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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icgirl Oct 06. 2016

D126. 소리의 울림만으로 설레는 그 이름, 티티카카

Part1.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 라틴 아메리카_볼리비아

실체 없는 경계


페루에서 볼리비아로, 눈에 보이지 않는 선 하나 넘었을 뿐인데 소중한 1시간이 사라져 버렸다. 리마에서 비행기 5시간 타고 태평양 한가운데 이스터섬에 갈 때도 시간이 똑같았던 걸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에서 어린 푸세가 말하던 실체 없는 남미 국가와 민족의 경계에 대해 실감하는 요즘이다. 티티카카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페루와 볼리비아. 티티카카에 사는 페루 사람들은 서쪽 끝 바닷가 리마 사람들보다 같은 환경에서 같은 신화와 전설을 믿고 자란 호수 건너편 볼리비아 사람들과 가깝게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을 것만 같은데, 서로 페루의 티티카카가 더 넓네, 볼리비아가 더 크네 하는 농담 아닌 농담이 왠지 슬프다. 


사람들이 그어놓은 인위적인 경계 덕분에 지금의 페루와 볼리비아는 많은 것이 달라져버렸다. 잦은 전쟁에서 패 하고 땅도 다 빼앗겨 남미 한가운데 작디작은 내륙국가가 되어버린 볼리비아. 남미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되었다고 한다. 가난하다고 불행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싸움을 못해서 빼앗기고 가난하고 약해서 또 무언가 빼앗기는 세상은 더 이상 아니면 좋겠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호수,
세상에서 하늘에 가장 가까운 호수 티티카카. 

해발 3,800m. 
손에 잡힐 것 같은 구름이나 저 멀리 호수 끝에 맞닿은 하늘만으로 
발을 디딘 이 곳의 고도가 짐작이 가지만,
높은 곳에 있다는 것은 이제 새삼스러울 것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다. 

소리의 울림만으로 오래전부터 설렜던 그 이름, 티티카카니까.



저렴한 물가 덕분에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티티카카의 트루차(송어) 요리로 모처럼 포식을 하고 태양의 섬으로 이동한다. 배를 타고 건너는 바다처럼 깊은 푸른빛을 띄고 바다처럼 파도가 일렁인다. 






태양의 섬, Isla del sol


잉카 신화 속 태양의 신이 탄생했다는 태양의 섬에 이르자 물에서 첨벙첨벙 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한가로이 풀을 뜯는 나귀가 먼저 반긴다. 같은 티티카카 위의 섬이지만 한눈에 봐도 페루에서 갔던 아만따니섬보다 나무도, 꽃도 더 다양하고 푸르다. 좁고 길쭉한 모양의 이 섬은 언덕 위로 조금만 오르면 산의 능선을 따라 걷을 수 있게 길이 나 있다. 섬의 남과 북을 이어주는 이 길을 따라 걷는 내내 양 옆이 모두 호수! 오늘따라 유난히도 더 파란 것은 하늘인지 섬인지 호수인지 반짝반짝 빛이 난다. 하얀 구름과 수평선 끝 설산이 아니라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호수인지 알기 힘들 것 같다. 하늘이 가까워 공기는 엄청 찬데 햇살은 말도 못 하게 뜨겁다.



















늦은 오후 배를 타고 들어와 하이킹을 시작했더니 수평선 너머 붉은 노을이 내려앉을 때가 되어서야 섬의 건너편 마을에 다다른다. 해가 지기 전 짐을 풀어야 한다는 초조함에 발길을 재촉했던 것은 아닌지 후회가 밀려온다. 하이킹을 시작한 섬의 북쪽 마을을 여유롭게 즐기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운 것이다. 


나는 왜 항상 여유를 찾으면서도 조급함을 버리지 못하는가. 


여행을 떠나와서도 자꾸만 고민하게 되는 부분이다. 남는 건 시간뿐인 장기 여행자이지만, 낮과 밤, 여름과 겨울, 건기와 우기라는 자연의 흐름에는 더 예민해져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낯선 장소에 떨어지면 어둠이 드리우기 전에 몸을 뉘일 곳을 찾아야 하고, 며칠씩 걷는 날이 이어지면 하늘을 바라보며 구름의 방향을 확인해야 한다. 볼리비아에 온 순간부터 Y는 물이 가득 찬 우기에 소금사막을 보고 싶다며 서둘러 우유니에 가자 하고 있고, 파타고니아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기 전에 트렉킹을 하려면 여름이 끝나기 전에 도착해야 한다. 불확실한 자연 속에서 불안이 없기를 바라던 마음이 순진했던 것 아닐까. 더구나 이 아름다운 땅에서 다음 여정에 대한 상상과 기대는 멈출 수가 없으니! 처음 걸어보는 남미에서는 궁금한 것들이 너무나 많아서 내가 바라는 여유로운 여행자가 되려면 한 번 더 오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조급하고 여유롭고 불안하고 편안한 이 모든 감정을 길 위의 여정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될 일이다.




서로에게 지속가능한 여행


남쪽 마을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 뒤를 졸졸 따르던 동네 꼬마를 따라가 보기로 한다. 손님을 데려온 것에 대한 보답인지 숙소의 주인아주머니가 꼬마 손에 동전 몇 개를 쥐어준다. 페루의 섬들은 태양열을 이용하는 집들이 더러 보였는데, 여기는 육지에서 모든 것을 가져다 써야 하기에 모든 것이 비싸다고 한다. 푸르른 나무를 보면 왠지 비옥할 것 같지만 대부분의 식재료와 물 또한 육지에서 가져와야 한다고 한다. 배로 가져와도 높은 마을까지 운반하는 일이 쉽지 않을 터. 그런 이유로 육지보다 비싼 숙박비가 고작 25 볼(한화 3-4천 원)이라니 물 한 방울 사용하는 것조차 미안하다. 오늘 하루 샤워를 하지 않고 물을 아끼는 것 이외에 내가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현지인들에게도 우리에게도 지속 가능한 여행을 늘 고민하지만 쉽지만은 않다. 


며칠 전 페루에서 다녀온 우로스섬이 떠오른다. 우로스는 섬이지만 진짜 섬이 아닌 흙과 짚을 엵어 인공적으로 호수 위에  있는 플로팅 아일랜드(floating island)다. 과거에 전쟁과 다른 부족의공격을 피해 호수 위에서 살아가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모습으로 이어진 것이다. 전통 가옥의 형태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만 지금의 우로스 사람들은 태양열로 전기도 사용하고 모터가 달린보트로 육지에 왕래하면서 육지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통해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어떤 이들은 우로스가 지나치게 상업화 되었다며 비난했지만 지금의 모습이 바로 우로스의 오늘이었다.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언제까지고 흙과 짚만 엮어가며 살 수는 없지 않겠는가. 다소 집요하게 기념품을 팔려는 느낌은 없지 않았지만, 그러면서도 활짝 웃어보이는 미소는 맑고 파란 티티카카를 닮아있었다. 직접 노를 저어 전통배를 구경시켜주고 깔깔거리며 쌩하니 모터보트를 타고 돌아간 아주머니의 크고 청량한 웃음소리에 내 얼굴에도 절로 미소가 번졌다. 우리는 하루에 몇 번이나 다른 이에게 이렇게 기분 좋은 얼굴을 선물할 수 있을까. 여행자들은 종종 자신의 상상을 강요하곤 한다. 우리는 상상 속으로걸어 들어갈 자유가 있지만, 사람들이 엽서 속의 한 장면으로 남기를 강요할 수 없다. 


아주머니에게 부탁을 해서 5분어치 가스사용료를 내고 라면을 끓인다. 신기하게 바라보는 아주머니에게 맛보라고 드려봤더니 한 입 먹고 너무 맵다며 손사래를 친다. 매운 것이 뭐가 그리 재밌는지 터져 나오는 웃음을 멈추지 못하면서. 한국은 오늘이 설날이라고 하니 떡국부터 각종 명절 음식이 눈앞에서 괜히 더 아른거린다. 엄마표 떡국은 없지만 우리에게 딱 필요했던 얼큰한 라면 국물을 들이켠다. 1월 1일 새해와 설날, 두 번의 새해가 복잡하다고도 하지만 일 년에 두 번 서로에게 새해의 복을 빌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웃다가 숨이 차서 숨 넘어가는 태양의 섬에서 다시 한번 해피 뉴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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