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mes Hur Apr 17. 2024

나에게 소명이란? <숨결이 바람 될 때>를 읽고

며칠 전 브런치 글에서 말했듯,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는 다시 읽어도 큰 감동을 주었다. 요즘은 기억하고 싶은 부분을 골라서 정리하고 있다.  토픽을 중심으로 그룹핑 중이다.  예를 들면, 저자가 언급한 좋은 책들과 이유는 "책" 그룹에 모으고, 문학의 가치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문학의 가치" 그룹에 모은다.  오늘까지 책의 절반 정도를 정리했다.  아마 내일이나 모레까지 완성할 수 있을 듯하다. 그때 브런치 글로 나누려 한다.

책에 실린 폴 칼라니티 사진. 신경외과 레지던트 시절인 듯


이 과정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직업윤리와 소명의식" 그룹이다. 그 안에 넣어 둔 구절 하나를 꺼내어 나와 연결하고 생각을 적어두고 싶어졌다.  그 구절은 


실제로 99퍼센트의 사람들이 연봉, 근무 환경, 근무 시간을 고려하여 직업을 선택한다. 그러나 원하는 생활방식에 중점을 두고 선택하는 건 직업이지, 소명이 아니다.


그리고 저자는 소명에 따라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신경외과를 선택한다.


이 구절은 내 일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했다. 그리고 내가 3년 전 지금 부서에 지원했던 이유, 헬스케어 인공지능 분야에 머무르는 이유, 그리고 요즘 시니어케어와 존엄한 삶에 관심을 가지고 조금씩 공부하고 있는 이유 등이 생각났다. 아마 이것들을 하나의 단어로 줄인다면 어쩌면 '소명'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소명'이란 단어는 너무 거창하고 닭살이잖아! 어쩌면 그래서 그동안 거부해왔는지도 모르겠다.)


'소명'이란 단어는 '부를 소'와 '목숨 명'을 써서, 부름 받은 목숨(삶)이란 뜻이다. 내가 부름을 받았다.... 영어로는 Calling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단어와 나를 연결해 봤을 때, 난 믿는 종교가 없기에 처음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마음이 부르는 (calling) 작은 소리를 듣고 행동에 옮겼다면 그것도 '소명'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저자도 신의 명령이 아닌 마음이 내는 소리를 듣고 신경외과를 선택했잖아. (그 선택하는 과정이 참 재미있다. 폴 형은 참 멋있는 사람이다. 꼭 읽어보길 권한다.)



지인들에게 내가 음성인식 핵심 알고리듬 팀에서 인공지능 헬스케어 조직으로 옮긴다고 말했을 때 대부분 반대했다. 사내 사정을 잘 알고 있을 시니어레벨, 디렉터급 등의 지인들도 모두 염려하거나 의아해했다. 나는 다른 핵심 인공지능 알고리듬 팀에서도 오퍼를 받은 상황이었는데 왜 굳이? 게다가 왜 데이터도 별로 없고 규제도 많은 헬스케어이며, 왜 아직 자리잡지도 못한 사업 조직에 가냐는 것이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헬스케어 현장에서 일하는 다양한 직군의 핵심 인력들과 연결되고, 그들의 진짜 문제(인공지능 문제 말고, 진짜 그들의 문제) 속에 뛰어들고 배우고 싶었다. 정말 그럴 수 있다면 내가 인공지능 핵심 알고리듬에서 조금 멀어진다 하더라도 괜찮았다. 실보다 득이 더 크다고 느껴졌다. 실제로 그 사업부에는 헬스케어 분야에서 엄청난 커리어뿐 아니라 도전적인 마인드셋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과 함께 일하면서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헬스케어 분야 자체를 잘 이해하고 싶어진 이유가 있다. 미국에서 학생일 때, 이해할 수 없는 헬스케어 시스템 때문에 내 지인을 잃었다. 그들이 위암이나 폐암으로 죽어가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이런 상태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그들만의 문제로 느껴지지 않았고 바로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문제로 느꼈다. 오랜 시간 몸이 알려주는 신호를 계속 놓치거나 뒤로 하고, 뒤늦게 정신 차리고 병원에 갔을 때에는 다양한 이유로 (예: 그 나이엔 확률이 낮다) 심각한 병인지 확인하는 검사를 몇 달씩, 그것도 쓰러지기 전까지 미뤘기 때문이다. 암을 너무 늦게 발견했다. 그런 메디컬 프랙티스가 일반적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누구의 탓으로 돌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미국 헬스케어 산업에서 오랜 시간 동안 얽히고 섫켜서 여기까지 와버린 것이었다. 누구나 매년 종합검진을 챙겨받는 한국에서 살다 온 나에게는 정말 큰 충격이었다. 두 명을 그렇게 잃었으니, 그 충격이 두 번이었다.


난 아직도 그 사업부에 있다. 계속 머무르며 용을 쓰는 중이다. 사실 이곳이 내 커리어와 개인적 삶에 최상의 선택은 아닐 수 있다. (이미 그렇다고 느낀지 좀되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저자의 이 구절에서 울림이 있었고 내 삶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면, 어쩌면 나도 직업으로만 바라보고 일하고 있지는 않다는 약간의 안심과 위안 같은 게 느껴졌다. 저자가 보여준 결심과 행동에 비할바는 아니겠지만, '소명'이라는 이 거창하고 좀 멋있는 단어에 나를 연결시켜볼 수 있다는 이 정도의 느낌만으로도 어느정도 보상이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오늘은 어제보다 기분 좋게 잠잘 수 있을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