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야.
어느 아침 길목에. 고양이 한 마리가 멀뚱멀뚱 앉아 있었고, 그 자태가 너무 태평해 보여서 지각을 목전에 두고 있던 나는 그 애가 유독 인상 깊었다. 그 애를 한 번 쓱 보고 옆을 스쳐 걸었고, 나를 마주하고 할머니 두 분이 지나가셨는데. 뒤에서 너무도 다정한, “나비야~” 소리가 들렸다. 그 음성을 등에 두고 서두르면서 이 페이지가 어찌나 맴돌던지.
그게 종일이었다, 심지어, 종일.
맞아, 세상 모든 나비들은 다정하게 불린다.
우리 할머니 댁 마당에 찾아오는 모든 고양이들의 이름도 전부 나비였다. 할머니는 마당 평상 아래에 찌그러진 쇠 밥그릇 하나를 두고, 먹고 남은 음식들을 잘게 잘라 담아 두셨었지. 그 밥그릇 주변에 찾아오는 고양이들은 전부 어딘가 나태하고 거만해 보였다. 뻔뻔했달까. 긴장이라고는 요만큼도 없이 남의 집 마당을 드나들었으니. 할머니는 얼마나 긴 날동안 다정한 이름을 지어 부르며 조각낸 음식들을 나누어 먹였을까. 나는 툇마루에 앉아 그 애들을 내다보면서, 엄마 쟤는 이름이 모야? 하면 엄마는, 나비,라고 했었지. 그럼 나는, 고양인데 왜 나비야? 했었고. 그러면 엄마는, 그냥 나비야, 했었지. 심지어 그 나비 중에 한 마리가 마당 구석에 새끼를 여럿 낳아도 그 애들은 전부 나비였다. 복수의 나비였으나, 나비들아 하고 부르진 않았던 거 같다. 전부 그냥 나비야, 하거나. 나비와 나비 새끼들(욕 아니구)이었지.
그 쇠 밥그릇을 채우는 일은 거의 내 몫이었는데. 그 심부름은 보통 “나비 밥 주고 와라”였다. 빈 그릇에 조각난 음식들을 부어 넣고 뜨뜻하게 달궈진 툇마루에 뒹굴 거리면서 게으른 나비들을 구경하는, 그런 게으른 어린 시간들도 있었다. 그때는 하루가 참 길었지.
아무튼 엄마는 우리 집 마당에 찾아오는 고양이들도 나비라고 부른다. 고양이를 무서워해서 솔직히 그 말투가 퍽 다정스럽진 못하지만. 나비야~ 저리 가~ 훠이 다른 집 가라~ 나름 상냥하게 회유하니까 뭐.
어쩌다 세상 모든 고양이들은 있지도 않은 날개를 달고 다정한 이름을 지어 불리게 된 걸까. 그 날개를 달아준 첫 마음들이 귀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