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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es Hur Apr 11. 2023

다시 갭이어. 이번엔 뒤로

나는 2005년 가을에 처음 갭이어(Gap Year)를 보냈다. 파티스쿨로 유명한 샌디에고 주립대에서 두 학기 동안 수많은 파티는 물론, 전공수업, 액팅수업, 랭귀지 수업 등을 해봤다. 돌아보면 그 갭이어는 그때까지 안 해봤지만 해보고 싶었고 도움이 될 수도 있는 것을 자유롭게 시도하는 시간이었다. 갭이어 이전의 나는 외국인을 만나면 수줍어하며 "Uhhhh... I'm a boy. You're a girl."을 겨우 말하는 정도였다. 영어원서 교과서를 헉헉 대며 한 줄 겨우 읽고 다음 줄로 넘어가면 까먹곤 했다. 그랬던 내가 영어로 글 쓰고, 전공수업을 듣고, 연극까지 해보다니...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나름 큰 변화였다. 닥치면 다 하게 된다. 망해도 괜찮다. 그리고 미국에서도 김치에 밥 먹을 수 있다. 이 교훈들은 내가 예전과 다른 선택을 하게 도와주었다. 그 갭이어심으로 살아왔고 어쩌다보니 미국에 정착해서 직장생활하며 한국김치에 쌀밥 잘 먹고 있다.


1년의 갭이어를 다시 가질 수 있다면, 시니어의 삶을좀 더 가까이에서 배우고 싶다. 팔색조의 누구처럼 한국과 미국을 누비며 정말 멋진 삶을 살고 계시기도 하고, 인터뷰 해주었던 누구처럼 힘는 노년을 외롭고 어쩌면 위험하게 살고 있기도 하다. 누구도 경험하지 못하고 살아가지만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이므로 잘 이해하고 싶다. 최근 Assisted Living에서 일하는 아땡땡과 통화를 하며 내가 가볼 수 있냐고 물어봤는데, 선뜻 허락해 주었다. 쿨하고 나이스하고 설명도 참 잘해주는 아땡땡. 느낌이 참 좋다. 앞으로 계속 연락하며 잘 지내고 싶은 사람이다. 나에게 갭이어 1년이 주어진다면 시니어 리빙, 시니어 케어, 노인아파트, 메모리 케어, Adult Daycare 등의 시설에서 봉사활동이든 뭐든 하면서 그 분야 사람들과 다양하게 교류하고 그들의 세상을 배우고 싶다.


그렇게 배워나가며 하루하루 글로 기록하고 공유하고 싶다. 책 "Show your work!"에 나온 방법을 따라 해 볼 생각이다. 내가 오늘 이걸 봤어. 이걸 느꼈어. 너도 알고 있니? 어떻게 생각해? 너는 어땠어? 다른 이들과 소통하고, 관심 있는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다. 그러면서 내 경험과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싶다. 디지털 세상의 연결성은 가히 엄청나기 때문에 많이 기대가 된다. 그러려면 일단 영어로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지. 그러니까 글쓰기 연습 꾸준히 해야겠다. 그리고 계속 제자리면 어때. 나에겐 chatGPT가 있잖아.


그러다가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서비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신나게 해커톤에서처럼 빨리빨리 만들어보고 싶다. 나는 해커톤을 참 좋아한다. 완전 좋아한다. 새벽 2시까지, 때로는 밤새면서 코딩하고 회의해도 그게 참 좋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모여있는 종합선물세트같다. 다양한 role의 deliver-results 선수들이 모여서 하나의 목표를 정하고 후다닥 만들며 엄청 친해지고 좋은 추억을 쌓는다. 끝나고 찌인한 뒷풀이까지. 한라산으로 건배, 그리고 크~~~~. 이렇게 함께 프로젝트를 해보는 것처럼 서로 가까워지고 다방면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시간이 있을까? 갭이어 동안에는 이해충돌 걱정이 없으므로, 그동한 못했던 런칭을 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때때로 다른 early stage 스타트업들을 컨설팅으로 도와주고 싶다. 그동안 여러 번의 제의와 부탁이 있었고 정말 도움이 되고 싶었지만, 내 고용계약서에 있는 이해충돌과 지적재산권 조항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 아주 잠깐 단발성으로 주말에 몰아서 해보는 정도? 그러니 진정한 도움이 됐을 리 만무하다. 갭이어 동안에는 어느 정도 타임박싱해서 마음 가는 곳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나도 성장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지금은 2023년. 나의 첫 갭이어 이후로 거의 20년이 지났다. 오! 마이! 갓!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단 말인가? 그동안 왜 갭이어는 커녕 갭먼쓰도 없이 살았단 말인가. 더 늦기 전에 이렇게 몸에 좋고 맛도 좋은 갭이어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여보.... 이번에 펀드레이징 와아안전 성공해서 나 갭이어 선물해 줄 거지? 믿어요.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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