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지휘자의 해외 공연은 참 귀하다. 흔치 않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 챙겨보고 싶다. 오래전 정명훈의 베를린필 지휘를 볼 기회가 있었다. 독일에서 학회가 끝나고 베를린에 놀러 갔는데, 그곳에 사는 유학생 친구가 학생할인 티켓을 마련해 준 덕분에 무려 베를린필 공연을 앞자리에서 볼 수 있었다. 곡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서 참 아쉽다. 아마도 2014년 5월 즈음이었으니 벌써 10년이 지났네. 베를린필 웹사이트에서 찾아보니 브람스 심포니 2번이었던 것 같다. 폭풍우처럼 에너지를 폭발하는 마지막 부분에서 큰 감명을 받았고 손바닥 터져라 기립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좌측 현을 향해 마치 장풍을 연달아 발사하는 듯한 지휘 동작이 기억에 남는다. 오케스트라가 몰아치는 거대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와... 그 장면 멋졌다 정말.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어제는 표토르 일리히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 공연에 갔다. 우울함 끝판왕 무덤 교향곡이다. 한국인에게 많이 사랑받는다고. 1악장 하이라이트 부분은 누구나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하다. (나 같은 클알못도 들어봤을 정도니까) 이 부분이다. 공연 전에 유튜브로 찾아봤는데 나도 모르게 울컥할 정도로 찌릿한 감동 마사지를 느꼈다.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가 고조되다가, 잠시 가라앉았다가, 현이 다시 큰 에너지로 그 감정을 끌어올리며 폭발하는 그 부분이 특히 좋다.
1악장 처음에 바순이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잘 만들어 주었다. 중간중간 나타나는 클라리넷의 센스 있는 연주도 기억난다. 현장에서는 모든 현이 함께 내는 에너지가 크게 전해져서 유튜브보다 감동이 더 컸다. 2악장의 5/4 박자 연주도 재미있었다. 약간 발레 춤곡 분위기가 났다가 공허하게 사라지는 느낌으로 끝나서, 상실감과 허무함을 표현하는 듯했다. 실제 우리의 삶에서도 그런 것 같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하거나, 좋은 일이 있다가도 딱 그렇게 불현듯 기분이 다운되니까. 우울한 기분은 그렇게 찾아오는 것 같다.
지휘자는 한국인 성시연. 악기의 템포를 세심하고 정확하고 확실하게 지시하며 딱딱 큐를 주는 스타일인 듯. 팔을 좌우로 크게 흔드는 동작, 팔을 크게 돌리며 정리하는 동작 모두 역동적이고 표현력 있게 느껴졌다. 왼손 손가락을 미세하게 떨며 현의 즈즈즈즈즈즈~ 하는 부분까지 지시했다. 4악장 마지막 부분에서는 극도의 우울감과 어두움을 표현했는데, 그때 현을 바라보던 그 카리스마 눈빛! 크~ 멋졌다. 마지막 부분에서 여운을 남기는 느낌을 잘 지켜줘서 나에게도 잘 전해지는 듯했다.
비창 이전 연주는 손열음과의 모차르트 협주곡이었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서로 주고받을 때 균형이 잘 잡혀서 모든 소리가 잘 들렸고 더 재미있게 들렸다. 덕분에 손열음의 세심한 표현력과 컨트롤이 더욱 빛났다. 공연 끝나고 둘이 설렁탕집에 가서 기분 좋게 야식파티하며 하이파이브 했을지도?
10년 전 정명훈의 공연이 잘 기억나지 않는 아쉬움을 달래보고자, 이번에는 조금 끄적여봤다. 오늘 일요일 아침에는 요즘 뜨고 있다는 동네 커피집 'Community Goods'에서 공연 프로그램을 다시 읽으며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오늘밤 브런치 글까지 쓰니 꽤 괜찮게 마무리하는 기분이 든다. 8월에는 내가 사랑하는 Hollywood Bowl에서 우리 윤찬이와 미도리 교수님의 공연이 있다. 둘 다 많이 기대된다.
차이코프스키 비창은 어제 공연의 3부 순서였고, 2부는에서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을 손열음이 연주했다. 와... 이 연주도 정말 좋았다. 괜히 사람들이 '젊은 거장'이라 부르는 게 아니다. 다음 브런치 글에서는 2부에 대해 써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