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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록 Dec 15. 2021

잘 되는 사람을 보면 왜 눈물이 날까

싱어게인2(2021), JTBC

<스포주의: 싱어게인 2회를 보지 않으신 분은 스포를 당하실 수 있으니 읽지 말아 주세요.>




 나는 눈물이 많으면서도 눈물이 없다. 타인 앞에서는 거의 울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막상 울 일도 없다. 내가 사람들 앞에서 울었던 기억은 고삼 때 선생님이랑 싸우고 친구들 앞에서, 스무 살 때 애인과 헤어지고 선배들 앞에서, 작년에 심리상담받으면서 선생님 앞에서, 이렇게 딱 세 번뿐이다. 언제, 어떻게, 왜 울었는지 선명하게 기억할 만큼 누구 앞에서는 잘 울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또 눈물이 많다.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는 그렇게 울어댄다. 내 책상 옆에는 눈물 닦는 용도의 작은 손수건이 따로 구비되어 있을 정도다. 도대체 왜 그렇게 우느냐 하면, 유독 나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것들이 몇 개 있다. 보통은 드라마를 보거나, 영화를 보거나, 예능을 볼 때 나의 눈물샘은 폭발한다.


나를 울리는 것


 나를 울게 하는 것, 과거에는 가족이었다. 사실 나는 가족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굉장히 복잡 미묘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사랑받고 싶으면서도 사랑받지 못했고, 사랑받았으면서도 사랑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보통의 가족 구성에 대해서 별로 동의하지 않으며, 반드시 가정에 사랑이 가득하다는 것에서도 별로 공감하지 못한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들이 아마도 유년 시절 나의 가정환경에서 생겨난 결핍 때문일 수도 있고, 그에 대한 결핍을 채우고자 가족에 대한 콘텐츠만 보면 유독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내가 막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막상 돌이켜보면 또 그렇지도 않다. 나는 굉장히 화목하고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내 생각에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가족에 대한 나의 콤플렉스는 작년에 많이 해소되었다. 반복된 심리상담을 통해 내가 가진 부담과 강박이 나의 유년시절과 가족에 얽혀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이유를 알고 나니까 오히려 가뿐해졌달까? 우리는 이미 서로 미워할 수도, 돌아설 수도 없는 가여운 존재들이기에,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인정하면서 살아간다. 그게 삶이니까.


 그러나 한쪽이 솟아나면 다른 쪽이 꺼지는 시소처럼, 또 다른 것이 나를 울리기 시작했다. 바로 잘 되는 사람들. 뛰어나지 않지만, 보통의 사람이지만, 누구보다도 간절하고 진지하게 묵묵하게 자신의 꿈을 향해 걸어 나가는 사람들. 그 끝에 결국 잘 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다시 눈물을 훔친다.


힘든 대학원 생활을 버티게 해 준 오마이걸


 서른이 넘어 도전한 대학원 생활은 생각보다 고단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사람들을 따라잡을 수 없었고, 나보다 뒤에 있던 사람들이 어느새 나를 앞서 가고 있었다. 그 힘든 생활을 견딜 수 있게 해 준 존재는 바로 덕질이었다. 나는 사실 오마이걸을 좋아한다.


 단순히 덕질을 했다는 것이라면 굳이 여기서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덕질을 했다기보다는 그냥 오마이걸이라는 그룹을 좋아했다. 군대를 전역한 뒤로 연예인은 조금도 관심이 없던 내가, 십 년 만에 푹 빠져 살게 된 그룹이 왜 하필 오마이걸이었을까? 그 시작은 퀸덤이라는 예능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2yOJJ38zrA

유난히 밝던 효정님은 이날 속마음을 드러냈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오마이걸 리더 효정님은 웃상으로 유명한 연예인이다. 힘들어도 웃고, 쓰러져도 웃고, 분위기 잡아야 할 때도 웃고, 웃고 또 웃고. 오죽하면 별명이 캔디 리더일까? 슬픔이라는 감정을 모르고 사는 것 같은 사람, 항상 사랑받으면서 살아온 것 같은 사람. 그런 효정님이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걸 보면서 나는 느꼈다. 아, 굉장히 힘들었는데 안 힘든 척 한 거구나. 힘든 티를 안 내려고 더 밝은 척 한 거구나. 효정님은 언제나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원인으로 자신을 탓하면서 스스로를 너무 외롭게 했다고 했다. 그런 효정님의 인터뷰를 보며 나는 홀로 펑펑 울었다. 그 얘기는 내 안에 꽁꽁 숨겨둔 나의 이야기였다.


 중소 기획사에서 데뷔해서 음악 방송 1위도, 음원 차트 1위도 하지 못한 채 몇 년을 버티던 오마이걸은, 무려 데뷔 1581일 만에 지상파 음악 방송 1위를 차지하면서 인간 승리를 보여주었다. 브레이브걸스가 롤린으로 역주행하기 전에는 데뷔 이후 지상파 1위를 가장 늦게 거머쥔 걸그룹이었다. 그리고 데뷔 6년 차였던 작년 봄, 살짝 설렜어라는 곡으로 지상파 3사 1위, 멜론 차트 1위를 차지했다. 재계약을 앞둔 시점에서 전성기가 찾아온 대기만성형의 아주 독특한 케이스다.


 그렇다. 내가 오마이걸을 좋아하는 이유는 실력도 있고(라이브 안정감이 정말 좋은 걸그룹...), 끼도 있고(효정, 승희는 예능 블루칩...), 인성도 좋지만(털어서 먼지 하나 안 나오는 걸그룹으로 유명...) 데뷔 이래 빛을 보지 못하고 힘들게 지내다가 결국 인정을 받으며 잘 된 아이돌이기 때문이다. 그 힘든 시간을 꿋꿋이 버텨내 준 게 정말 대견하기도 하고, 지금 잘 되고 있는 것이 정말 좋고 뿌듯하다. 내가 좋아하는 유명인들은 대체로 이런 케이스가 많다. BTS, 브레이브걸스, 아이즈원의 이채연, 오마이걸까지. 모두 힘들게 힘들게 어려운 시절을 버텨낸 뒤 끝끝내 빛을 본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잘 될 때마다 나는 정말 감동이 벅차오르며 힘이 솟는다. 


저, 여기 있어요! 저 가수예요!


 싱어게인은 그런 관점에서 나를 가만 두지 않는 예능이다. 실력은 정말 뛰어나지만 빛을 보지 못한 수많은 가수들이 나와서 저, 여기 있어요!라고 외치는 곳. 그분들의 노래를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살아왔던 고된 시간들이 귀로 흘러 들어와 눈앞에 펼쳐지는 것만 같다. 마음속으로 제발, 제발을 외치면서 방청객처럼 두 손을 모으고 있고, 마침내 심사위원들이 어게인 버튼을 눌러주면 가슴이 벅차오르면서 눈물이 쏟아진다.


 지난 시즌에서 나의 마음을 울렸던 가수는 11호 가수, 레이디스 코드의 이소정 님이었다. 레이디스 코드라는 그룹은 데뷔할 때부터 알았고, 좋아하는 노래도 워낙 많아서 가끔 찾아 듣던 그룹이었다. 그러나 짧은 활동 기간을 끝으로 내내 빛을 보지 못했고, 그대로 사라지는 듯했다. 이소정 님은 돋보이는 음색과 뛰어난 보컬 실력으로 싱어게인에서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나는 노래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울고 있었고, 눈물을 닦느라 노래를 제대로 듣지도 못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J-7hnHzEuA

이제는 웃고 싶은 가수. 마음껏 비상하시기를!


시즌 2를 시작하고야 말았다.


 내 눈물은 거기서 끝인 줄 알았는데, 아뿔싸 시즌2라니. 고작 작년이지만 나는 잊고 있었다. 싱어게인이라는 예능과 출연진들이 내게 주었던 것들을. 방심하며 방송을 보던 나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눈물을 펑펑 쏟고 말았다. 정말 좋아하는 가수였던 48호 가수, 정말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주었던 20호 가수. 아무도 그들의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목소리와 노래로 대중들에게 존재를 알려온 가수들. 제발 잘되었으면, 제발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심장 안에서 뜨겁게 뿜어져 나왔다. 그렇게 슬픈 노래도, 슬픈 분위기도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나는 보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pHpUi6cRWPQ

한 때 푹 빠져 살았던 48호 가수의 '묘해, 너와'


https://www.youtube.com/watch?v=k4qTMTlFbHU

너무 좋아해서 두 번이나 본 드라마의 OST, '바꿔'를 부른 20호 가수


백조인 줄 알았던 오리


 이들에게 이렇게 마음이 쓰이는 이유는 내가 가족 때문에 그렇게 울었던 것과 같지 않을까 싶다. 내가 가진 결핍, 채우고 싶은 욕망. 인정받기 위해서, 빛을 보기 위해서 꾸준히 노력하고 열심히 달려왔지만 언제나 나는 확신하지 못했다. 내가 정말 그럴만한 실력이 있는 사람인가? 저 자리에 갈 수 있을 만큼 노력을 했나? 내가 여기서 더 열심히 한다고 해서 저 위치까지 갈 수 있을까? 나는 벌써 나이가 이렇게 찼는데...


 나는 나를 스스로 미운 오리 새끼라고 불렀다. 오리들 사이에 껴 있는 백조가 아닌, 백조들 사이에 껴 있는 오리 새끼. 더 높이 날아오르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을 왔지만 하늘 위는 천둥과 번개가 가득한 곳이었다. 그곳을 아름답고 우아하게 날아다니기에 나는 너무 작고 초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돌아갈 곳은 없으니까. 돈은 계속 쓰기만 하고, 시간은 점점 흘러가고, 실력은 그대로 멈춰 있고, 나보다 어리고 똑똑한 천재들은 점점 많아지고.


아름다운 모두의 날갯짓


 그렇다고 내가 오마이걸, BTS, 브레이브걸스처럼 끝끝내 버티고 버텨서 날아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오마이걸, BTS, 브레이브걸스와는 다르게 끝끝내 빛을 내지 못하고 아스라이 사라져 간 수많은 가수들을 안다. 싱어게인에 나오는 73명의 가수가 그럴 것이고, 본선에 오르지 못한 가수들이 그럴 것이고, 나 또한 그중 한 명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꼭 하늘을 날아야만 값진 인생은 아니라는 걸 잘 안다. 땅을 열심히 달리는 것도 값진 인생이고, 호수를 자유롭게 헤엄치는 것도 값진 인생이다. 이번에도 수많은 N호 가수들이 몇 번의 무대 끝에 또 잊히겠지만, 그들은 또 나름의 의미를 되찾고 또 다른 길을 걸어갈 것이다.


 닭으로 사는 것, 오리로 사는 것, 백조로 사는 것 모두 의미가 있고 소중하다. 모든 사람들의 날갯짓은 아름답고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빛을 보는 것이 꼭 의미 있는 삶도 아니고, 그것이 꼭 실력과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삶은 무수히 많은 가능성의 길이 열려 있고, 우리는 모두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다. 우리 48호님도, 20호님도 그렇다. 싱어게인에서 얼마나 많은 무대를 보여주실지 모르겠지만, 이미 새로운 도전을 하고, 노래를 부르고, 목소리를 낸 것 자체가 아름답고 멋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mgWxezH7cc

그의 수상소감은 많은 사람들을 울렸다.


언젠가 각자의 동백이를 만나기를


 며칠 전, 연락이 끊겼던 오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끝이 보이지 않던 긴 터널을 지나고 있던 그 친구는 다행히 좋은 소식을 전했다. 행여나 말실수를 할까 봐서, 괜히 주눅이 들까 봐서 차마 먼저 연락을 하지 못하고 있던 나와 다른 친구는 다시 돌아온 오랜 친구를 반갑게 맞이했다. 하루 종일 회사일로 스트레스를 받아 심장이 아팠지만 그 친구의 전화로 인해 기분이 정말 좋아졌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한 끝에 자신만의 동백이를 만난 내 친구. 그 친구가 원하던 길을 가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가 원하던 길이든, 그렇지 않든 그저 다시 우리에게 돌아와 주어서 고마울 뿐이고, 앞으로의 길을 응원할 뿐이다. 이런 눈물이면 얼마든지 흘려도 괜찮으니 부디 잘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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