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서울 출장. 사무실 1층에서 아침 7시 출발이다. 근데 기차가 몇 시였더라? 중간에 들러 여럿 태우고 간다 했으므로 나부터 밀리면 곤란하다. 칼같이 지켜야지. 감기 기운으로 어제 저녁부터 머리가 지끈 코도 간질 기관지는 갈라지기 시작했으나 아침밥부터 서두른다.
정각에 나를 태운 차는 10분 뒤 상남자 스킨과 담배 냄새가 적당히 섞인 신사를 태우고, 나는 그 신사와 스몰토크를 다시 섞으며 역으로 향한다. 신사는 편안한 대화 도중 주마가편으로 내비게이션과 투쟁한 결과 7시 50분경 도착. 열차는 엥? 8시 46분? 게다가 전주역에도 서는 열차인데 익산역으로 데리고 왔다.
이 신사와 아침을 먹으라는 배려인가. 조찬은 이미 드시었다고 하여 커피를 한잔 샀다. 상남자 스킨과 담배 냄새, 스몰토크에 본격적인 비즈니스 토크를 더해 보았지만 커피 한 잔으로 버티기엔 한 시간은 조금 길게 느껴졌다. 그나마 친한 일행이 하나 더 있었는데, 열차 출발 직전에 나타났다. 집이 근처라며.
서울에 도착해 오전 비즈니스가 잘 마무리되고 점심이 다가온다. 내 구역이니 점심 안내는 내가 해야지. 일정은 바쁘고 뭘 좋아할지 취향은 모르겠고, 여러 가지 골라 먹는 분식집으로 향할 수밖에. 나름 암 경험자라고 소문난 마당에 떡순튀를 시킬 순 없고 점잖게 키오스크에서 선지 해장국을 눌렀다. 그리고 바로 뒤에 서 있던 다른 일행의 지인 여럿에게 발각되어 강제로 커피 한 잔을 받아들고 한참 환담을. 이런, 왜 밥 먹기도 전에 커피람. 커피랑 선짓국 같이 먹으면 안 되는데. 빈혈에 좋은 선짓국의 철분이 타닌을 만나 흡수가 안되고 그냥 똥 된단 말이다!
정신 차리고 와보니 다들 해장국이다. 내가 누르는 것을 보고 이게 대표 메뉴인 줄 아셨나 보다. 젊은이 한 명만 소신 있게 떡볶이를 시키시고. 낭패다. 선지를 어디서 납품받으셨는지 고무 씹는 맛이다. 국물과 선지가 따로 놀다 합체한 모양새다. 상남자 스파이스 신사는 어젯밤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 왜 해장을 강요하냐며 은근한 불만을 토로한다. 젊은 직원 몇은 아예 어디선가 터진 사고를 수습하느라 식어가는 선짓국을 한술 뜨기는커녕 나타나지도 못하고 있다. 국을 사 왔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덕분에 혹시나 싶어 누군가 반찬 삼아 시킨 김밥이 초대박을 쳤다. 두 줄이 있었는데, 없습니다. 다들 선짓국 속 선지는 그대로인데, 남은 김밥 한 개를 놓고 벌어지는 겸양과 눈치와 권유의 가식 대잔치가 볼썽사납다. 내 입으로 불쑥 털어 넣고 말았다. 사위가 조용하다.
오후 행사도 무탈하게 진행되었다. 행사에서 제공되는 조촐한 간식이 일찌감치 동이 났다. 미안한 마음에 과자 한 팩을 사서 데스크에서 안내를 맡고 있는 젊은 직원들 사이에 밀어 넣었다. 순식간에 동이 나고 한 덩어리 남았는데, 행사장 앞을 지나가는 어르신들 중 한 분이 '공짜 좋아하는 것들이 나랏돈을 ~~'하고 호통을 치며 내가 사 온 과자상자에 손을 불쑥 집어넣으신다. 행사에서 제공되는 공짜 간식인 줄 아셨나 보다. 다행히 빈 껍데기만 집혀서 그냥 가신다. 직원 한 명이 그렇게 지킨 마지막 한 덩어리를 수줍게 웃으며 나에게 내민다. 운 좋았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