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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Mar 02. 2024

수평적 관계

내 인생의 그녀들


나는 지금 부산에 와 있다. 부모님이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부산에 내려오신 지 딱 10년. 그 10년 동안 나는 부산을 몇 번이나 왔을까? 1년에 평균 3번이라고 쳐도 30번이겠구나.      


부산에 친정에 오면 꼭 하는 일이 두 가지가 있다. 아직도 종이신문을 보시는 부모님 덕분에 거실 테이블에는 항상 신문이 놓여있는데 그 신문을 보는 것, 그리고 책장을 보며 새로운 책을 찾아내고 내가 읽을만한 책인지 탐색해 보는 것. 두 가지 모두 읽는 것과 관련된 행위이다. 나의 읽기에 대한 욕구 및 능력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임을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되는 지점이다.       


내가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딱 지금의 딸 나이였을 때는 매일 신문을 보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에만 해도 지금처럼 영상이 즐비한 시대도 아니었을뿐더러, 집에서 항상 신문을 보거나 책을 읽고 있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나도 자연스럽게 시간이 나면 읽을거리를 찾았던 것 같다.      


또 돌이켜보면 당시 나는 꽤나 학업적인 성취가 높았던 학생이었기에 국어(논술) 공부의 일환으로 신문의 사설을 매일 읽고 그중에 한편을 스크랩하며 관련 지식을 더 찾아 정리하는 등의 작업을 꾸준히 하기도 했었다.      

그때의 그 습관은 아직도 그리고 앞으로도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될 것이다.      


그렇게 부모님 집 거실 테이블에 놓인 신문을 읽다 보면 한 두 가지 내 마음에 쏙 드는 글을 발견하게 된다.      

오늘 발견한 글은 바로 사회면, 아무튼 주말에 실린 <좋은 동료에 대한 고찰>이라는 글.     


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4/03/02/JAIIH6B56JFJDPIARY7NJHDZJY



작년 12월에 나는 중고거래 어플을 통해 동네의 81년생 친구들 모임에 들어가게 되었고, 아직까지도 그 모임에 속해 있으며, 60여 명 되는 구성원들 사이에서 그래도 꽤나 존재감 있는 인물을 맡고 있다.      


그 모임은 말 그대로 지역과 나이만으로 구성원을 받고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성별이 섞여있고, 기혼, 미혼, 돌싱도 섞여 있으며, 자녀들의 나이도 다 큰 성인에서부터 아직 갓난쟁이까지 천차만별이다.      


내가 처음 이 모임에 대해 남편에게 말했을 때 남편의 제일 첫 질문은 “다 애엄마(여자)들이야?”였고, “아니, 미혼 기혼 돌싱 다 섞여있어.”라고 했더니 돌아오는 말이 “그건 좀 위험한 거 아니야?” 여서 거기서 대화는 끝이 나버렸다.      


남편을 디스 하려고 이 대화를 공개하는 것이 아니고, 아마 대부분의 남편 또는 아내들의 반응일 거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내가 들어 있는 모임에서도 남편(또는 아내)이 반대해서 모임을 나가거나 싫어해서 회사에서만 채팅을 하는 친구들도 꽤 있다.     


그런데 나는 이럴 때 뭐랄까 좀 불편함을 느낀다.      


사람을 성별, 결혼유무, 나이, 직업 등으로 분류하고 자기만의 잣대로 평가해 버리는 상황. 실제 이 모임의 구성원들은 나이는 모두 동일하지만 성별과 결혼유무 못지않게 직업도 매우 다양하다. 남자들의 경우, 소위 말하는 화이트칼라부터 자영업자, 프리랜서는 그나마 안정적인 직군이고, 음식점 알바와 배달을 병행하는 경우나 일용직 노동자 수준의 몸을 쓰는 일을 하는 경우도 있다. 여자들의 경우, 역시 전업주부, 알바생, 프리랜서, 회사원 등 다양하다.      


하지만 나는 가끔 내가 생각해도 신기할 만큼 다양한 일을 하는 친구들과도 스스럼없이 잘 지내는 편이다. 실제로 이 모임의 초기 멤버들 중에는 꼭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내가 추측하건대 수준(?)이 좀 맞지 않다고 느껴 탈퇴한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나와 따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내가 아직도 그 모임에 속해있고 심지어 잘 지내고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래하거나 부러워하기도 한다.      


그저 ‘사람’ 대 ‘사람’으로 타인을 대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거나 대단한 일인건지 나로서는 좀 안타까울 따름이다.      


15년 전, 강남의 한 복지관에서 일했던 적이 있다. Y대 석사학위를 소지한 1급 사회복지사였던 나는 그 복지관에서 어떤 한 사람과 굉장히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었고, 역시나 당시에 다른 직원들은 매우 의아해하고 신기해하고 부러워도 했었다.      


그녀는 나보다 30년 연상의 복지관을 청소해 주며 홀로 외동아들을 키우던 여성이었다. 그녀는 복지관을 층마다 청소하다가 내가 있는 층에 올 때면 살짝 내 자리로 와서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내가 다른 층에 갔다가 그녀를 발견하면 “주임님~” 하며 먼저 아는 체를 하고 하이파이브를 주고받기도 했었다. 또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만나면 그녀의 아들에 대한 고민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말 그대로 나이와 직업을 초월한 우정을 키워갔었다. (당시에 나는 미혼이었지만 대학원에서 청소년 복지를 전공했기에 사춘기 아들을 둔 싱글맘과 대화를 나누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나도 그녀도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에 의해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그냥 그 사람 자체로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그녀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것 못지않게 반대로 그녀가 나에게 먼저 아는 체를 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기에. (물론 우리 사이에서 매우 부드러운 쿠션 역할을 해주었던 수평적 인간관계의 전형인 또 다른 그녀가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아무튼, 신문을 통해서지만 ‘사람’ 대 ‘사람’으로 타인을 대하는 오지윤 님을 알게 되어 반갑고, 오랜만에 나의 예전 직장 동료였던 김순복 주임님이 행복하고 건강하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해 본다. (용띠였던 그녀에게 당시 내가 좋아했던 지드래곤을 본따 순드래곤이라는 별명을 붙여줬었고 그 별명을 스스로 너무 좋아했던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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