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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Jul 11. 2023

161025-05

카페에서 말하기에 적당하지 않은 데시벨


일곱 장 째로 넘어가려는 순간, 갑자기 여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내가 이상한 거야?” 뒤돌아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어 노트북에 반사된 그들의 모습을 보았다. 안타깝게도 여자는 H를 등지고 있어 남자의 표정만을 볼 수 있었다. 남자는 음료 잔을 내려 보며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여자의 목소리는 점점 더 높아졌다. “말해봐. 내가 이상한 거니? 니들이 날 바보 만든 거 아냐? 뭐라고 말 좀 해봐!” 남자가 주위를 둘러보며 뭐라고 말을 했다. 작아서 들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자의 다음 말을 통해 남자가 뭐라고 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우리말 알아듣지도 못하고 신경도 안 써. 그리고 지금 그게 중요하니?” 아마 남자는 사람들이 들으니까 좀 조용히 하라고 했나 보다. 목운동을 하는 척하며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려봤다. H 뒤에 있는 외국인 남녀에게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자의 말처럼 프랑스어를 못 알아들어 내용을 모르니 그냥 조금 큰 음악 소리 정도로 여기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에게 아예 관심이 없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카페에서 저 정도의 소리가 방해가 된다고 여기지 않는 것인지. 아무튼 누구도 그 남녀를 보는 사람은 없었다. H도 본인이 프랑스어를 알아들어서 더 예민하게 받아들인 것으로 생각하고 다시 번역에 집중을 해보았다.


일곱 장 째의 마지막 단락을 읽고 있는데 그 순간 우는 것인지 웃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노트북으로 살펴보니 여자의 어깨가 들썩이는 것 같았다. 남자는 여전히 눈을 내리깔고만 있었다. 아까보다 줄어들기는 했지만 귀를 기울이면 다 들리는 소리로 여자는 말을 하고 있었다.


“나 혼자만 이러니까 내가 정말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다. 어떻게 너는 아무렇지도 않을 수가 있니?” 그리고는 다시 표정을 보지 않고서는 정확히 파악하기 힘든 우는 것인지 웃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렸다. 다만 여자의 어깨가 들썩인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이쯤 되자 H는 여자의 표정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저기요. 조용히 좀 해주세요.”라고 프랑스어로 말하고 싶었다.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다. 지금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 옆으로 가서 저 말을 하면 이 카페에 프랑스어를 알아듣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림과 동시에 여자의 표정을 보고 그녀가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끝내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그날 근무시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일곱 장 두 번째 단락까지만 번역을 하고 카페를 나왔다.


3시 이전에, 10장을 다 번역하기 전에 카페에서 나온 것은 카페에서 번역을 시작한 지 4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만큼 그 프랑스 여성의 목소리가 H의 귀에 거슬렸던 것일까. 아니면 그 여자가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알 수 없음이 불편했던 것일까. 아니면 “어차피 우리 신경도 안 써.” 이 말이 어떤 기억을 끄집어낸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여자가 앞에서 웃던 울던 남자는 차분하게 눈을 내리깔고 있는 그 모습이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 것일까.


카페에서 나와 바로 집으로 가기에는 시간이 어중간해 M대학교로 갔다. 거기서 3시까지 앉아 있다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까지는 두 사람이 아니 그 여자가 큰 소리로 말을 해서 자신이 집중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집에 와서 남은 작업을 하기 위해 노트북을 켜고 책상에 앉았다. 집에서 작업을 하는 것도 4년 만에 처음이었다. 역시나 너무 조용해서 집중이 안 되었다. 인터넷 음원 사이트로 들어가 재즈 장르의 1위부터 100위까지를 선택하여 재생했다. 음악 소리만으로는 부족했다. 티비를 켰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대화 소리와 내레이션 소리가 적절히 섞인 것이 적당할 것 같아 인간극장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멈췄다. 하지만 카페에서 나는 소음과는 달랐다. 의자를 꺼내는 소리도 가끔씩 직원이 올라와 빈 컵과 접시들을 치우는 소리도 1층에서 “안녕하세요~oooo입니다.”하는 소리도 없었다. 음악을 연주곡으로 바꿔보고 티비 채널을 예능 프로그램이나 영화로 바꿔 봐도 마찬가지였다.


할 수 없이 그날 작업은 내일로 미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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