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으면 문득 그리운 날의 기억 아직까지도 마음이 저려 오는 건 그건 아마 사람도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워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 아마도. 봄날은 가네, 무심히 도.. 꽃잎은 지네. 바람에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들 가만히 눈 감으면 잡힐 것 같은 아련히 마음 아픈 추억 같은 것들 봄은 또 오고 꽃은 피고 또 지고 피고 아름다워서 너무나 슬픈 이야기.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가 영화의 마지막에 흐른다. 자막이 올라가도 한동안 자리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는 영화, 봄날은 간다를 또 봤다. (하릴없이 채널을 돌리다 보니 마침 하고 있어서) 사랑도 사계절 같다. 봄이 올 무렵, 아직 추워서 터틀넥을 입고 목도리를 하고 있을 때 일 관계로 만난 두 사람. 미래가 막막해 보이는 남자와 마음이 헛헛한 여자. 아직 이십 대 후반이었을까? 아니면 삼십 대 초반 즈음 되었을까?
요즘과 참 많이 달라 보였다. 모르겠다. 내가 이만큼 살아오면서 의심이 많아진 탓일지도. 사랑의 에너지가 존재할 때는 그저 보이는 것에 따라 움직여지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 마음의 빈 구석을 무언가로 채우고 싶은 욕망.. 여자는 사랑이라 말하긴 뭐 한, 그저 채우고픈 욕망을 따라간다. 남자는 여자가 그러자고 하면 열에 여덟은 동조하는 것 같다. 만약에 남자와 여자가 바뀌었다면 어땠을까? 남자가 라면 먹고 갈래요? 그랬다면 여자가 따라갔을까?열에 여덟은 마다했을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인연. 남자는 사랑이 서서히 타오르기시작한다. 하얀 뭉게구름 위를 걷고 뛴다. 힘든 줄도 모르고. 그들이 먹는 것은 주로 라면이다. 라면 먹고 갈래요? 이 유명한 대사 이후 신라면 두 개를 끓여 먹었고중간 즈음에 라면 어떻게 끓일까?라는 남자의 물음에 떡라면이라고 여자가 대답한다. 김치도 넣으라고 한다. 또 한 번은 둘이 다투다가 여자가 차에서 내리며 라면이나 끓여놔~~라고 했는데 마음이 상한 남자가 대꾸한다. 내가 라면으로 보이냐?? 말조심해라.
여자는 남자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첫눈에 반한 존재는 아니었다. 우연하고 무심한 첫 만남이었다. 헛헛한 바람이 부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그냥 던진 한마디 말로 시작된 관계.. 인스턴트 라면 같은. 무던하고 허우대 멀쩡한 남자가 싫지도 않았고. 그렇게 둘은 봄부터 여름까지 꽁냥꽁냥 서서히 타오르는 모닥불처럼 사랑한다. 정점을 지난 불꽃은 잦아들기 시작한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April come she will의 가사 같다. 여자는 남자가 답답하다.
앞으로 이 일이 끝나면 뭐 할 거야? 글쎄... 남자의 대책 없음이 갑갑해지기 시작한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3년여 쯤 될까? 오래된 연인들은 어떻게 오래 만날 수 있을까? 짧게는 6개월, 길게는 3년 여가 지나면 맞닥뜨리는 권태기를 넘어서면 오래오래 같이 지낼 수 있을까? 여자는 남자에게 함부로 한다. 익숙함에서 비롯된 편안함이 도가 지나칠 때가 있고, 미래에 별 대책이 없어 보이는 것도 걸리고... 이래저래... 여자는 변하기 시작한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남자의 이 말을 오래전엔 공감했다. 하지만 서로에게 끌렸던 화학 성분은 희석될 수밖에 없다. 그걸 넘어서서 감성보다 이성이 앞서기 시작할 때까지 함께 한다면 그때는 도저히 헤어지지 못하는 사이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한번 시작한 사랑은 칼처럼 끊어내기 힘들다. 한 달만 연락하지 말고 지내자.. 그렇게 유예기간을 두지만남자는 견디기 힘들어 여자의 집 앞을 서성인다. 여자는 남자의 온기가 그리워져서 그가 있는 곳까지 달려간다. 그렇게 드문드문 문득 그리워질 때는 어쩔 수 없이 달려가지만이런 지지부진함을 칼처럼 끊어내야겠다고 결심했는지 여자는 이제 그만 헤어지자고 한다. 그렇게 표면적으로는 헤어졌으나 마음까지 끊어내지 못해서 지질하고 미련한 모습을 보인다.
그랬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그 감정의 본질을 돌아볼 수 있게 해 주면서.. 남자는 비로소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시간이 더 지나면 아름다웠던 한때였다고 또 미소를 지을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