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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늼 Jun 04. 2019

11. 이걸 왜 아직도 하고 있니?

어느 날 눈 뜨고 나니 퇴사 요정이 되었다.

10. 내가 원했지만, 원하지 않았던 업무 (이어서)


0.

세상 처음 하는 일들은 다 어렵다. 생각하고 보면 난 온라인 BM(Brand Marketer)였던 적이 없다. 그전에 온라인 마케터였던 적이 없다. 아니 마케터는 맞았던가? 정확히는 기획자에 가까웠다. 언제나 좀 애매한 포지션에 걸쳐 있는 멀티 플레이어이자, 만능꾼이었다 (만한 력을 가지고 있)


어려웠다. 일을 하는 방법을 제대로 몰랐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사실 내부의 적이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난 동료들을 설득하다가 해야 하는 일 혹은 하고 싶은 일들의 1/3도 하지 못했다. 중요한 건 해야 하는 일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하고 싶은 일로 발전할 수 있으려면 일단 해야 하는 일을 '다 해야 한다' 그래야 '잘할 수 있고' 그래야 '하고 싶은 일'도 할 수가 있다. 해야 할 일을 못했다는 것은 성장의 여지가 없다는 뜻일 수도 있다.


1.

난 적극적으로 내부 팀원들을 설득해서 그들의 힘을 빌어 업무를 처리하려고 했다. 좋은 상품이 마케팅의 기본이렸다. 그 본질적인 측면에서부터 시작하려고 했다. 대학교 때 수업을 잘 들은 편은 아니었지만, 마케팅 원론의 내용은 심화 수업까지 포함하면 3번은 더 들었으니깐, 3번 정도 들으면 기억하니깐, 아니 각인이 되니깐 난 수업의 내용 그대로 적용했다. 내부 마케팅이 먼저였다.


그래서 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레퍼런스, 사전 데이터 분석 등등을 준비했다. 마케팅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해도 고객들과 더 많은 소통을 하고 경험이 있는 에디터들의 지혜를 빌리고 싶었다. 그들의 조언과 함께라면 새로운 프로젝트라도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보다 많은 피드백이 있었지만 그래도 꾸준히 데이터 분석을 했고, 아이디어를 내면서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3-4개씩, 점차 한 달에 3-4개씩, 그러다 달에 1개의 아이디어도 제안하지 못했다. 심지어 실행도 못했다.


2.

마음만 조급해지고, 결과는 커녕 실행도 못하고 시간만 흘렀다. 그쯤 되니 스트레스로 인해서 몸도 나빠지는데 야근은 지속되고 있었다. 그 작은 회사에서 1명이 제 몫을 못하다 보니 매출이 나아질 일이 있을 리 없었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마케터에게 돌아왔다. 그렇게 몇 개월을 제대로 된 프로젝트 하나 하지 못한 체 야근을 하던 중이었다. 어느 날 대표님이 오셔서 엑셀로 데이터 분석을 하고 있던 나에게 이런 말을 하셨다.


"이 데이터는 어디에 쓰는 거야? 이게 왜 필요한 거지? 이게 증명되면 뭘 할 건데?" 그렇게 조곤 조곤 이야기를 하던 중에 대표님이 내 얘기를 다 들으시더니 "이거 4개월 전에도 분석하던 거 아니야? 그때랑 지금이랑 뭐가 그렇게 많이 달라졌어? 이걸 왜 아직도 하고 있어? 그냥 하면 안 돼? 난 이해가 잘 안가네..."라는 말을 하셨다.


이 데이터에 대한 필요성도 이해시켰고, 이 분석을 다 하면 뭘 할지도 이해를 시킬 수 있는데, 이걸 왜 아직도 하고 있냐는 질문에 나는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왜 이 분석을 하고 있는 건가? 난 답할 수가 없었다. 


이 말을 들을 때는 솔직히 어린 마음에 속상했다. 내가 이렇게 4개월 동안 데이터 분석을 하는 동안 당신은 무엇을 하셨는지, 이렇게 맨날 야근만 하고 있는 나에게 그게 할 말인지, 너무 따지고 싶었다. 근데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없어서 죄송하다는 말만 하곤 말았다. 뜬금없는 사과에 대표님은 힘내라는 말을 하시고 퇴근을 하셨다.


3.

내부 멤버들은 항상 내가 아이디어를 가져올 때마다 나와 부딪혔었다. 내부 인원 조차 설득할 수 없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던 나는 끊임없이 그들이 반박할 수 없는 데이터를 찾고, 확실한 아이디어를 제안하려고 했다. 


사실 새로운 아이디어에 반대 의견을 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들은 나와 다르니깐. 하지만 그 말은 다른 말로도 해석할 수 있다. 내부 멤버들은 우리의 타깃 군과도 다르다. 이것도 너무나도 당연하다. 내부 인원들은 우리 타깃 군이 될 수 없다. 일부 그런 성향을 가진다 한들 100%라고 볼 수 없다. 나는 그 맹점을 모른 체 내부 인원들을 설득하다가 시간을 다 보냈다. 내부의 적은 동료들이 아니라, 그들을 설득해서 안전하게 마케팅을 하려고 했던 나 자신이었다. 


동료들은 단지 내가 돌리는 배의 키에 따라 의견을 냈을 뿐이다. 어딜 가든 안전한 바다는 없다. 저길 가면 암초가 많고, 여길 가면 폭풍우가 치는 것이다. 그건 그냥 당연한 것이었다. 이걸 깨닫는 동안 정말 많은 시간을 보냈다. 딱 이 시기 전까지 난 사수를 찾았다. 내가 배의 키를 준지도 모르고, 명확한 방향을 가르쳐 줄 선장을 찾고 있었다. 아주 우연한 기회였다. 그리고 난 그때부터 야근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을 했다. 그게 내가 하고 싶은 일었고, 그 일을 할 때 난 누구도 설득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고, 그게 이유였다. 그렇게 작은 조직의 브랜드 마케터로서, 1년 차가 되었다. 짧은 시간 동안 폭풍 성장을 하니 난 새로운 욕심이 생겼다. 


12. 돈 쓸 줄 모르고, 벌고만 싶은 못된 마케터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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