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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눅진한 브라우니 Sep 25. 2023

추억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로 시작하는 노래가 있고 오후만 있던 일요일...로 시작하는 노래도 있다.

일요일 오후 서너 시 즈음이면 집 뒤에 작은 교회가 있어서 여러 소리가 들리곤 한다. 아이들이 오후 예배를 마치고 이야기하며 걸어가는 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이 동네에 살고 있지 않은 아이들이겠지.

작은 교회는 코로나 이후 전도에 힘을 들이지 않는 듯했다.

일주일에 한 번은 동네 어귀에서 커피나 차를 돌리거나 작은 휴지를 주면서 교회 나오라고 웃는 낯으로 말을 거는 중년의 집사님 권사님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저 교회는 가족 같은 사람들이 똘똘 뭉쳐서 매주를, 매년을 길게 이어가는 것 같다. 교회 앞에 화분들이 놓여 있어서 동네를 걷다가 가만히 꽃의 이름이 궁금해서 바라보곤 한다.


내가 어렸을 때, 초등학교 때도 일요일은 오전에 예배를 드리고 집에 와서 좀 있다가 오후에도 가서 예배를 드렸다.

자석에 이끌리듯 그렇게 했다. 특별히 재미가 있거나 좋아하는 친구가 있어서 그랬던 건 아니었다. 그냥 그래야 하는 것처럼 열심히 오전과 오후에 교회에 갔다. 그리고 서너 시가 되면 석양을 등에 지고 집으로 걸어왔는데 마음이 울적했다. 내일부터 학교에 가야 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잠깐의 이별이 서운해서였을까?

딱히 좋아하는 선생님도, 친구들도 기억에 없는데 일요일 하루를 온전히 보냈던 곳을 일주일 뒤에 와야 한다는 것이 서글펐을까?


교회의 기사집사님 아들이 있었다.

교회차를 운전하는 집사님은 성이 김 씨였다. 그 아이도 김 씨였다.

이름이 영*이었다. 나도 김영#였다. 이름의 첫 글자와 두 번째 글자가 같아서 친인척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아이와 1학년때 같은 반이었고, 6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1학년은 어영부영 기억에 많이 남지 않은 시간들이었고 6학년은 몇몇 기억이 뇌리에 짱 박혀 있다.

그 아이는 막내였다.

위로 형이 한 명, 누나가 한 명 있었다. 형은 제임스 딘, 혹은 배우 강석현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 강석현이 누구냐면 신성일 아들.

누나는 앞머리를 우산처럼 구부리고 뒷머리는 좀 남긴 채 일본의 무사처럼 중간머리를 돌돌 말리는 철사끈으로 높이 쳐들어 묶곤 했다. 누나도 반항과 우울함의 분위기를 묘하게 풍기는 날티 나는 사람이었다.

김영*은 1학년땐 순진하게 잘 웃었는데 6학년이 되니 형과 누나처럼 묘한 분위기를 풍기기 시작했다.

키가 커서 항상 맨 뒤에 남자애들 무리에 섞여서는 공부보다 사춘기 소년들끼리 속닥대는 걸 즐기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아이를 좋아하는 여자애들이 꽤 있었다.

형처럼 강석현 같은 분위기가 나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경상도 사투리를 하는, 이목구비가 큼지막하고 풍모가 좋은 (나훈아처럼) 스타일이었고 그 아이의 엄마는 제인버킨처럼 쉬크함이 느껴졌다.

나와 그 아이는 같은 교회를 오래도록 다녀서 각자의 집 사정을 대충은 알았다. 그다지 알고 싶지 않은 것들까지.

그렇게 서로 대충 알다 보니 그 아이가 아무리 여자애들한테 인기가 많아도 난 별 생각이 없었다.

어느 날 그땐 주기적으로 짝을 바꿔서 앉았는데 그 아이와 내가 짝이 되었다. 반곱슬이라 붕 뜬 쇼트커트에 허여멀건하고 비쩍 마른 내가 그 아이와 짝이 되었는데, 그렇게 짝이 되어서였는지 그 아이가 나한테 좀 친절했다. 나도 친절했었나? 하여튼 그렇게 짝꿍이 되어 하루를 보내고 그다음 날, 내가 언니의 핑크색 스커트와 하얀 블라우스를 입고 붕 뜬 머리를 하고 학교에 갔는데...


수업을 마치고 청소하느라 바깥에 나갔다 왔는데 어떤 아이가 나에게 귓속말을 했다.

김영*을 좋아하는 여자애가 네가 김영*을 좋아해서 멋 부리고 왔다고 난리를 쳤다고.

그러면서 그날 일기장 검사를 하는 날이라 일기장을 가져갔는데

열쇠 달린 내 일기장을 책상 서랍에서 꺼내서는 이걸 봐야겠다고 했다나 어쨌다나...  

???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난 별스럽지가 않았다.

정말 그랬다.

아.. 핑크색 스커트와 하얀 블라우스를 괜히 입고 왔나?

머리는 붕떴는데?

아.. 나를 그렇게 견제하는 아이가 있었구나 싶었다.

그런데 정말 난 그때 김영*을 전혀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김영*은 그랬을지 몰라도. ㅋㅋㅋ

그 아이는 어디서 살고 있을까?

아이 낳고 잘 살고 있겠지?

이름이 하도 흔해서 찾기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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