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구원하는 운동의 힘. <운동의 뇌과학> 저자이자, 오랜 기간 불안장애에 시달렸던 제니퍼 헤이스는 그의 저서에서 운동이 그의 삶을 구원하는 통로였다고 말한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감각과 호흡, 그리고 내 몸 일부를 통해 느끼는 자극에 집중하다 보면 감정을 조절하는 편도체의 활동이 감소해 실제로 두려움이 줄어들었다. 또한 두뇌에서 합리적인 사고를 담당하는 영역인 전전두피질의 활동이 증가하면서 비관적인 생각 또한 감소했다.
누구나 달리고 싶다. 신체적 정신적 능력과 관계없이 누구나 운동을 통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누구나 운동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적절한 환경이 마련되어 있지 않거나, 적절한 도구가 준비되지 않거나 여러 가지 요인이 앞을 가로막는다.
며칠 전 파워 사커 Power Soccer라고 불리는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의 축구 연습 경기를 찾았다. 이들은 중증 장애인이다. 휠체어 농구나 휠체어, 테니스 등을 할 수 있는 경증 장애인과 달리 상체와 하체에 모두 제약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 운동할 수 있는 영역의 범주가 매우 좁다. 중증 뇌성마비, 지체장애를 가지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중증 장애인들이 참가할 수 있는 운동은 ‘보치아 Boccia와 파워 사커’ 두 가지라고 이야기한다. 보치아는 1984년 LA 패럴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고, 컬링과 비슷한 경기라고보면 된다. 표적의 위치와 가까운 곳에 공을 많이 둔 팀이 이긴다. 상당한 전략 싸움이면서 다른 운동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적이다.
반면 파워 사커는 다이내믹 그 자체다. 평소에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이동할 때는 휠체어 속도를 3 정도로 놓는다고 한다면, 경기에는 5로 놓는다. 지켜보는 사람도 흥미진진하다. 모터사이클처럼 전력으로 움직이면서 공을 드리블한다. 휠체어를 360도 회전하면서 공을 찬다. 지켜보는 사람은 휠체어에 탑승한 사람이 방향 조이스틱만 조절하고 있으니 ‘운동이 될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경기에 참여한 사람들은 다르다. “긴장도 되고, 땀도 나고요. 공이 휠체어에 닿을 때 온몸으로 느껴져요. 그리고 공을 향해 쫓아갈 때 전력질주하는 느낌은 해본 사람이 아니면 모르죠.” 오늘 혼자서 네 골을 넣은 지체장애인 한종문 님의 소회다.
움직임은 조이스틱으로 이뤄진다. 조이스틱은 왼손, 오른손 사용자 누구나 편리한 쪽에 부착할 수 있다. 또한 모든 장애인들이 조작에 손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위치를 여러 군데로 바꿀 수 있다. 국내에서 어떤 사용자는 발로 조이스틱을 움직여서 조작한다고 한다. 또 사지마비 장애인을 위해 입으로 조이스틱을 움직일 수 있게 설계된 제품도 있다.
휠체어에 모터가 들어가고 공을 차기 위해 스피드, 민첩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제품 기술력이 중시된다. 현재까지는 해외에서 수입하는 제품이 가장 좋은 제품이다. 가격은 1500만 원. 국산은 해외 모델을 본떠서 만든 것으로 700-800만 원 정도다. 오늘 연습에 나온 네 분 중 두 분은 국산 모델을 사비로 장만했다. 다른 한 분이 타고 있는 고급형 장비는 대여다. 대한 장애인 체육회에서 8대 보유하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일주일에 한 번 연습할 때마다 빌려서 쓴다고 한다. 보급형의 경우도 5대 내외로 보유하고 있어 대여해서 사용한다. 전국에 12개 팀이 있고, 서울은 6개 팀이 있는데, 이걸 나눠서 쓴다고 생각하면 상당히 열악하다. 참고로 이웃나라 일본은 100개 정도 팀이 있다고 한다. 축구공도 처음에는 미국에서 40만 원쯤 주고 구매했고, 현재는 일본에서 15만 원을 들여 사놨다.
파워 사커는 국제 축구연맹 FIFA처럼 국제 파워 체어 축구 연맹 FIPFA(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 Powerchair Football Association)도 있어 4년에 한 번 세계 경기가 열린다. 참가국은 미국, 프랑스, 영국 등 서구권과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등 남미권 그리고 아시아는 일본과 호주가 유일하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없다.
FIFA에서 4년마다 월드컵 경기가 열리는 처럼 FIPFA도 4년마다 경기가 열린다.
대한 장애인 체육회에서도 정식적인 종목으로 등록되려면 전국에 지부가 있어야 하는데, 장비 비용이 만만찮으니 국내에서 전국적으로 팀이 결성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참조할 만한 것은 영국의 사례다. 축구 종주국답게 프리미어 리그처럼 파워 사커 리그가 결성되어 있다. 1부 리그인 프리미어십 Premiership 12개 팀과, 2부 리그인 챔피언십 Championship 12개 팀이 시즌 동안 두 번씩 경기를 펼친다. 물론 이 외에도 지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 다양한 지역 리그가 존재한다.
WFA 프리미어십과 챔피언십 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멘체스터 시티 등
익히 영국 프리미어리그 하면 떠오르는 축구팀이 그대로 스폰서다. ©theWFA
영국의 휠체어 축구 협회 WFA는 2005년에 결성되어 영국 전역에 있는 장애인들이 파워 사커를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비전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최대한 많은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장애인들을 참여시킨다. 가장 중요한 것은 프로 구단의 후원이다. 모든 구단이 휠체어 축구 후원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꽤 많은 프로 구단이 축구팀을 지원한다.
“중증 장애인들은 경직이 심하신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평소에 운동량이 매우 부족할뿐더러 자기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가 힘들어요. 하지만 파워 사커를 하면서 조금이라도 내가 원하는 방향과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에너지 소비가 커요. 진짜 운동이죠.” - 김영식 님
축구는 팀 스포츠다. 전략과 호흡이 필요하다. 장애인 축구를 장려하는 것은 스포츠 참여 기회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인기 있는 스포츠에 참여하며 장애 당사자와 가족들이 희로애락을 경험할 수 있는 삶의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다. 축구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공통의 경험을 통해 유대감을 느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방향을 제어하고 자유롭게 움직이며 '선택의 권리와 자유의지'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운동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며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수단이 된다. 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이런 기회가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