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단풍
"아빠, 이번에는 우리 어디로 가?"
"속리산에 갈 거야. 단풍이 예쁜 곳으로 유명해."
어린 시절, 가을이 무르익을 무렵이면 부모님은 속리산이며 내장산이며 전국에 단풍 명소 곳곳을 나와 동생을 데리고 다니셨다.
내가 살았던 시골은 가을철 농번기를 맞을 때면 가정실습이라는 게 있었고 주말이 따로 없이 교대근무를 하시던 아버지는 항상 그때에 맞춰 휴가를 내어 우리 가족은 가을이면 어김없이 가을 여행을 떠났다.
숲을 거닐며 머리 위로 올려다본 진한 빛깔의 빨갛고 노랗고 주황 빛깔의 단풍들, 조금 걷다 다리가 아프다 툴툴거리는 나와 동생의 투정에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다보는 고운 색깔만 풀어놓은 듯 한 폭의 그림 같았던 산.
어린 시절 가을의 기억은 젊었던 엄마 아빠와 어렸던 나와 동생의 시간, 단풍이 지는 걱정보다는 예쁘게 피어있던, 영글어가는 풍성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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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우리 오늘은 어디가?"
"오늘은 노란 은행나무 구경하러 갈 거야."
어느덧 한 아이의 엄마가 된 나는 지는 가을이 아쉬워 아직 네 살밖에 안된 아이의 첫가을부터 두 번째 가을, 세 번째 가을 매 순간이 새롭다는 의미부여를 하며 주말 아침이면 단풍구경에 바지런을 떨게 되었다.
그때의 나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사춘기가 되고 점점 커갈수록 그 시절의 가을여행은 어느덧 추억이 되어버렸다.
온전히 그 시간에 담겨 있을 때는 몰랐던 것들.
시간이 흐르고 한 아이를 키우다 보니 그 당시 주야 근무로 피곤한 몸을 이끌고도 부지런히 우리를 데리고 단풍구경을 가셨던 그 마음을… 이제는 알 거 같다.
아이를 이끌며 마주한 가을의 문턱에서,
고운 단풍을 눈에 담고 바스락거리는 낙엽도 밟아보고 제법 차가워진 바람도 느껴보고 엄마 아빠 품에서 까르륵 웃던 가을 어느 날, 그날의 기억이 아이의 기억에 따뜻함으로 남았길 바라는 마음.
기억에 정서가 입혀진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아름다운 계절 그 순간순간을 같이 느끼고 함께 쌓아가며 훗날 함께하지 못하는 그 순간에도 추억하며 살아갈 힘이 되어주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
내 어린 시절 부모님과의 추억이 가득한 가을과 나의 아이와 함께 쌓아갈 가을의 색채가 더해져 매해 다가오는 가을은 더 진하고 찬란하게 다가올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