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현대 클래식 음악의 아이콘 - 작곡가 벤자민 브리튼
전편에서 브리튼의 음악 스타일에 대해 조금 알게 되셨다면, 이번 편에서는 브리튼의 삶에 대해 들여다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브리튼의 삶은 자발적 아웃사이더였던 것 같습니다. 집단에 의해 분류된 소극적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본인의 확고한 신념과 신념에 부합하는 과감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던 아웃사이더.
밴자민 브리튼은 비폭력을 주장하는 평화주의자였습니다. 어렸을 때 기숙학교에서 본 훈육의 방식들과 또래집단 내의 따돌림 등을 보면서 폭력에 대한 반발심을 갖기 시작했고,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폭력과 살상에 대항하는 평화주의에 대한 강한 신념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그가 발표한 곡들을 보면,
동물들을 죽이는 사냥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잔혹행위를 고발하는 내용의 <우리 사냥의 조상들 Our Hunting Father, 1936>이라는 곡을 쓰기도 했고, 파시즘에 대항해 일어난 스페인 내전에 대해 자신의 평화주의적 신념과 전쟁의 희생자들을 기리며, 당시 정부군의 지원했던 소련을 비판하는 <러시아의 장례식 Russian Funeral, 1936>과 같은 곡을 발표하기도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하기 직전 영국 내에 군사적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하자 브리튼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양심적 병역 거부를 선언합니다. 그리고 1939년 전쟁이 막 발발하기 직전, 미국으로 떠납니다. 뉴욕에서 지내는 동안 동안 전쟁을 겪고 있는 고국을 떠난 괴로움에 결국 3년 만에 영국으로 돌아갑니다. 영국에서는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지만 "살상 행위에는 참여할 수 없다."는 소신을 밝히고 종군은 하지 않고, 영국 군의 선전 홍보를 위한 음악들을 작곡합니다.
평화주의와 살상에 반대하는 신념을 담은 <전쟁 레퀴엠 War Requiem, 1961>은 브리튼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곡입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대표작이기도 하죠. 대작이기에 1시간 30분이 넘는 긴 곡이지만, 한번쯤 들어보시면 교양을 쌓는데에 도움이 될 듯싶네요.ㅋㅋ
'진혼곡'이라고 알려진 레퀴엠은 '죽은 이를 위한 미사에 쓰이는 곡'입니다. 가톨릭에서 장례 미사에서 부르기 위해 만든 곡이죠.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은 일반적 레퀴엠과 다르게 미사를 위해 작곡된 곡이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영국 코벤트리 대성당의 재건 축성식을 위해 작곡한 곡입니다.
레퀴엠은 원래 가톨릭 미사에서 유래되어 라틴어 가사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브리튼은 오리지널 라틴어 가사와 1차 세계대전의 참혹함을 표현한 영국의 시인, 윌프레드 오웬 Wilfred Owen의 시로 가사를 구성합니다.
<전쟁 레퀴엠>에서는 대부분 레퀴엠들이 마지막에 구성하는 메세지(최후의 심판의 날에 신이 나를 구원하시리라.)가 아니라, 죽은 두 군사가 대화를 나누는 오웬의 시를 배치합니다.
“나는 당신이 죽인 그 적입니다.
나는 이 어둠 속에서도 당신을 알아봅니다.
어제 나를 찔러 죽일 때에도 그대가 지금처럼 얼굴을 찌푸렸기에.”
전쟁 레퀴엠은 굉장히 큰 편성의 대작으로, 실내악단인 '챔버 오케스트라'와 교향악단인 '메인 오케스트라', 소년 합창단, 오르간, 3명의 솔리스트가 등장합니다.
브리튼은 작곡 당시 3명의 솔리스트(소련 출신 소프라노, 영국인 테너, 독일인 바리톤)를 지목해서 곡을 완성합니다. 3명의 솔리스트의 출신 국가는 서유럽에서 싸웠던 주요 3개국을 의미합니다. 초연 당시 소프라노가 소련의 허가를 받지 못해 초연에는 다른 소프라노로 대체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브리튼은 <전쟁 레퀴엠>의 초연 후에, 누이에게 쓴 편지에서 이 곡을 통해 사람들이 전쟁에 대해, 평화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하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나타냈습니다. 또, 악보 맨 첫 장에는 오웬의 시의 한 구절을 적어 놓았습니다.
내 주제는 전쟁과 전쟁에 대한 연민이다.
시는 연민에 있으며,
이 시대의 모든 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경고밖에 없다.
My subject is War, and the pity of War.
The Poetry is in the pity...
All a poet can do today is warn.
아래의 영상은 벤자민 브리튼이 직접 지휘하는 <전쟁 레퀴엠>인데 1시간 30분 정도의 풀 버전입니다.
브리튼의 음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르가 오페라입니다. 16개에 달하는 오페라를 작곡하며, 17세기 헨리 퍼셀 이후 주목받지 못했던 영국 오페라를 부활시켰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마자 브리튼은 '영국 오페라 그룹'을 결성하고 오페라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합니다. 초기에 발표한 오페라 <피터 그라임스 Peter Grimes, 1945>는 브리튼이 작곡가로서 세계적 명성을 얻게 만든 작품입니다.
대부분이 사랑을 이야기하는 기존의 오페라와 다르게 <피터 그라임스>는 영국 시골 어촌 마을의 어부가 동네 사람들과 갈등을 겪으면서 결국 죽음에 이르는 파격적인 스토리입니다.
이 오페라의 막 사이사이 나오는 6개의 오케스트라 간주 곡 중, 바다의 모습을 그려내는 <4개의 바다 간주곡 Four Sea Interlude, Op. 33a>은 오페라 없이 오케스트라 연주 곡으로도 연주되어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4개 순서대로, '새벽녘/일요일 아침/달빛/폭풍'의 주제로 각각의 바다의 모습을 묘사하는 곡입니다.
정말로 눈 앞에 바다가 펼쳐지듯 묘사하는 음악이 정말 매력적이라 제가 좋아하는 곡입니다.
후에 발표된 오페라 <빌리 버드 Billy Budd, 1951>에서도 브리튼은 사회에 대항하는 개인의 모습에 주목합니다. 선장과 선원이 등장해 배 안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에 대해 선과 악을 판단하며 인물이 겪는 혼란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 곡에서도 바다를 배경으로 다루고 있는데, 눈치채셨을지 모르겠지만 전 편에서 언급한 영화 웨스 앤더슨의 <문라이즈 킹덤>의 배경은 바닷마을이고, 주인공 두 아이는 또래 집단에서 겉도는 아웃사이더들이죠. 웨스 앤더슨이 브리튼의 음악을 주축으로 스토리 라인을 만들었다는 그의 설명이 이해가 되시나요?
사실 브리튼이 사회의 아웃사이더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 이야기들을 세상에 내놓은 이유는 그의 삶과도 관련이 있어보입니다.
'집단에 대항하는 개인의 투쟁'이라는 주제는 내게 매우 중요하다.
사회가 잔인해질수록, 개인도 점점 잔인해진다.
A subject very close to my heart—the struggle of the individual against the masses.
젊은 나이에 작곡가로서 성공하며 명성을 얻었지만, 초기 시절 그의 양심적 병역 거부와 같은 평화주의 신념에 따른 행동들은 비평가들에게 '미국으로 도망 간 겁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고, 보수적인 영국 사회에서 배척하고 금기시했던 성소수자로 아웃사이더의 삶을 살았습니다.
동성 간의 결혼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았던 시기에 그는 평생의 음악적 뮤즈이자, 인생의 동반자인 테너 피터 피어스 Peter Pears와 브리튼의 죽음까지 35년 동안 함께합니다. 브리튼 작품들 중 대부분의 테너 파트는 피어스를 위해 작곡했고, 테너만을 위한 세레나데와 가곡 등을 많이 작곡하여 본인과 듀오로 연주를 많이 하기도 했습니다.
브리튼은 아스펜 수상 연설에서 본인의 작곡 철학에 대해 이렇게 언급합니다.
"사회의 일원으로서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또는 그들을 위해 이야기는 하는 것은 작곡가의 의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