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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지엥 Aug 31. 2021

코로나 이후 다시 프랑스

빵의 평등권과 바게트

  프랑스에서는 아무리 빵집 주인이어도 자기 마음대로 빵, 특히 바게트Baguette를 만들면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고 한다. 이 말을 우리나라에 적용하면, 김치를 식당주인이 자기 마음대로 만들면 처벌받을 수도 있다는 말일 것이다. 이런 황당한 법률이 분명히 프랑스 역사에 있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황당한 법률이 있었단 말인가? 그 이유는 지금은 프랑스인들의 국민빵이 된 바게트가 바로 '평등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국가이념은 1789년 프랑스대혁명 이후로 줄곧 자유 평등, 박애 이 세 가지 정신이었고, 그중에서도 일반 국민들이 가장 중시하고 민감했던 것이 바로 평등이었다. 평등이야말로 프랑스와 유럽을 수천 년 간 지배해오던 신분제와 대립되는 정신이었기 때문이었다. 따지고 보면 프랑스대혁명이 발발한 바탕에도 바로 이 평등에 대해 분노한 민중들의 쌓여있던 울분이 폭발했던 것 아니었던가.   평등에 대한 프랑스 민중들의 생각이 얼마나 예민했으면 프랑스대혁명 이후 혁명정부였던 국민공회에서 빵을 만들 때, 특히 바게트를 만들 때는 평등 정신에 입각해서 만들라는 일종의 법률을 만들었을 정도였다. 그만큼 프랑스 사람들에게 평등정신은 자신들의 존재이유가 될 정도로 중요한 개념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평등을 상징하는 빵이 바로 바게트이기 때문에 맛있는 프랑스의 여러 음식들 중에서도 가장 프랑스적이고 국가이념을 잘 표현하는 것이 바로 바게트인 것이다.  

  여러분들은 혹시 빵에도 평등한 권리가 부여된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직업의 평등, 인종의 평등, 신분의 평등 같은 용어와 구호들은 많이 들어봤을 텐데 그렇다면 빵의 평등은 어떤가?  역사적으로 프랑스에는 빵과 관련된 법률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빵의 평등권’(The Bread of Equality)이었다. 이 법률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권력이 있건 없건, 혹은 돈이 많건 가난하건 또는 계급이 높건 낮건 상관없이 누구나 똑같은 재료를 써서 똑같은 방법으로 만든 똑같은 품질의 빵을 먹을 수 있는 권리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바게트와 관련된 빵의 평등권이다.  

  그렇다면 프랑스에서는 빵의 평등권이라는 왜 이런 희한한 법률을 만들어야만 했을까? 가장 고귀한 이념인 평등과 흔해 빠진 빵이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다는 것인가? 빵의 평등권이 본격적으로 실현된 것은 프랑스대혁명이 발발한 지 4년이 지난 1793년 부터였다.  프랑스대혁명이 발발하기 1년 전인 1788년부터 1789년까지 프랑스는 2년 연속 엄청난 흉년을 겪었다. 심각한 흉년이 들면 당연히 가난한 서민들이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게 되는 데 당시 프랑스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심각한 흉년이 발생하자 이어서 바로 따라온 게 바로 심각한 식량의 부족사태였고 이런 피해는 고스란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치명타가 됐다.

  흉년에 이은 식량의 부족은 당연히 당시 주식의 주재료였던 밀 값을 폭등시키게 되고 이렇게 되자 밀을 재료로 해서 만드는 빵, 즉 바게트의 가격이 폭등하게 됐던 것이다.  당시 바게트 가격이 얼마나 폭등했던지 하루치 빵 값이 무려 서민들 하루 일당의 80% 이상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면 아마도 대대수의 가난한 사람들은 바게트 한 덩어리조차 마음대로 사지 못했을 것이다. 빵 가격이 서민들 하루 일당의 80%까지 폭등했다는 말은, 즉 하루 힘들게 일해서 100원을 버는 서민이 고작 바게트 1개를 사기 위해서 80원이 넘는 돈을 지불해야 했다는 것이다. 

  사치품도 아니고 하루 굶으면 당장 죽을 수도 있는 주식인 바게트가 이렇게 폭등했으니 가난한 서민들이 얌전히 지내지 않고 들고 일어나 폭동을 일으킨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결국 돈이 없었던 서민들은 바게트 중에서도 가장 질이 형편없고 색깔이 시커먼 바게트를 먹을 수밖에 없게 됐다. 색깔이 검고 짙은 바게트에는 버터는 고사하고 껍질도 제대로 벗기지 않은 곡식과 여러 가지 버려지는 곡식들이 섞여서 그런 짙은 색을 냈던 것이다. 서민들은 이런 바게트조차도 간신히 구해서 자식들을 먹이거나 때로는 그것도 없어 굶어야 했던 반면, 신분이 높은 사람들은 여전히 곱고 하얀 밀가루에 버터까지 넣은 하얗고 품질이 좋은 바게트를 먹었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의 바게트를 놓고도 철저히 신분에 따라서 색깔이 다른 바게트를 먹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당시 프랑스의 상황이었고 이것이 곧 프랑스대혁명을 촉발시킨 하나의 분명한 이유가 됐던 것이다. 

  이런 아픈 역사로 인해서 프랑스대혁명 후 권력을 잡았던 국민공회 정부에서는 서둘러 민심을 수습하기위한 하나의 방책으로 바게트의 평등을 주장했던 것이다. 즉 신분과 지위, 빈부를 가리지 않고 동등한 재료를 사용해서 만든 바게트, 그리고 동일한 색깔과 맛을 내는 바게트를 법률로 정해서 누구나 똑같이 만들어진 똑같은 바게트를 먹을 수 있도록 한 것이 바로 바게트의 평등을 포함한 '빵의 평등권'이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가 맛있게 먹는 한 조각의 바게트에는 이런 슬픔의 역사가 숨어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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