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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에포크 Mar 03. 2022

결혼반지 퀘스트 깨기

웨딩 마일리지 두배 적립하기 

출근 지옥철을 조금 벗어난 9시가 좀 넘은 시간에 지하철을 탔다. 평소 이 시간이면 아침을 먹거나 카페를 가거나 했을 시간이지만 오늘은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해를 지날수록 점점 예전과는 달리 대중교통을 타고 멀리 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은 1시간 정도 전철을 타고 을지로입구역에 있는 롯데백화점 본점에 가야 하는 날이다. 10시 20분에 도착했지만 백화점은 10시 30분에 오픈이라 나는 입구에서 막혀버렸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10분 정도를 기다렸다. 29분에서 30분으로 바뀌자마자 나는 빠른 걸음으로 열심히 발걸음을 옮겨 주얼리 매장으로 향했다. 층수를 헷갈려 잠시 일층으로 내려가버렸는데 어마 무시한 줄이 서있는 매장을 발견했다. 바로 샤넬 매장이었다. 샤넬이 가격을 올리면서 새벽부터 샤넬백을 사려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던데 와우. 내 두 눈으로 그 광경을 목격하다니. 샤넬 매장을 들어오는 입구는 따로 있었고 사람들은 그곳에 일렬로 서있었다. 와. 갈길이 바빴으므로 나는 다시 한번 짧게 감탄을 하고 에스컬레이터를 두 계단씩 올라 원래의 목적지로 갔다. 층수를 헷갈려 한발 늦은 내 앞에 어떤 한 남자가 웨이팅 포스에 자기 핸드폰 번호를 적고 있었다. 나는 그 뒤에 줄을 섰다. 다행히 내가 가고자 하는 매장에는 샤넬처럼 사람들이 몰리지 않았다. 내 순서가 되자 나는 웨이팅 포스에 내 핸드폰 번호를 적었다. 웨이팅을 적게 하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었고, 성공적이었다. 

나는 '3번째'라는 대기명단을 받았다. 


아침부터 대기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은 저번 달에 샀던 결혼반지를 취소하고 재결제를 하면 웨딩 마일리지를 더블로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 친구와 나는 결혼반지를 맞추기 위해 여러 번 백화점을 돌아다녔다. 아무것도 몰랐던 우리는 주말 오후 영등포 타임스퀘어를 방문했고, 가려던 매장은 "금일 웨이팅은 마감되었습니다"라는 멘트가 태블릿에 띄워져 있었다. 오후 2시였다. 우리는 충격을 받았다. 웨이팅이 마감이라고? 하는 수 없이 줄을 서서 들어갈 수 있는 다른 매장에서 반지를 둘러봤지만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다음 주평일에 날을 잡고 다시 그 매장으로 갔다. 다행히 웨이팅을 걸어 둘 수 있었고, 쉑쉑 버거를 먹으면서 우리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애를 써서 방문한 매장에서 우리가 염두에 둔 반지를 손가락에 꼈다. 음. 뭘까. 이 아무 감흥도 없는 느낌은. 좀 이상한데. 다른 모델을 추천받아서 다시 손가락에 꼈다. 오호. 이 반지는 전에 꼈던 것보다 좀 더 마음에 들어오려던 찰나, 가격이 아주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리는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하고 그렇게 10분 남짓한 시간만에 매장에서 나왔다. 매장을 벗어나자 허탈함과 무거운 마음이 공존했다. 특별히 감흥이 오지 않은 반지를 명품 브랜드라는 이유로 그만한 돈을 지불하고 살 수도 없었고, 역시나 명품 브랜드의 마음에 들었던 반지를 예산을 훌쩍 뛰어넘는 가격으로 구매할 수도 없었다. '마음에 든다'라고 생각하면 계속 그 반지를 가지고 싶어졌고 욕심을 부리려 하는 마음을 제지하기 위해 "그렇다고 그게 그렇게 엄청 와! 맘에 들어! 이런 거는 아니었어"라고 되새김을 했다. 그리고 그건 정말 사실이었다. 크게 마음에 확 와닿는 반지가 아니었다. 결혼반지를 고르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 

반지의 제왕이여. 내 반지는 어디 있는가.


그렇게 어느 일요일 저녁. 즉흥적으로 롯데백화점을 방문했다. 매장 문을 거의 닫을 시간이라 사람이 많이 없었다. 사진보다 실물이 예쁘다는 반지가 있는 매장에 웨이팅을 걸어놓고 주변에 있는 다른 주얼리 매장을 둘러봤다. 다른 백화점에는 없는 브랜드들이 입점해있었고, 사람이 많이 없는 시간대라 편하게 반지를 구경했다. 그중에 마음에 드는 것이 있어서 우선 두 번째 위시리스트로 정해놓고, 웨이팅 순서가 되었으니 매장으로 방문해달라는 메시지를 받고 다시 그 매장으로 갔다. 우리는 원하는 모델의 반지를 보여주기를 직원에게 요청했다. 과연 뚜둥 역시나 그 반지는 실물이 깡패였다. "오, 나 이거 마음에 드는데?"라는 말이 우리 둘의 입에서 나왔다. 한동안 반지를 보러 다니면서 이런 반응이 나온 적은 없었다. "음..." 이거나 "음... 나쁘지 않네", "음... 괜.. 찮네"였지. "오!"가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무슨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 우선 '음'부터 깔고 봤던 것과는 달랐다. 입을 동그랗게 오므리고 "오!"라고 탄성이 발성을 통해 나온 것이다. 그렇게 '오'의 반응으로 우리는 그날 반지를 구매했다. 남자 친구의 두꺼운 손가락에 맞는 사이즈가 없을까 봐 미리 결혼반지를 알아보러 다녔던 것인데 다행히도 그 매장에는 사이즈가 있었다. 우리가 결제를 하자 매장 직원이 롯데 웨딩 마일리지라는 것을 알려줬다. 결혼 준비를 하는 예비 신혼부부들에게 웨딩 마일리지에 가입하고 웨딩 물품을 롯데백화점에서 사면 가격만큼 포인트를 적립해주고, 기준 금액을 넘으면 나중에 롯데백화점 그에 해당하는 상품권을 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마 멀지 않은 추후에 포인트 적립을 두배로 해주는 이벤트가 있으니 그때 취소하고 다른 카드로 재결제를 하면 더 이득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벤트가 언제 열릴지는 모르겠으니 일정이 정해지면 연락을 드리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취소 재결제 기간은 한 달이었고 우리는 한 달이 다 돼가는 시점에도 연락이 오지 않자 매장을 다시 한 번 더 방문했다. 그때도 역시나 이벤트는 언제 열릴지 알 수 없었고, 우선 그날 취소 재결제를 하고 곧 이벤트를 할 것 같으니 다시 한번 방문을 해야 할 것 같다는 매장 직원의 안내를 또 한 번 들었다. 그리고 그날로부터 정말 일주일 후에 이벤트 문자가 왔고, 나는 더블 적립금을 받기 위해 사람들이 몰릴 것을 대비해 평일 오픈 시간을 맞춰 롯데백화점을 찾아간 것이다. 


나는 웨이팅을 기다린 후 내 차례가 되어 그 매장을 방문했다. 취소하고 재결제를 위해 방문했다고 하니 나와 같은 사람이 더 있어서 그 사람들과 취소 결제를 하는 곳으로 향했다. 매장 직원과 나보다 한발 먼저 웨이팅을 걸었던 남자와 함께 그곳으로 향했다. 거기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우리 뒤로 한 커플씩 취소 재결제를 하기 위해 각 매장 직원과 함께 도착했다. 몇 분 기다린 후 나는 카드를 리더기에 두 번 읽히게 한 후,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 진짜 결혼반지 사는 것이 끝났다. 

베테랑 칼국수

남자 친구에게 취소하고 재결제를 했다는 영수증을 찍어 인증을 하고 나는 늦은 아침, 아니 점심을 먹으러 푸드코트에 갔다. 온갖 맛있는 빵과 디저트들이 나를 유혹하고 있었지만 두둑한 배를 채우기 위해서는 따뜻한 국물이 필요했다. 나는 칼국수를 시키고 호로록호로록 굶주린 배를 채웠다. 오랜만에 퀘스트를 깬 사람처럼 목적을 달성하고 먹은 칼국수는 맛이 좋았다. 푸드코트에는 금세 사람들이 가득 찼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 샤넬백이라는 목적을 달성한 사람이 있을지 생각했다. 

누가 호로록호로록 퀘스트를 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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