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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원 Jan 07. 2018

01. K의 티 타임



10월 29일

바람이 매섭던 가을 끝자락에서




요즘은 매일이 고비야. 그만두고 싶단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을까, 뭘 위해 사는 건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거 있지.


사실 지금 뭘 해도 늦은 나이는 아니잖아. 언니랑 둘이서 '못해먹겠다, 그만두고 사업이나 하자' 이런 얘기만 한다니까. 일이 힘든 건 아닌데, 그냥... 이렇게 시간이 흐르는 게 의미가 없다고 해야 하나. 직업이 안정적인 것도 아니고, 정말 '내 일'인 것도 아니고...

부업으로 뭘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어. 난 앉아서 꼬물딱 거리는 걸 좋아하잖아, 뭘 만들어서 팔아볼까? 재봉틀 같은 걸 사서 말이야.





그래 요즘, 뭘 하고 살아야 할까 한다. 결국엔 이렇게 살 이유가 없는 거야. 사람은 결국 죽고, 남는 것도 없잖아? 의미가 없어. 차라리 아르바이트를 하면 안 되나? 아님 돈을 모아서 뭐라도 해볼까? 사실 사업을 하기에 견뎌야 하는 시간에 대한 인내심이나 할 수 있을 거란 용기가 부족한 건 알아.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생 때 뭐라도 했어야 했어. 그래 지금이 늦은 게 아니란 건 아는데, 시행착오를 겪기에는 좀 애매한 나이잖아. 일을 시작하니까 다른 일을 벌이려면 '포기해야 할 것'이 생겨버렸어. 그게 선택을 어렵게 하는 것 같아.

 

스물다섯.. 지금의 나를 표현하는 단어는 답답하다 아닐까. 대학교 4년이 아깝다는 생각을 진짜 많이 하게 돼. 무슨 목적으로 다녔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그땐 그때그때 살기만 바빴던 것 같아. 미래 생각도 안 하고 말이야. 이젠 대학 4년이 끝나고 취업을 준비하는 게 아니고 대학 4년 동안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사회잖아. 한국은 이상해. 그래서 이민 생각도 드는 거 같아. 언어를 더 열심히 배워볼까 하는 생각을 해. 외국어 배워서 외국 나가서 지리를 가르치는 건 어떨까. 준비가 많이 필요하겠지?





내가 지금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으로 내가 더 좋아하고 관심 있는 걸 하고 싶어. 더 활동적이고 주도적인 일 말이야. 음... 내 장사를 해보고 싶어. 아무거나 소소하게 시작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스토어팜’ 같은 걸로 말이야. 그런 건 누구나, 아무거나 쉽게 시작할 수 있거든. 부업으로 어떨까. 내가 야구 좋아하잖아, 야구팬들이 살 수 있는 실용적인 굿즈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공식 굿즈 진짜 별로거든. 사실 파우치 도안 만들어 놓은 것도 있다. 천 원단 가격까지 알아봤어. 요즘 이것저것 아이템 구상 중이야 그래서.  그리고 최근에 온라인 마케팅 수업을 들었거든. 그거 들으면서 아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놀아났구나 싶더라고. 이제는 내가 거기서 놀아보는 거지.


돈이야 많이 벌면 좋지. 그렇다고 돈을 그렇게 많이 벌고 싶은 것도 아니거든. 그냥 먹고 살 정도만 되면 상관없어. 중학교 때부터 그랬던 거 같아. 엄마가 용돈 주면 그거 하나도 안 쓰고 모아서 그걸로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 케이크 사고 그랬다? 다른 데는 크게 관심이 없었거든. 그다지 욕심이 많은 사람은 아닌 거 같아.


내가 자꾸 일에 회의감을 가지는 건, 일을 하기 싫어서라기 보단 다른 일들이 더 하고 싶어서 인 거 같아. 일 때문에 지금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이 너무 많잖아.

졸업하고 취준 하면서 쉬던 일 년 동안은 왜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싶어. 여유가 너무 없었던 거 같아 그땐. 그땐 그냥 뭐든 얼른 시작해야 했거든.





하고 싶은 건, 여러 가지 배워보고 싶은 건 많아. 코딩도 배우고 싶고, 홈데코같이 손을 쓰는 것도 좋고, 외국어도 배우고, 책도 읽고, 아, 여행도 가고 싶다. 회사가 장애물이지 뭐. 사실 출퇴근 안 하는 날에 취미생활할 수도 있지. 근데 그게 힘들다? 그때 되면 놀아야 되거든. 일했으니까 오늘은 놀아야겠다, 보상심리인가 봐.


책은... 요즘은 자기계발서나 뭘 해라 하는 책들 말고 목적 없는 책을 읽고 싶어 안에 쌓이는 듯한 책 있잖아. 철학책 같은걸 읽어보고 싶단 생각이 들어.

회사 들어가고 매달 한 번 정도씩은 여행을 갔거든? 그런데 여름부터 점점 못 가게 되니까 요즘 여행이 너무 가고 싶다. 그래서 매일 너네한테 어디 갈 사람? 하고 물어보잖아. 돗자리라도 싸고 같이 어디 가까운데라도 갔으면 좋겠다. 스냅사진도 같이 찍고 싶고.


앞으로 살면서는 개인사업이랑, 지리교육 관련 일을 하는 거, 두 개는 꼭 하고 싶어. 진짜 이민 가서 지리를 가르쳐보던가, 아니면 책을 써보고도 싶어. 여행이랑 지리랑 결합된 교양서적 같은 걸로. 카페를 하게 된다면 테마 카페 같은 걸로 차려서 성인 지리교육 클래스 같은걸 열고 싶기도 해. 오늘의 주제는 베를린입니다- 나쁘지 않지? 수능 지리는 너무 딱딱해. 내가 요즘 만들고 있는 게 수능 지리 교과서잖아. 만들면서 느낀다 이건 나랑 안 맞는다고. 지리는 그렇게 딱딱하게 배워야 하는 학문이 아니거든. 지리는 기본적으로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마인드로 이해를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재밌고 편하게 직접 보기도 하면서 배워야 해.


나 하고 싶은 건 진짜 많지? 그런데 아직은 경제력이 없으니까 자본을 더 모아야 하기도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은, 용기가 부족해. 나에게 '해봐'라고 말해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어. 지지대가 없이는 아직 무섭다.





그래도 내가 매일 출퇴근을 한다는 것, 그 자체가 내게 희망적이라고 해야 하나? 내가 졸지도 않고, 매일 이렇게 일을 하며 생활을 할 수가 있다는 걸 알았어. 꾸준히 공부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물론 공부하면 다시 졸겠지만.


내 일상의 즐거움은... 역시나 주말이지. 주말을 기다리는 재미로 살고 있어. 작년에는 매일이 주말이었잖아. 그런데 직장을 다니고 나서 느끼는 주말이 더 행복해. 주말이 더 꽉 찬 느낌이 들어.


내가 계속 일하기 싫다 싫다 불평하긴 했지만 그래도 일 덕분에 내가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살면서 처음 해본 것 같아. 일을 하지 않았다면 못했을 생각일 거야. 일을 하기 때문에 현재가 고정이 되어있잖아, 그래서 미래를 생각할 수 있게 된 거야. 그 전에는 지금 당장 해야 할 것이 눈 앞에 있어서, 미래에 대한 꿈들이 더 뜬 구름 같았거든. 그때는 하고 싶은 일들도 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는데 이제는 좀 더 가깝게 다가와. 그리고 주변에서도 해내는 사람들을 보니까 그렇게 못할 만큼 어려운 일도 아니다 싶고. 할 수 있을 거 같아 나도.

아마 시간이 계속 지나면 현실에 안주해버릴 거 같아. 그냥 이렇게 몇 년 지나면 나도 모두 포기해버리겠지.

당장 회사를 그만둘 생각은 없고, 1년 채우고도 뚜렷한 게 없으면 계속 다닐 생각이고, 그렇다고 5년 10년 계속 다니고 싶진 않아. 회사를 다니면서 내 생각들을 구축할 시간과 돈을 벌어놓고 싶어. 그때까지 회사가 커지고 안정되면 또 상황이 바뀔 수도 있기야 하겠지?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내 가치를 다른 곳에 쓰고 싶다는 생각? 아이디어가 중요한 시대니까 구상을 잘 해봐야겠어.


그리고 내년엔 꼭 카메라를 사고 말 거야. 여행을 갔다 오면 카메라도 있고 이것저것 기록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아. 이번에는 여행 관련 데이터베이스를 미리 만들어놓고 싶어. 카메라는 꼭 사서 여행 다녀올 거야. 여행뿐 아니라 다른 계획들도, 올해는 회사 다니기 바빴으니까, 내년엔 더 구체적으로 이것저것 설정해놓고 싶어. 하고 싶은 일들도 미리 적어놓고. 올해는 충분히 할 수 있었는데 못한 일이 많은 것 같거든.


또, 기록을 하고 싶어. 꾸준한 기록이 쉽지가 않더라고. 많이 쓰려고 하면 더 못쓰게 돼서, 짧게라도 하루를 남기고 싶어. 예전 일기를 보면 한 문장만 봐도 너무 생생히 그 날이 기억이 나는 거야. 일기를 써야겠다.


그리고 난 이제부터 내 생각들의 실체를 만드는 작업을 해볼게. 파우치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이 구체적이라 자신감을 심어준 거 같아.





스물다섯의 나는 가진 걸 가지지 않았다? 반대로 아무것도 없는 데 있는 느낌이 강해.

지금은, 할 수 있는 걸 했으면 좋겠어. 당장 가능한 일을 시작했으면 좋겠어. 물건을 만들고 싶어도 부품만 만들 줄 알면 부품부터 만드는 거지. 작은 일부터 차근차근해볼까 해.








K’s PICK


강신주의 감정수업

http://m.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blio.bid=7353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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