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프 머더
엄마가 건네준 그 사진을 보니 초등학교 5학년 때 운동장에서 혼자 느꼈던 그때와 똑같은 감정이 밀려왔다. 아주 잠깐이지만 아빠가 찾아왔나 싶었다. 하지만 이내 중학교 3학년 때 레옹에게 그 사진을 줬던 게 생각났다. 레옹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게 싫었지만 자신의 몸짓을 자신의 자유로움을 기억하는 레옹을 보고 싶기도 했다. 그날 이후, 레옹만은 집으로 들어와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아빠와 헤어지고 5년 만에 사진과 편지를 받은 후로 또 5년이 지나기를 기다리며 매일 춤을 췄었다. 그렇게 17살이 되었을 때 그는 자고 일어나 보니 스타가 되어 있었다. 갑자기 달라진 생활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혹시 집이나 학교나 아니면 연습실로 오는 우편물 중에 아빠의 편지가 있을까 봐 항상 체크했었다. 그렇게 1년 넘게 기다리던 중에 솔로 활동을 제안받았을 때 떠오른 생각은 ‘돈을 더 많이 벌면 엄마가 좀 편해질 수 있겠다’라는 것과 솔로 활동을 하면 ‘아빠가 나를 더 쉽게 알아볼 수 있겠다’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또 5년이 지나는 동안, 그가 한국 무대뿐 아니라 세계 무대까지 장악하여 유명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빠의 편지는 오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는 일을 줄이지도 않은 채 그가 벌어오는 돈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그즈음 날아온 입영통지서는 두 사람을 위해서 한 가지만 생각하며 앞만 보고 달려온 그의 인생을 부질없게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군대에 가기는 싫고 그렇다고 춤 말고 다른 건 할 줄 몰랐기에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계속 공연을 했지만 확실히 이전과는 달랐다.
중고등학교 때 형들과 어울려 다닐 때, 공연이나 대회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술자리가 펼쳐졌었다. 자신과 나이가 같은 다른 친구들은 형들이 주는 술을 거부하면 안 된다는 핑계를 대며 술을 입에 댔었다. 그러다 다음 날 술병이 나서 연습실에 늦게 오거나 못 나와 형들에게 혼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는 한 번도 술을 입에 댄 적이 없었다. 그래서 전날 저녁에는 형들에게 매정한 놈이라는 욕을 들을지언정 다음 날에는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는 칭찬을 배로 받곤 했었다.
처음 술을 마신 날은 집 우편함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혹시 아빠의 편지인가 싶어 급히 꺼내봤는데 보내는 사람에 국방부가 찍혀 있던 그날이다. 입대를 연기할 수 있다는 것까지는 생각이 못 미친 채 입영통지서에 찍혀 있는 날짜만 하염없이 되뇌며 길을 걷다가 다리가 아파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는데 창가에 어떤 여자가 혼자 앉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를 알아봐서일까 아니면 그냥 그랬을까 그녀가 살짝 미소를 지었고, 그는 어느새 그녀 옆자리에 앉았다. 함께 술을 마셨고 다음날 아침까지 함께 있었다. 난생처음이었다. 레옹 같은 모범생은 물론이고 춤추는 친구들은 이미 진즉에 경험했을 첫술과 첫 여자.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부터는 쉬웠다. 그렇게 알게 된 술과 여자는 그의 몸을 조금씩 변화시켰다. 처음에는 그도 잘 느끼지 못했다. 워낙 오랜 세월 몸에 배어 있던 동작들이라 음악만 있으면 생각을 거치기도 전에 먼저 튀어나왔었는데, 언젠가부터 동작과 동작을 미리 생각해 보게 되고 그러다 다음 동작이 뭐였는지 생각이 잘 안 나기도 하고 그랬다. 하지만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사고가 나기 6개월 전부터 왼쪽 손목이 아팠지만 참아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