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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혁이아빠 Jul 15. 2024

문제가 아닌 것은 문제삼지 말자

담임선생님께 꿀밤맞은 혁이

혁이가 학교에서 담임선생님께 꿀밤을 맞았다고 했다. 아내는 무척 놀랐고, 나는 함께 놀라면서도 내심 올 게 왔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좁은 속과 조그만 인내심의 외연을 늘 확인시켜주는 혁이. 학교에서는 좀 다르겠거니 기대했지만, 종종 혁이가 들려주는 학교 이야기는 투쟁과 파열음으로 가득했기에. 그나마 혁이를 선제공격한 친구와 사이좋게 나눠 맞았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여기기도 했다.  

그래도, 꿀밤은 좀 애매했다. 지난해 서이초 사건을 계기로 일선 교사의 고충에 온 국민이 공감하며 지지를 표한 일이 있었지만, 그만큼 꿀밤처럼 물리적인 힘을 가하는 체벌이나 훈육은 학교 현장에서 사라졌다고 들어오지 않았는가. 게다가 성질 급한 나도 혁이가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할 때마다 팔을 강하게 붙들어 본 것이 전부인지라, 아내와 나는 며칠간의 고심 끝에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방법은 간단했다. 선생님께 면담 신청을 하는 것. 마침 선생님의 시선에서 묘사되는 혁이의 학교생활도 들어볼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무작정 찾아가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신중을 기하고픈 마음에 친인척 중 현직 교사들과 사전 면담도 해보았다. 역시, 예외적인 사례이긴 하나 일률적으로 재단하기 어려워 조심스럽다는 것이 공통된 반응이었다. 무엇보다 교육이라는 것도 사람의 일이지 않은가. 사람마다 교육철학도, 기준도, 가치관도 다 다르고, 학급에서 시시각각 마주하는 개별 구체적인 모든 상황을 하나의 원칙으로 규율하기도 불가능하며, 바람직하지도 않으니까.   

그렇게 학교에 갔다. 같은 또래로 보이는 선생님은 노회했다. 내가 직장에서 고객들에게 그러하는 것처럼, 약점 잡힐 수 있는 표현은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 내가 자연스레 '1학년 아이들 통제하시기 참 어려우시죠? 가정에서 한 명씩 감당하기도 그렇게 어려운데. 안 그래도 혁이도 선생님께 꿀밤 맞았다고 얘기하던데, 아이들 장난이 참 심하죠?' 하고 언급해 보았으나 허사였다. 아이들이 이런 적도 있고, 저런 적도 있고 참 하루에도 다양한 일들이 벌어진다고 웃으며 말씀하시면서도 꿀밤을 인정하는 언급은 일절 없었다. 간접적으로나마 아이들이 집에 그날 일을 낱낱이 고한다는 점을 선생님께 주지시켜 드린 것으로 만족하고 아내와 나는 돌아섰다.

물론, 혁이의 학교생활을 소상히 듣게 된 점은 큰 수확이었다. 이상하게도 그날의 면담 이후 나는 혁이를 엄하게 채근하기보다 우선 친근하게 대하려 했고, 아들 tv라든지, 한동안 끊었던 금쪽이라던지 하는 것들을 가끔 보며 나의 행동을 돌아보게 되었다. 수양이 부족한 애비가 한 번씩 욱해서 목소리 높여 다그치는 것은 여전하지만, 어제도, 오늘도 혁이는 즐겁게 학교에 들어선다.

지금 녀석의 웃음을 바라보는 이 순간이, 나중에 돌이키면 얼마나 아련하고 애틋할 것인가. 수박 먹고 끈적한 혁이의 손을 잡고 함께 걷는 등굣길이, 그 작고 동그란 머리 위에 코를 박을 때 느껴지던 그 시큼 달콤한 땀 냄새가. 탐스러운 볼을 꼬집을 때 느껴지던 그 단단한 탄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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