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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원 Dec 04. 2016

'떠남'과 '버림' : 비우는 일

과달라하라를 떠나며



1. 떠남


고요한 과달라하라의 마지막 밤이다. 점점 날씨가 흐려진다 싶었는데 오늘 기어코 비가 내렸다. 한달 내내 비가 오던 때도 있었는데, 참 오랜만에 비를 맞았다. 마지막 밤을 보내기 딱 좋은 차분한 날씨다.


낮에는 학교에 다녀왔다. 학생들이 떠나 조용한 학교는 이곳저곳 대청소를 하고 새단장 중이었다. 아마 이제 찾아올 일이 없을 곳이라 생각하니 자꾸만 미련이 남아 이 곳 저 곳을 서성거렸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의 휴식, 도서관 소파에서의 낮잠, 씨베르 플라자에서 볕을 쬐고, 야외수영장을 가만히 바라보고, 짐 건물 2층 뻥 뚫린 사각형 사이그림같은 경치로 바람이 지나가는 걸 감상하기도 하며, 브레이크도 없는 자전거를 어설프게 타고 학교를 한 바퀴 빙 둘러보았던 일들은 아무래도 많이 그리울 것 같다. 이런 여유로운 풍경덕에 한껏 마음이 풀어져 더 자유로운 생각들을 하고, 많은 책과 영화를 보고 또 나눌 수 있었던 것 같다. 참, 맛있고 양 많은 학식도 빼 먹을 수 없을만큼 그리울 거다.   


어제 마지막으로 학식을 먹으러 갔었다. 감동스럽게도 메뉴는 가장 좋아하던 것 중 하나인 라자냐였다. 한 학기동안 식권을 살 때마다 안부를 물어주던 좋은 직원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시끌벅적할 시간에 한산한 야외 테이블에 앉아 학식을 먹으니 참 마음이 이상했다. 익숙해진 일들의 끝을 맞이하는 건 항상 이렇게 아쉽다. 좋아하던 하늘을 조금더 자주, 그리고 오래 바라보고, 익숙한 거리를 천천히 둘러보며 걷게 만드는 그런 아쉬움이 자꾸만 스며든다.


11월에 들어서면서 부터는 시간이 무섭도록 빠르게 흘러, 천천히 떠날 준비를 하고는 있었다. 들고와 한 번도 쓴 적 없는 새 물건들과 입을만한 옷 같은 걸 주변에 나눠주고, 여행 배낭과 필요한 준비물들을 하나 둘 샀다. 장을 볼 때도 무턱대고 쟁이는 습관을 버리고 소량씩만 구매하려고 노력했다.(하지만 결국 꽤 많은 식재료들이 남아 나눔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나름 정리하고 있던 끝도 시간이 닥치니 정신없이 몰아치고 그만큼 서운한 건 똑같다. 그만큼 게을렀다거나, 혹은 그만큼 미련이 많다는 증거일 거다. 툭하면 빠지던 학교를 수업이 없는데도 열심히 나가는 것도 모자라, 8월 어느 계획표에 써놨을 ‘일주일에 세 번은 짐 가기’를 이제 와서야 실천하고 있으니 몸이 정신 없을  하다.


정해진 기한이 눈에 보일 때가 되어서야 매일이 이렇게 알차다. 몸 뿐 아니라 마음도 마찬가지다. 만히 볕 잘 드는 곳에 앉아 하늘을 볼 때 마저도 온 몸으로 그 순간을 느낀다. 솔솔 부는 바람과 시린 햇살에도 마음이 일렁일 정도로 말이다. 왜 사람은 헤어질 때가 되서야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생기는걸까. ‘떠남’이 주는 감성은 미련남는 순간들의 미화인 건지, 혹은 그 때서야 비로소 진실된 가치를 알게 되는 건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끝’에 익숙해지고, ‘떠남’에 쿨해지는 순간이 과연 오긴 할까 싶다. 어쩌면 다시는 못 올 곳이라서, 참 많은 순간들이 그리운 밤이다. 다시 그 때처럼, 별 박힌 밤하늘이 펼쳐진 옥상에서, 함께 맘껏 웃고 떠들고 춤던, 그런 날이 올까?






2. 버림


짐을 꾸리는 건 언제나 고역이다. 특히나 생활하던 곳을 아예 떠나면서 싸는 짐은 진이 빠질 정도다. 그동안 불어난 물건은 왜 그렇게 많은지. 내 존재감이 이정도나 되었나 그제서야 느낀다.

프라하로 떠나올 땐 이가방과 28인치 캐리어, 백팩과 크로스 백에까지 꽉꽉채워 나왔었다. 스스로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런데도 차마 못  챙겨 온 물건이 많았다는 건 미스테리다. 멕시코로 넘어올 때는 여행 직후 와야했기 때문에 총 세 번의 짐을 부쳤다. 1키로에 만 원정도 하던 국제 택배에 약 30만원은 쓰고야 그 생활의 흔적들을 건너 편 대륙에 옮겨 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될 수 있으면 모든 짐을 '버리는' 쪽으로 할 작정이었다. 감당하기 힘든 무게에 짓눌리는 것도 싫었고 자잘자잘한 짐들을 부치느라 거금을 쓰고싶지도 않았다. 특히나 멕시코 택배는 비싸고 안전하지도 않기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이 참에 깔끔하게 최소한의 것을 남기고 미니멀리스트가 될 작정이었다. 여행을 위해 50리터짜리 가방을 새로 샀고, 이 가방 안에만 가볍게 짐을 채워 욕심없이 편하게 여행하려 했다. 나름 중간중간 버림과 나눔의 실천으로 많은 짐들을 정리했기 때문에 꽤 수월할 것 같아 별 걱정도 없었다.


그런데, 막상 짐을 싸기 시작하니 생각했던 것 보다 가방은 훨씬 고, 그에 비해 짐은 또 넘쳐났다. 이정도는 가져가야지 싶었던 것들을 반도 채 넣지 않았는데 가방은 터지려고 했다. 아니 난 넣은 게 없는데?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몇 번 짐과 사투를 벌이다 도저히 안될 것 같아 다시 모조리 꺼냈다. 위기가 닥치니 그때서야 사실은 불필요했던 것들, 좀 과했던 것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온다. 한참 생각하며 나름 신중히 챙겼던 짐들인데 한 번 혈압이 오르고 나니 망설임없는 손짓에 의해 내팽개쳐졌다. 역시나 옷 욕심이 많은 내게 옷이 가장 문제였다. 하나 둘 챙겨 넣다보니 부피가 어마어마 해진 거다. 좀 빼놓고 나니 짐이 반 정도 줄었다. 그 후에야 가방에 짐들이 척척 들어갔다. 아직도 터질 듯 한건 마찬가지긴 하지만 말이다.

이번 여행을 함께 해줄 배낭


결국 다시 짐을 정리하며 미련은 남는데 챙길 수 없는 가능한 최소한의 몇 가지 짐들을 한국으로 부쳤다. 가령 지난 여름 여행의 마스코트 였던 자라의 노란 바지 같은 것들이었다. 5키로에 거진 10만원이 나왔다. 듣던대로 정말 비쌌지만, 그래도 버리지 않을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일단 ‘추억'이 깃들면 이미 그들은 인격화되어, 함부 대할 수 없는 가치를 갖고 마는 것 같다. 버림의 미학이라는 게 참 쉽지가 않다.

머스터드 바지


그니까 짐은 챙기는 것 보다 버리는 게 훨씬 어렵다는 걸 이제야 좀 느끼고 있다. 4개월동안의 짐을 배낭 하나에 압축해야 한다는 건 예상했던 것 보다도 훨씬 더 많은 '버림'의 행위를 요구했다. 한 번 손에 쥔 물질을 떼어놓는 다는 건 생각보다 더 높은 경지가 필요한 것 같다. 짐을 싸느라 여행도 전에 지쳐버렸다. 사실은 아직도 놓고가는 것들에 대한 미련을 깔끔히 정리하진 못했다. 물론 직접 가방을 메고 다니며 고생을 좀 하다보면, 또 쉽게 버려질 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빵빵한 가방이 이게 다 네 욕심의 무게요 하는 듯 하다.

 



공수 공수거의 필수적인 두가지 덕목, ‘떠남’과 ‘버림’이 어려운 건 모두 미련 때문일거다. 추억을 미련없이 간직할 수 있을까. 항상 느끼지만, 다시 한 번 욕심을 비우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느끼며 아쉬움 가득한 밤을 보낸다. 곧 떠나는 여행에서는 조금 더 자라있길 바라며. 하늘이 참 예뻤던 과달라하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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