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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Nov 07. 2023

편애하는 나

가르치다 보니 나를 알게 되었다

모든 사람은 어느 정도는 자신의 생각에 따라, 어느 정도는 타인들의 생각에 따라 살아가고 행동한다. 어느 정도로 자신의 생각에 따라 살고 타인의 생각에 따라 사느냐가 사람들을 구별 짓는 주된 차이점 중 하나다. - 레프 톨스토이, [부활]



“가르쳐야 배운다.”


이 주제로 꽤나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쏟아낼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그러지 않는 것을 보니 나는 가르치고 있지 않아 배우고 있는 것이 없거나, 가르쳐야 배운다는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이었거나, 가르쳐서 배우고는 있는데 그걸 글로 풀어낼 여력이 없거나.


최근에는 “가르쳐야 배운다” 까지는 아니고 “가르치다 보니 나를 알게 되었다.” 정도에 부합하는 에피소드들이 계속 생기고 있다.


1:1 수업만 하다가 1:다 수업으로 확장한 지 어느덧 9개월 차. 사실 불과 2주 전(?)까지만 해도 아 더 이상은 못해먹겠다, 이번 중간고사만 끝나면 센터장에게 “올해 12월까지만 그게 너무 촉박하다면 내년 2월까지만 나오겠습니다.”라고 말하려 했었다. 그러다 약 일주일 전, 내년 2월에 호주 가는 뱅기표를 지른 뒤, 그때까지는 또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것 같고 호주 다녀오면 또 이래저래 버텨지겠지 싶어 아직 말은 꺼내지는 않고 있다.


1:1 수업에서의 내 모습과 1:다 수업에서의 내 모습이 다르다는 것을 요즘 들어 부쩍 알게 되었다.


나는 일을 할 때만큼은 꽤나 객관적이고 일관적인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으며, MBTI 유형에서도 T와 F의 점수가 거의 비슷하게 나오는 부분에 대해 일할 때나 공적인 부분에서는 T, 개인적인 부분에서는 F로 하이브리드가 가능한 유형이라고 평가해 왔지만, 1:다 수업에서 내가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지극히 주관적이고 비일관적이며 감정적이기까지 한 것 같다.


신 씨 성을 가진 중학교 2학년 남학생 2명이 있다. 두 학생 모두 월수금 7시에 오는 학생들이다. 그 시간대는 비교적 학생들이 적은 시간대여서 좀 차분히 학생들을 봐줄 수가 있는 편이다. 두 학생의 성적대는 거의 극과 극 수준으로 한 명은 기본적으로 수학적 머리가 있는 그래서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이해하다 보니 소위 말해서 가르치는 재미와 보람을 쉽게 찾을 수 있는 학생이고, 한 명은 기본적으로 매우 느리고 긴장도가 높은 학생으로 기초적인 수준의 문제는 잘 따라오지만 조금이라도 응용되면 어려워하는 학생이다.


첫 번째 학생(A)은 나처럼 3월부터 센터에 나오기 시작했고, 두 번째 학생(B)은 예전부터 다니던 학생이다. 그런데 이 두 학생의 수업에 임하는 태도가 너무나 다르다 보니 나도 모르게 편애가 시작되었다.


A는 시간을 맞춰서 오지도 않고, 숙제를 제대로 해오지도 않고, 수업에 임하는 태도도 내 기준에서는 너무 게으르다. 그리고 머리가 좋다 보니 어른과 맞먹으려는 태도로 인해 나의 말에 한 번이라도 대꾸를 하지 않은 적이 없을 정도이다. 초반에는 어느 정도 티키타카가 되는 면이 나로서도 재밌기도 하여 다른 학생들에 비해 말장난을 좀 많이 걸기도 했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부분들을 지키지 않는 시간들이 쌓이다 보니 어느덧 내가 A를 대하는 태도는 어떨 때는 내가 봐도 좀 심했다 싶을 때가 종종 있다.  


한편 B는 시간도 잘 지키고 숙제도 거의 대부분 해오며, 플래너 작성도 한결같이 일관되게 하고, 무엇보다 수업 시간에 긍정적인 태도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느껴진다. 당연히 나의 말에 거의 수긍을 하며 내가 하라는 대로 수행을 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나는 B에게는 어느덧 칭찬을 남발하고 있는 것이었다.


A는 수준이 높은 문제를 틀려도 “그것도 몰라?”라는 식의 피드백을, B는 기초 문제를 맞혀도 “우쭈쭈, 잘했어!”를 연발하는 나.


그런 결과일까 이번 중간고사에서 A는 1학기보다 성적이 하락해서 80점대가 나왔으며, B는 1학기보다 성적이 대폭 올라 50점대가 나왔다.


나는 내 생각대로 내 의지대로 내 느낌대로 내 다짐대로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너무나도 남의 생각과 행동과 태도에 많이 영향을 받는 사람이었으며, 나와 동등한 입장의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나의 주 고객인 아직은 미성숙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도 그런 나의 치부를 드러내고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특히 1:1 수업을 할 때는 그러한 나의 비일관적인 모습을 나와 학생 1인만 인식하거나 느꼈다면 1:다 수업에서는 나와 상대 학생을 제외한 적어도 1인 이상이 그런 부분을 알아차리거나 감지한 것일 테니 이를 어찌해야 할까.


내가 센터장에게 “그만 나오겠다.”라고 말해야겠다고 느낀 것은 아마도 나 스스로 이런 나의 부족함을 알았기에 그것이 정말 낱낱이 드러나기 전에 내 선에서 먼저 나를 보호하기 위함을 아니었을까.


마치 오래된 연인 사이에서 식어버린 상대방의 마음을 감지하면 상대가 먼저 헤어지자고 하기 전에 내가 먼저 그만하자고 말해버리는 심리처럼.


일주일에 3번, 3시부터 9시. 왕복 80km. 주차전쟁. 초5부터 예비고 1까지. 남학생에서 여학생까지. 연산 실수를 반복하는 아이부터 나보다 앞서가는 아이까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스펙트럼을 넘어선 것일까 싶기도 하다.


감당할 수 없을 때는 어떡해야 하는 것일까?


however,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이 과연 이것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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