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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늼 Feb 05. 2017

02. 그만 둘 줄 알았더라면

생애 처음으로 취준생이 되었다.

01. 첫 번째 이직 준비 (이어서)


03.

다시 퇴사 전으로 돌아가 보자. 내가 맡았던 작은 브랜드는 뜨거운 여름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 프로젝트는 여름에 밖에 나가서 농부님들을 촬영하는 프로젝트 였고, 변수가 많았다. 지방 곳곳에서 활동하는 거라 온라인 컨텐츠로 만들기에는 활용할 소스와 다듬을 시간이 부족했다. 안타깝지만 나는 철저한 준비를 위한 시간을 낼 수 없었고, 기간 내에 완성 가능한 수준으로 결과물을 냈었다. 예를 들면, 센스 있는 디자인과 깔끔한 시스템이라든지... 그런 건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는 새로 브랜드를 런칭하면서 돈도 벌고, 조직 구성도 새로 구축했어야했고, 기세가 떨어지던 기존의 브랜드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야 했고, 그 와중에 부족한 디자인 기술도 익혔어야 했다. 우리는 많이 아쉬웠고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간절했다.


'작은 회사'라는 건 '못 한다'라는 그 많은 이유 중 작은 이유일 뿐이었다.


사실 나는 그때 만든 컨텐츠가 부끄럽다. 2달 간 하루에 3시간씩 자면서 콘텐츠를 만들었지만 아직도 이 프로젝트를 이력서에 쓰기 부끄럽다. 당시에도 부끄러웠는데 지금은 오죽할까? 나는 내 눈으로 내가 만든 컨텐츠가 별로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용자들에게 보여줄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후회는 하지 않는다. 자랑스러울 수준은 아니지만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았다고 얘기할 수 있다. 돈이 없어서, 작은 회사라서 많은 결과물을 만들어내진 못했을 지언정 그 이유를 탓하진 않았다. 우리가 놓친 것들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했고, 좋은 결과물을 못냈을 지언정 '이것은 틀렸다!'라고 확신이라도 할 수 있었다. (과연 이 세상 몇이나 혼신을 다해서 노력한 결과물을 잘못되었다고 속 시원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 용기만으로도 나는 많은 것을 얻었다)


04.

지금 와서 이직을 하기 위해 이력서를 쓰다보니, 이력서에 넣을 게 지난 날 내가 했던 프로젝트들 밖에 없더라. 막상 일을 할 때에는 '내가 하는 일이 곧 나를 나타내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심지어 자기 성장에 욕심이 크던 나였지만, 일을 하는 와중에 내가 하는 일이 나를 나타낸다고 깨닫는 건 정말 쉽지 않았다. 후회는 하지 않지만 그 당시에 지금 이력서에 쓸 내역이 그때 결정된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결과가 좀 더 달랐을까 궁금하기도하다. 일을 열심히 할 당시에는 내가 그만둘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진 않았다. 오히려 대표님께 주제 넘게 '뼈를 묻겠다' 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곤 했다. 그때 플랜 B를 생각하지 않았던 건 큰 실수 였다. 다른 회사에 갈 준비를 안했다는 말이 아니라, 사람 일이라는 게 어떻게 될 지 모르는데 아무런 대비를 안했다는 게 실수 였다는 말이다. 이번에는 내가 일을 그만뒀지만, 잘렸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회사가 망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대비는 준비의 다른 말이지, 꼭 대안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뭐 이래나 저래나 다 지난 일이다. 그만둔 마당에 아쉬운 것도 참 많다.)


아무튼 난 이런 과정 속에 일을 그만 뒀고 모아둔 돈으로 100일 간의 휴가를 가지려고 했다. 마치 학창시절 방학 때처럼, 3달 간의 휴식을 취하고자 했다. 그 동안 해보고 싶었던 일과 여가를 즐겼다. 실제로 실행하기도 했다. 여행을 갔다왔고 좋아하는 브랜드의 강연을 들으러 다니고 있고, 맛있는 요리를 하고 책도 읽고 있다.


하지만 꼭 계획은 어긋나기 마련이고, 이번에도 변수가 생겼다. 재정적으로 문제가 생겼다. 고정 지출이 갑자기 늘어나게 되었고, 수입이 없다보니 자동적으로 마이너스가 늘어났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가정사로 인해 다음 달부터는 더 큰 돈이 나가게 되었다. 아직 무리를 줄 정도는 아니지만 계획에서 어긋난 계산이 시작되었다. 100일은 90일로 줄었고, 곧 90일은 70일로 줄었다. 알바를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 전 인턴을 같이했던 옛 동료가 본인이 같이 일했던 대리님이 일하는 회사를 추천해주었다. 솔깃할 수 밖에.



끝.


03. 이력은 심플 이력서는 화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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