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프 머더
“R16 코리아 2015!! 솔로 배틀 비보잉 부분!! 올해의 승자는…….”
뒤이어 나온 MC의 말을 들은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항상 여기까지다. MC의 말을 떠올리려 기억을 더듬으면 더듬을수록 머릿속 생각뿐 아니라 손가락 하나하나, 발가락 하나하나의 감각까지 되살아나며 이내 눈을 뜨기가 싫어진다. 그래서 이미 꿈이었던 것을, 꿈에서 깬 것을 알면서도 눈을 뜨지 않는다. 그렇게 몇 시간이고 계속 눈을 감고 있다가 다시 설핏 잠이 들고 또다시 꿈을 꾸고 어김없이 똑같은 장면에서 깬다.
그냥 이대로 계속 눈을 감고 있으면 언젠가는 스스로 눈을 뜨지 못하고 힘든 꿈을 꿀 수도 없는 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눈을 뜨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엄마와 레옹.
엄마는 투잡이다. 새벽 4시부터 12시까지는 환경미화원으로, 오후 4시부터 밤 12시까지는 주방 이모로. 엄마가 그가 누워 있는 방에 들어와 얼굴을 만지고 이야기를 하고 입으로 무언가를 넣어주는 시간은 매일 낮 12시 30분부터 1시 30분. 하루에 1시간. 나머지 시간은 잠을 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올해 52세인 그녀가 하루에 2가지 일을 해낼 수 없다.
그는 자기와 보내는 1시간마저도 30분으로 줄이고 엄마가 30분이라도 더 자기를 바랐지만 엄마는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래서 합의한 시간이 하루에 1시간이다. 그는 엄마가 오는 것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가늠하곤 한다. 하지만 ‘또 하루가 지나갔구나.’를 느끼는 정도지 날짜를 따져보지는 않는다. 또 자신의 얼굴을 만지는 엄마 손의 온도나 엄마의 옷차림으로 계절을 유추할 뿐 지금이 몇 월 며칠인지 자신이 며칠째 누워있는 것인지는 궁금하지 않다.
2015년 9월의 어느 토요일 오후. 그는 서울의 큰 체육관에 있었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비보이들과 스트릿 컬처를 즐기는 많은 이들 사이에서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플래시를 받으며. 어린 시절부터 그는 항상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7살 때 유치원 학예발표회에서 친구들과 친구들의 부모님, 유치원 선생님들 앞에서 바퀴 달린 운동화를 신고 춤을 췄을 때부터. 초등학교에서도 쉬는 시간에 교실 뒤나 복도에서 그가 춤을 추면 주변에는 항상 친구들과 형, 누나들이 잔뜩 몰려와 그의 동작 하나하나에 환호를 보냈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댄스동아리 활동을 하며 본격적으로 춤을 익혔고, 2학년 때부터는 형들을 따라다니며 동대문이나 영등포 쇼핑몰 등에서 열리는 작은 규모의 댄스대회에 출전했다.
무대를 경험하고 춤의 다양한 분야를 접하게 되면서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부터 비보이 팀에 들어가 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7년의 비보이 생활.
하지만 지금 그는 하루 중 23시간을 홀로 침대에 누워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