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개의 문단으로 전하는 짧은 생각 : 열문단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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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도 크게 사랑받는 예술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가 한 말입니다.
"영감과 역량은 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신이 주신 것일 뿐 내 의지로 얻을 수도, 붙잡을 수도 없다. 대신 취향은 온전한 내 것이다. 무엇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전혀 문제 되지 않고 이를 남들과 비교할 필요조차 없다. 취향이 있는 삶이 진짜다. 취향이야말로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간접적으로 증명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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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는 취향이 뚜렷해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괜챃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투명한 물에 쨍한 잉크를 똑하고 떨어뜨린 것 마냥 선명한 사람도 있지만 '내가 이 향기를 어디서 맡아봤더라...'라는 수준으로 바람결에 불어오는 잔향처럼 자신의 취향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 사람도 있거든요. 비록 자신의 취향을 아주 자극적으로 어필해도 대중의 주목을 받는 게 쉽지 않은 시대임은 분명하지만 타인의 관심을 구하는 목적이 아니라면 사실 취향의 감도나 크기, 종류나 깊이는 딱히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호크니 옹의 말처럼 온전히 나를 위한 것인 만큼 내가 만족하면 그만인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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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취향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조금 다른 얘기로 접어든다고 생각합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저는 취향이 뚜렷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의 자기 취향은 가지고 있는 것이 유리하다는 입장입니다. '유리하다'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그게 삶을 더 풍요롭게 하는데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도 취향을 갖고 임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의외의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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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이나 브랜딩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취향이 뚜렷한 사람이 정말 많습니다. 그중에는 자기 스스로를 드러내고 개취라고 불리는 자신의 기호이자 성향을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도 많죠.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취향을 역량의 땔감으로 쓰고 있느냐 하면 그건 아닌 게 분명해 보입니다. 오히려 취향은 취향이고, 역량은 역량일 뿐 이 둘 사이는 늘 끊어진 듯 서로에게 특정한 시그널을 보내지 않는 경우가 훨 많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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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취향이 다소 밋밋해 보여도, 딱히 자기 취향을 드러내지 않더라도 취향과 역량이 서로 시너지가 날 수 있도록 잘 다루며 살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람 모두를 하나의 공통점으로 묶을 수는 없겠지만 제게 그 이유를 찾아보라고 하면 저는 '취향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는 데'서 첫 단서를 발견할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그저 '취향'이라고 알고 있는 의미와 진짜 '취향'이 가진 참된 개념을 잘 구분하고 이를 적절한 기준으로 활용하는 데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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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이란 말만 들으면 왠지 '냄새와 향기'처럼 자신이 선호하는 향이나 분위기를 뜻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취향(趣向)'의 한자어를 살펴보면 '뜻 취'자에 '향할 향'자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취향이란 말 그대로 내 뜻이 어느 방향을 가리키고 있느냐, 하고자 하는 그 마음이 어느 곳을 향하고 있느냐의 문제란 얘기죠. 이렇게 취향의 본질을 알고 나면 이제는 문제가 조금 달리 느껴지기도 할 겁니다. 단순한 선호도의 문제라기보단 내 의지와 가치관과 결부된 문제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취향을 대하는 태도 역시 바뀌게 되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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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과연 이 취향이라는 게 왜 우리가 하는 일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는 걸까요? 바로 '나의 기준점이 어디에 더 치우쳐 있는지'를 스스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말이 좀 어려울 수 있지만 아주 단순한 얘깁니다. 만약 그저 '호'와 '불호'만을 가지고 취향 놀이를 하는 경우의 사람들이라면 그들 앞에 무엇인가가 주어졌을 때 늘 그게 나의 마음을 휘어잡는지 아닌 지만을 판단하게 된다는 얘기죠. 무엇을 대할 때 수동적인 상황에 놓일 확률이 그만큼 크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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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현재 내가 무엇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디에 방점을 찍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내가 어느 위치에서 그 대상을 판단하고 있는지 역시 꽤 정확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호'와 '불호'를 판단함에 있어 일종의 메타인지를 발휘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죠.
때문에 자기 취향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아는 사람에게 특정한 판단을 요청하면 '원래 나는 A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이렇게 바라보니 B라는 것도 꽤 흥미롭게 느껴지는 것 같네요. 아마도 저와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이건 의미 있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와 같은 평가를 내리곤 합니다. 그만큼 자기 취향에도, 타인의 취향에도 존중의 자세를 취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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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루에도 몇 번씩, 무심코 던지게 되는 말 중 하나가 '진짜 내 취향이야', '진짜 내 취향 아니야'라는 말인데요, 지금까지 제가 설명드린 기준으로 본다면 사실 이 말은 '내가 요즘 중요시하는 기준에 더 근접한 상태야' 혹은 '그 반대야'라는 의미에 가까울 겁니다. 단순히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단 저걸 보니 기분이 좋아졌어 (혹은 싫어졌어)'는 대상에 대한 즉각적인 감정이지 취향의 수준으로 발전한 상태라고 볼 수는 없을 테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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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혹시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이 누군가의 취향에 의해서 평가받을 확률이 높은 일이라면 가끔은 이 취향에 대한 본질적 정의를 다시금 떠올려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 내 마음은 이 방향으로 치우쳐 있고, 또 대중의 마음은 왜 저기를 향하고 있는지'를 번갈아가며 세상을 이해하다 보면 내 삶의 시각도 넓어질 뿐 아니라 시대의 트렌드를 읽는데도 꽤 괜찮은 안목이 길러지는 것 같거든요. 그저 무색무취한 본인의 일상을 비판하거나 반대로 너무 내 취향을 드러내려 애쓰기 전에 '내 뜻(趣)' 과 '내가 가는 방향(向)'에 대한 메타인지를 발휘해 보는 게 어쩌면 우리를 더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어줄지 모르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