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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Jan 06. 2020

말 한 마디, 찰나의 태도

서로가 서로에게 다정합시다.


[Episode 1]


모처럼 여유가 생겨 그동안 미루고 미뤄왔던 운전면허를 따기로 마음먹었다. 바로 필기시험 날짜를 잡았다. 필기시험을 보기 위해선 안전 교육을 이수해야 하므로, 같은 날 오전 9시 40분 교육을 접수했다. 교육을 듣고 바로 시험을 볼 계획이었다.

시험 전날, 갑자기 급한 외주가 들어오는 바람에 새벽 서너시가 되어서야 잘 수 있었다. 아침에 놀람과 동시에 눈을 번쩍 뜨니 8시가 넘어 있었다. 작성해야 하는 서류가 많아 적어도 교육 시작 20분 전인 9시 20분에는 도착해야 했다. 부랴부랴 옷만 챙겨 입고 시험장으로 서둘러 향했다. 도착하니 9시 20분이 살짝 넘어 있었다. 안내 데스크에 가자 직원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몇 시 교육이세요?”

“9시 40분이요.”

“그 때 시험 없어요.”

“…네?”

“그 때 시험 없다고요. 다음 시험 11시인데 그거 보시려면 한참 기다려야 해요. 9시 20분 교육이면 9시엔 왔어야지 이제오면 어떡해요. 11시 교육 들을거에요?”


교육 시간을 착각한 것이다. 9시 40분 교육이 아니라 9시 20분 교육이었다. 안 그래도 당황스러운데 직원의 짜증난 듯한 표정과 말투는 나를 더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하는 수 없이 11시 교육을 듣기로 하고, 서류를 작성했다. 그리고는 지하에서 건조한 안내를 받으며 간단한 신체 검사를 받은 후 교육장이 있는 층으로 올라갔다. 멍하니 의자에 앉아 어플로 시험 문제를 풀며 시간을 보냈다.

교육장에 들어가기 전에 특정 번호가 적힌 카드를 배부 받고, 그 번호가 붙은 책상에 앉아 교육 영상을 시청해야 했다. 영상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직원이 들어오더니 사람들이 각 번호에 맞게 앉아있는지 확인하는 듯했다. 아직 영상이 안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직원은 한 책상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다가가 물었다.


“몇 번이에요?”

앉아있는 사람은 당황한 기색이었다.

“카드 없어요? 카드를 받고 들어와야죠. 나가세요.”

그리고는 또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더니 물었다.

“몇 번이세요?”

“xx번이요.”

“그럼 그 번호에 맞는 자리를 앉아야죠, 왜 아무 자리에 앉으세요?”


잘못 자리를 앉은 사람은 머쓱하게 본인의 자리로 돌아갔다. 괜히 나까지 다 머쓱해지는 순간이었다.


교육 비디오가 끝나고는 드디어 시험을 보기 위해 시험장에 들어갔다. 정숙한 분위기였다. 감독관의 안내에 따라 자리를 잡고 문제를 풀고 있었다. 시험을 푸는 와중, 감독관이 교체되는 시간이었나보다. 새로운 감독관이 들어오고, 둘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더니 기존에 앉아있던 감독관은 나가고, 새로 온 감독관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얼마 후 두 명의 남자가 같이 시험을 보러 들어왔다. 친구 사이인지 서로의 자리를 확인하기 위해 속닥거리자 곧바로 불 같은 호통이 들렸다.


“조용히 하세요! 여기서 그렇게 떠들면 안되는 거잖아요!!!”


분명 시험 장소에서 속닥거린 것이 바람직한 행동은 아니지만, 그냥 ‘조용히 해 주세요.’라고 말 한 마디 하면 될 것을. 본인의 호통이 시험에 방해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 하는 걸까? 갑작스러운 고함에 안 그래도 딱딱한 분위기의 시험장은 얼어붙어버렸다.

연거푸 마주한 무례한 태도와 언행에 운전면허 시험장에 있는 내내 기분이 언짢았다. 시험장을 나오기 전 잠깐 거울을 보는데 나의 얼굴은 시험을 잘 치르고 나온 사람 같지 않았다. 얼굴에 화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시험장에서 일어나는 당황스러운 일들이 어디 한 둘이겠는가. 이러한 상황을 계속해서 마주하는 것에 대한 피곤함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험을 보러 오는 사람들에게 시험장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은 처음이다. 실수하고, 당황할 수 있다. 이러한 사람들을 시스템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도와주는 것은 당연하고, 이 일이 그들의 업이다. 그럼에도 왜 그렇게 무례하게 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Episode 2]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친구들과 홍대 근처에 에어비앤비를 예약하고 파티를 하기로 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어김없이 출근을 해야 하는 친구들이 도착하기 전에 나와 휴가를 쓴 한 친구가 함께 필요한 것들을 사기로 했다. 특별한 날인만큼 비싼 양주를 한 병 사고, 과일을 비롯한 각종 안주거리도 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을 사기 위해 다이소로 향했다. 그것은 바로 크리스마스 무드를 극에 달하게 해줄 산타, 루돌프 머리띠. 분위기를 낼 만한 소품을 사는 데는 역시 다이소만한 곳이 없다. 일부러 더 걸어서 홍대 쪽에서 가장 큰 다이소를 찾아 갔다.


크리스마스 대목인만큼 우리처럼 소품을 사려고 온 사람들이 넘쳐났다. 직원들은 말을 걸기 미안할 정도로 정신없이 바빠 보였다. 진열대를 찬찬히 살펴보는데, 살 만한 것이 딱히 없었다. 인기가 있는 상품들은 이미 다 빠진 듯했다. 그냥 갈까 하다가 혹시 다른 층에 더 많은 소품들이 있을까 싶어 직원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한 직원이 세상 지친 표정을 하고 벽에 기대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저…” 하고 운을 떼자 마자 그는 세상 밝은 표정을 하고는 “네 고객님!”하고 답했다. 몇 초사이에 이렇게까지 명랑해질 수가 있다고?


“혹시 크리스마스 소품은 여기 있는 게 다 인거죠?”

“(아쉬워하며) 아이구, 네.. 지금 크리스마스 대목이라 많은 분들이 미리 사가지는 바람에 물량이 많이 없네요.. 저 쪽으로 가면 파티 용품이 좀 더 있으니까 한 번 저 쪽으로 가 보시겠어요?”


글로 써 놓고 보니 잘 느껴지지 않는데, 그의 말에서는 그녀의 친절함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너무 지쳐 보여 친절을 기대하지 않았기에 더 크게 와 닿았던 것 같다. 다이소에서 나오자 마자 친구와 나는 누구 먼저 할 거 없이 그 직원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까 그 직원분 엄청 친절하지 않았어?” “그니까. 내 기분까지 좋아지더라.”    

비록 크리스마스 소품은 하나도 건지지 못 했지만 아쉬운 마음이 별로 들지 않았다. 우리는 더 나아가 언어와 태도에 대해서 논했다. 얼마 전 운전면허시험장에서 겪었던 일화가 떠오르며 말 한 마디, 찰나의 태도가 가진 힘에 대해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삶은 고단한 일들의 연속이다. 매일같이 어디론가 출근을 하고, 주어진 과업을 해내야 하며, 보기 싫은 사람과 시간을 보내야 하고, 아니꼬운 말과 행동을 감내해야 하며, 너무나 많은 고민들에 휩싸인다. 이런 팍팍한 삶에 윤활유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사람’아닐까. 퇴근 길에 엄마와 전화로 나누는 말 몇 마디에, 자기 전 룸메이트와 떠는 10분의 수다에, 지하철 역 앞에서 찐 옥수수를 파시는 아주머니의 덕담에 웃음이 나고, 힘을 얻으니까. 언젠가 인스타그램을 하다가 좋아하는 작가분이 올린 글이 좋아 캡쳐를 해 놓았다.


‘간호사 선생님도, 공항 검색대 직원분들도, 내 옆에 앉아계신 아주머니도 다 제 몫을 살아가고 있겠지. 뭐 다 이렇게 짠하지. 그러니 서로가 서로에게 다정하자.’ -artye11-


난 나의 주변사람들을 포함하여 스쳐간 인연들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되돌아본다. 말 한 마디, 일순간의 태도는 누군가의 마음 속에 긴 여운을 남긴다. 빨리 지워버리고 불쾌함일 수도, 마음 한 구석에 계속 간직해 놓고 싶은 따뜻함일 수도 있다. 그러니 이왕이면 우리 서로가 서로에게 다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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