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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유정 Nov 09. 2022

상실이라는 건.


한지를 만드는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이 과정이 어쩌면 내가 지향하는 삶과 닮아있다는 생각도 든다.

방향과 속도가 정해져 있다. 느리지만 그 시간을 거쳐야만 진짜 한지가 된다.




그냥 마음이 갔다. 닥섬유 한 조각이 물에 풀어지는 순간 뭉친 마음이 스르르 녹는 기분이었다. 이 마음은 지나가는 바람일까. 미지의 세계, 모험의 세계- 이런 건 내겐 너무 두려운 것이라 피하고 싶다가도 이젠 미지의 세계든, 심해든, 지평선 없는 곳이라도 걸어가보고 싶은 걸 보니... 시한부인 젊음이 서늘하게 와닿는 건가 싶어 이 마음을 따라가 보는 걸로 결정했다.


20대에 이런 실험과 시행착오를 더 경험해 보면 좋았겠지만... 그때의 나는 또 그 나름의 시행착오를 겪느라 바빴던 기억. 그때도 지금도, 누군가 내게 ‘끌리는 대로 살아도 망하지 않아. 그렇게 살아!’라는 말을 해주길 바란다. 어찌 되었든 여전히 아쉬운 건 머뭇거리다 흘러가버린 것들이다. 10년 뒤, 40대가 되어서 ‘해 볼걸.’ 하며 후회 섞인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차라리 ‘해 봤는데, 아니었어.’가 훨씬 나은 후회다.


나는 그냥 나를 믿고 끌리는 대로 가볼 예정이다.

내년에 거주지를 옮기고 싶은 것도 마찬가지다. 마음이 무너져 내릴 때 나는 응급실을 찾듯 내가 원하는 풍경을 찾아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내 고향인 도시가 싫었다. 어쩌면 도시에 사는 게 진짜 문제는 아닐 수도 있지만 마음이 들어섰을 때 행동하고 싶다.


 한 번쯤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의 틀을 다시 세우고 싶었다.


이상하게도 어른이 된 이후부터 한 동네에서 몇 십 년을 산다는 걸 상상하면 조금은 갑갑하고 먹먹한 마음이 들었다. 어릴 적 12년 동안 살았던 동네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추억이 너무 많으면 추억에 갇힌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내가 내린 결정과 이후 최선을 다해 그 결정을 존중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


인간이란 무릇 스스로 나뒹굴면서 자기만의 틀을 세워야 그것이 내 것이라 속 시원하게 외칠 수 있는 존재란 걸 느낀다. 남이 세워준 틀에서는 안락하게 앉아있는 것처럼 보일지언정, 막상 두 발을 딛고 섰을 때 잠시도 서 있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이런 삶을 늘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하는 것들이 내게 어떤 자취를 남길지, 그것으로 어떤 모양의 틀이 완성될지 궁금하다.


결국 인생에서 잃는 것이란 애초에 있을 수 없는 일일수도 있다.

상실을 느끼는 마음의 문제이지, 현상 그 자체는 그저 원리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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