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거울
나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난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양치질과 세수를 하고 로션을 바르고 옷을 입고 5시 30분 첫 차를 탄다. 6시 20분쯤 버스에서 내려 20분 정도를 걸어가면 나의 일터에 도착한다.
1층 여자화장실의 창고에 걸려있는 조끼를 입고 도구를 챙겨 맨 위 층부터 일을 시작한다. 지하 2층부터 지상 5층. 총 7개 층의 화장실 9개와 계단, 엘리베이터, 바닥 등을 청소하는 것이 나의 일이다.
내가 일하는 곳은 서울의 한 대학교의 새로 지은 건물이다. 올해 2월 말에 공사가 완료된 이 건물이 생기기 전에는 옆에 있는 4층짜리 건물을 담당했었다. 그 건물은 규모도 훨씬 작고 화장실도 5개뿐이어서 일하기가 더 수월했었다. 그러나 작은 곳도 놓치지 않고 항상 깨끗하게 유지하는 나의 성실함을 높이 산 교직원이 새로운 건물로 나를 추천했고, 급여는 조금 올라갔지만 일은 배 이상으로 힘들어졌다.
새 건물을 맡고 처음 2주 정도는 잠깐 앉아서 쉬거나 물을 마실 틈도 없이 지하 2층에서 지상 5층을 하루 종일 오르락내리락했었다. 하지만 3주 차부터는 어느 화장실이 이용 학생이 가장 많은 지 어느 요일 어느 시간대에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가장 적은 지 등을 파악하여 일의 동선을 짤 수 있었고 일도 조금은 수월해졌다.
역시 제일 빨리 더러워지는 곳은 1층 여자화장실이다. 새로 생긴 건물이라 화장실도 새것으로 학생들에게 소문이 나서인지 월화수목 오전 10시~오후 5시 사이는 한 시간에 한 번씩 휴지통을 비우고 변기와 세면대를 닦아야 했다. 반면 사람들이 제일 적은 화장실은 5층 여자화장실이다. 5층은 강의실은 2개뿐이고 학과 사무실과 교수실로 구성되어 있다. 총 5명의 교수들 중 여자 교수는 1명뿐이고 학과 사무실에 근무하는 교직원은 남자 2명, 여자 1명이다.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나 학과 사무실에서 근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은 교수나 교직원과 화장실에서 마주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 1층의 화장실을 이용하곤 했다. 그러니 5층 여자 화장실을 실질적으로 이용하는 사람은 여자 교수 1명과 여자 교직원 1명, 2명이 전부였다. 이용인원이 적어서 조용한 5층 여자화장실은 나의 휴게실이기도 했다.
나는 16학번 신입생이다. 하지만 삼수를 해서 나이는 22살이다. 3년 내내 대학입시를 준비했던 것은 아니고 집에서 글을 썼다. 소설.
고등학교 3학년 가을, 아무 기대 없이 응모했던 한 문학대전에서 나의 소설이 가작으로 당선되며 나는 하루아침에 거의 최연소 작가가 되어버렸다. 부모님은 마치 노벨문학상이라도 탄 것처럼 기뻐하며 여기저기 자랑을 했고, 국어를 가르치시던 담임도 자기 주변에는 아직도 신춘문예에 매년 도전하지만 매번 낙방하는 친구들이 수두룩하다며 나를 인정해 주셨다.
당선되고 한 동안은 인터넷에도 기사가 오르내리며 나름의 유명세를 치러 내 스스로도 19살의 나이에 이룬 성과에 대해 꽤나 자신감을 가지며 틀에 박힌 대학 진학보다는 나만의 길을 가야겠다는 생각에 수능 문제를 그야말로 구경만 했었다. 하지만 지방의 한 문학대전에 대상도 아니고 가작으로 당선된 것은 아무리 어린 나이여도 훗날 프로필에 한 줄 적을 수 있을까 말까 한 내용일 뿐 그 어떤 것도 보장해 줄 수 있는 안전장치가 아니었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1년 반 동안 방 안에 틀어박혀 키보드를 엄청나게 두들겨대며 나름대로 작품들을 만들어 내 각종 문학대전과 신춘문예에 응모했지만 번번이 낙방했다.
그전에는 몰랐는데 본격적으로 찾아보니 1년 동안 응모할 수 있는 기회는 생각보다 많았다. 컴퓨터 바탕화면에 마감일이 가까운 순서대로 리스트 업을 해놓고 마치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 날짜에 맞춰 소설을 만들어냈다. 기대감을 가지고 열중했다가 실망하기를 30번 정도 반복하고 난 어느 날, 계속 이렇게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무리 문장력이 좋고 표현이 신선하다고 해도 길지 않은 나만의 세계에 갇혀 글을 지어내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글이라는 것은 구절이나 문장으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글 전체를 아우르고 보듬으며 단어 하나하나에 깊이를 더하는 작가의 풍부한 경험과 진지한 안목이 있어야 비로소 제대로 완성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글을 쓰려면 그 나이 대에 보편적으로 할 수 있는 경험들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6개월 동안 다시 수능을 준비했고 글을 만들어내며 동시에 이것저것 많이 읽었던 덕분인지 예상보다 높은 점수를 얻어 고등학교 때 반에서 쉬는 시간에도 공부만 했던 친구들이 갔던 대학의 인문계열에 입학하게 되었다. 3년 만에 세상으로 나온 나는 대학생활을 하며 나이에 맞는 활력을 찾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