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혁이아빠 Jul 11. 2023

슬픈 부전자전

7/2  식사일기

1 대 3. 이미 만남 전부터 혁이는 긴장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지난주 일요일, 나는 아무렇지 않게 누님 둘에 친구 하나. 혁이 예뻐해 줄 거야. 재미있겠지? 하고 던졌지만, 녀석 입장에서야 새로운 가족들과의 만남이 주는 설렘과 긴장이 제법 컸을 지도. 아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었다가 막상 비척비척 다가오는 누님들의 존재에 그제사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상황을 어찌한다? 세상의 중심은 나, 오로지 나여야 하는데 이거 수적으로 보니 내가 열세인걸? 하지만 좌우간 녀석은 타고났다. 무엇이?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이슈 선점 능력이. 시작부터 맘씨도 착할 것 같은 누님에게 다가가 자기가 요즘 밀고 있는 종이 팽이에 대해 한참 설명한다. 가져온 한보따리 팽이들을 소개한다. 화려한 제우스 팽이, 최신 도입한 군사의 신 아레스 팽이. 이렇게 접는 것이지요. 대충 보면 비슷해 보여도 이 끝부분 마감 처리가 다 다르답니다. 여기 가운데 코어를 잡아서 팽그르르 돌리는데 말이지요. 엄청 빠르지? 밥이 나올 때까지, 시선은 오로지 내 것이어야만 해.


간잽이 혁이는 짭조름한 페퍼로니 피자를 먹어보기로 했다. 먹기에 알맞게 썰어보시오. 재희는 손으로 덥석 집어 한 입 크게 베어 무는구나. 복스럽기도 해라. 나는 나도 모르게 어릴 적 그토록 혐오하던 친구와의 비교를 아들에게 시전하고 있었고, 역시 아들은 노골적으로 비교를 거부하면서도 친구를 조심스레 관찰하기 시작한다. 다행이다. 저 찰나같은 배움의 순간. 혁이가 보통 간잽이가 아닌데, 입에 맞는지 싹싹 비운다. 나도 알리오올리오파스타를 싹 비운다. 어느새 상이 치워지고, 녀석은 다시 맘 좋은 누나에게, 어른들에게 팔씨름을 하자며 덤벼들기 시작했다.


인근 완주군청 카페로 이어가던 만남은 아쉽게도 더위로 인해 종지부를 찍고 말았다. 누님들의 k-pop 무대로 주도권이 넘어가는 것이 못마땅해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기자고 투덜거리는 혁이의 말을 들어주자니, 날이 너무 더웠던 것. 이미 친구는 혁이와 상대해 주느라 에너지가 고갈되어 잠이 들고 말았다. 집으로 가자는 말에 혁이는 눈물이 앞을 가린다.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해 무리한 주장을 이어가다가 아예 판을 엎게 된 것이 후회막급이겠지.


어쩌랴. 사람이 본시 남의 말 듣기보다 자기 말하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어려서 그렇다고? 커서도 그러하느니라. 훈련도 소용없다. 애비를 봐라. 넌 애비 닮아 더 그렇다.

매거진의 이전글 국룰과 변칙사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