하는 기회를 가집니다. 수학 시간에 이렇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고민하고 토론하다가 경쟁적으로 나와서 답을 말하는 열기가 게임 못지않게 뜨겁습니다. 어린이들도 지적 도전을 하며 즐겁게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힘써 생각하는 공부를 잘할 수 있을까요?
일단은 공부 시작과 동시에 전력으로 생각하겠다고 마음먹는 것이 중요합니다. 책상에 앉아 책을 보거나 문제를 풀 동안에도 우리 머릿속으로는 참으로 여러 생각이 드나듭니다.
'냉장고에는 먹을 것이 있던가? 오늘 영수 표정 너무 웃겼어... 그런데 일기는 또 언제 쓰지?'
눈으로는 책의 글씨를 읽고 있어도 공부 내용에 집중하지 않는 순간은 너무도 많습니다. 이런 생각들을 알아차리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자신뿐입니다. 그래서 힘써 생각하는 공부에는 나만의 선언이 필요합니다.
힘써 생각하지 않는 순간은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힘써 생각할 때만 내가 스스로 공부한 것으로 인정해 주기로 하는 일종의 자기 선언입니다. 공부하는 척하며 나와 남을 속이지 않겠다고 마음먹는 것이지요. 이렇게 생각하면 내가 공부다운 공부를 얼마나 하는지, 지금 내가 진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인지가 보다 명확해집니다.
힘써 생각하는 공부가 잘되려면 열심히 생각하면서 공부에 몰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힘써 생각하는 공부를 하다 보면 이내 공부에 몰입이 되어 힘들지 않아지지만, 공부를 시작할 때는 몰입도가 올라갈 때까지 스스로를 어느 정도 채찍질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몰입이 되어 편해지기 전까지는 의지를 들여 의자에 좀 앉아 있어야 하고 열심히 생각하자고 자신을 부추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심할 점은 '집중해야 돼, 집중해야 돼'라고 머릿속으로 계속 되뇌기만 하는 것은 힘써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힘써 생각해야 하는 내용은 지금 공부하고 있는 내용을 깊이 있게 이해하려는 것이거나 문제를 해결하려고 고민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공부하는 중에 몰입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1 한재우, 『혼자하는 공부의 정석』 (위즈덤하우스, 2019) 206쪽
2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FLOW』 (한울림, 2004) 29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